무언가에 열정을 갖는다는 것

글 입력 2018.06.22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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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영국의 한 탄광촌, 투박하고 거친 마을에 아름답고 우아한 발레리노를 꿈꾸는 한 소년이 있다.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지금보다 굳게 형성되어 있을 때라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고, 발레를 한다고 하더라도 편협한 편견들에 직면해야만 했다. 주인공인 빌리도 그랬다. 발레를 처음 접한 순간부터 발레에 푹 빠진 게 분명한데도 “이게 춤이라고요 ? 말도 안 돼. 이거 딱 봐도 구려요.”나 “못하겠어요. 완전 계집애 같잖아요.”와 같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본심을 외면했다.

하지만 곧 빌리는 발레에 열정을 갖게 되었고, 윌킨슨 선생님과의 개인 레슨을 통해 본인의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으며 왕립 발레 학교 오디션을 준비한다. 오디션 당일, 아버지와 형의 완강한 반대로 인해 빌리는 또 한 번 꿈 앞에 좌절하고 마는데, 빌리는 그때, 그의 모든 감정을 ‘Angry dance’에 쏟아붓는다.

새빨간 조명과 강렬한 사운드, 그리고 익숙한 ‘백조의 호수’ 선율에 빌리의 분노를 담은 탭댄스가 더해지면 관객은 빌리가 느끼는 감정과 꿈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성숙하고도 뜨거운지 알 수 있게 된다.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빌리의 장면과 함께 이루어지는 탄광촌의 파업 상황도 음악의 절제된 박자에 따라 그들의 마음을 일렁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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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는 아버지와 형,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몇 년 전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형은 ‘파업’이라는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빌리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고,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셔서 항상 빌리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열두 살의 소년이 감내하기엔 버거운 상황임은 분명하다. 이런 주변 상황 때문인지 빌리는 또래 아이답지 않은 거칠고 못된 말버릇을 가졌다. 험한 욕은 기본이고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려던 아이를 때린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빌리도 아이는 아이다. 상상 속에서 만나는 어머니에게 귀여운 투정도 부릴 줄 알고, 친구 마이클과 함께 있을 때는 누구보다 맑은 웃음을 짓는, 영락없는 열두 살이다. ‘The letter’에서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여리고 투박한 모습을, ‘Expressing yourself’에서는 거칠고 사나운 겉모습과 달리 순수하고 투명한, 아이다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을 울고 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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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의 꿈을 반대하던 아버지도 빌리의 ‘Dream Ballet’를 보고 빌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다. 돈을 벌기 위해 파업에서 이탈한 탓에 마을 사람들의 비난을 산 적도 있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버지는 빌리와 함께 오디션장으로 향할 수 있게 된다. 왕립 발레 학교에 합격한 빌리는 마을 사람들과 하나 둘 작별 인사를 하고 런던으로 떠나면서 공연은 끝이 난다. 마을을 떠나는 주인공은 정말 무대를 떠나고,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막이 내릴 때까지 무대를 지킨다. 주인공의 성공에 초점을 맞추는 대부분의 이야기들과 달리 그의 성장을 후원하고 지켜본 주변 인물들의 서사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이 점이 바로 뮤지컬 < 빌리 엘리어트 >가 특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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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 엘리어트 >의 창의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대목은 역시 ‘Solidarity’이다. 다른 영상 미디어와 달리 무대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한 곳에서 연출하기가 곤란하다. 하지만 < 빌리 엘리어트 > 는 연출하기 곤란했을 부분을 오히려 제한적인 여건에서 완벽하게 풀어냈다. 발레 수업 공간과 파업 공간 간의 격차가 벌어지면서도 연결됐고, 또 ‘모두 다 같이’라는 가사에 걸맞게 두 집단이 교류하고 화합하는 안무가 그 상황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세 시간 가량의 극을 이끄는 인물은 경험 많고 능력 있는 성인 배우가 아닌, 갓 초등학생 티를 벗은 평균 나이 열 세 살의 빌리들이다. 다섯 명의 빌리들은 완벽한 빌리로 거듭나기 위한 트레이닝 과정을 견뎌냈고, 공연이 막을 내릴 때까지 연습을 반복하며 매일 매일 성장하는 무대를 선보였다. 무언가에 열정을 갖는다는 것. 그것보다 멋있는 건 없다는 걸 다섯 아이들이 보여준 것이다.


[서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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