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요리, 사람, 치유 [영화]

요리를 통해 아픔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18.06.22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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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먹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고민이다. 식사 시간 전이나 식후에, 어쩌면 식사 중에, 또는 즐겁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그게 아니라면 그냥 걸어가다가 문득. 누군가에게는 귀찮은 고민일수도 있지만 요즘 텔레비전을 틀어보면 여기도 먹는 얘기, 저기도 먹는 얘기다. 시골의 맛집부터 해외의 맛집까지 다루는 다양한 맛집탐방 프로들, 유명인들의 냉장고 속 재료로 펼치는 셰프들의 요리대결 프로, 여행지에서 누가 더 많이 먹는지 대결하는 프로 등등 형식과 테마만 다를 뿐 이 프로그램들의 주제는 모두 ‘음식’이다.

티비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먹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유투브 방송들과 요리를 다룬 영화나 책이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음식과 요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줄리&줄리아>, <리틀 포레스트>, <케이크 메이커>


여기 요리를 주제로 한 세 영화가 있다. 이 세 영화의 줄거리는 공통적인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요리와 사람을 통해 삶의 아픔을 극복하는 이야기’

각 영화의 주인공부터 살펴보자.

<줄리&줄리아>-"줄리 파웰, 애머스트 대학교 문예지 편집장이었고 우리 모두 '최고'가 될 줄 알았던 그녀가 8년 전부터 쓰던 소설을 포기하고 현재는 중급 공무원으로 사무실에서 일하며 9/11 사태의 휴유증을 다루는 일을 한다." (영화 속 줄리의 잡지 인터뷰 내용) 뉴욕의 민원상담원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줄리’는 나쁘지는 않지만 만족스럽지도 않은 삶을 산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너무나도 바쁜 그들의 자랑 아닌 자랑을 듣고 있자면 잘 살고 있는 건가 싶다.

한국에서 리메이크한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은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둘이 살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고 혜원의 엄마는 편지 한통만을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고 편의점 알바를 하며 어렵게 공부하지만 임용고시에 떨어진다. 같은 시험을 준비한 남자친구는 붙었는데 말이다.

<케이크 메이커>의 인물관계는 어떻게 보면 꽤나 독특할 수도 있다. 앞의 두 영화는 삶에 지친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면 이 영화에선 상처 받은 사람이 두 명이다. 바로 독일의 파티셰 ‘토마스’와 이스라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아나트’이다. 아나트의 남편 오렌은 출장 차 독일에 머무며 토마스와 불륜을 저지른 후 아나트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토마스에게로 가는 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토마스와 아나트는 사랑했던 한 사람을 잃은 것이다.

이 네 명의 인물들은 서로 너무나 다르다. 뉴욕, 한국, 독일과 이스라엘. 프랑스요리, 한식, 케이크와 쿠키. 국가도 다르고, 요리 종류도 다르고, 상처도 다르다. 치유방식 또한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지 않은가?

*

다시 <줄리&줄리아>로 돌아와 보자. 출판사에서 그녀의 책을 출판해주지 않자 줄리는 출판계약을 하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는 블로그로 눈을 돌리게 되고 평소에 좋아하던 요리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다. 저명한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의 프랑스 요리책에 있는 모든 요리, 총 524 종류의 요리를 1년 동안 해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초콜릿케이크를 만들 땐 이런 말을 한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난 후 집에 돌아와 계란 노른자, 우유, 초콜렛, 설탕을 섞으면 무조건 꾸덕한 크림이 나오는 것이 너무 좋다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도시 생활 속에 그녀는 요리를 통해 안정감과 행복을 얻을 수 있던 것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1년 동안 슬럼프가 왔을 때는 그녀의 남편과 그녀가 가상의 멘토로 여기는 줄리아가 힘이 되어준다. 줄리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줄리&줄리아’라는 책을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이룬다.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로 소소한 행복을 얻고 이 행복이 취미에 그치지 않고 직업으로까지 이어진 줄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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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프 부르기뇽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은 임용시험에 떨어진 후 고향에 내려온다. 그 곳에는 어렸을 때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 두 명이 살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 쳇바퀴 같은 생활에 지쳐 지금은 과수원을 하고 있었다. 혜원은 서울에선 차가운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뗴우기 일쑤였다. 그러나 고향에 내려온 후 매 끼니를 정성스럽고 따뜻하게 챙기기로 다짐한다. 우선 재료부터 특별하다. 밭에서 나는 각종 농산물, 그리고 과수원에서 나는 과일. 혜원은 텃밭을 일구고 모내기도 도와주며 단기 귀농 생활에 완벽하게 녹아든다. 일상에 지친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을 되찾는다. 그녀의 차가웠던 얼굴이 요리할 때 미소를 띠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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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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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파스타
 
 
마지막으로 <케이크 메이커>이다. 토마스는 오렌이 가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사랑했고, 그가 죽자 그의 가족을 보기 위해 이스라엘로 향한다. 토마스는 오렌의 아내였던 아나트의 카페에서 일을 구하고 그의 환상적인 베이킹 실력덕분에 카페는 대박이 난다. 토마스와 아나트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아나트는 이방인인 토마스를 샤밧 식사(이슬람의 안식일. 금요일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도 하며 둘은 사랑에 빠진다. 가족끼리 음식을 나눠먹는 샤밧은 영화에서 여러번 언급되며 식구란 음식을 같이 먹는 사이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샤밧 식사에 초대되었을 때 토마스는 아나트와 그녀의 아들을 위해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만들어 가는데 아나트는 그릇을 핥아먹을 정도로 케이크를 먹으며 행복해한다. 한 사람을 사랑했던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상실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의문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모순덩어리가 아닌가. 앞의 두 영화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특히 <케이크 메이커>에서 요리만으로는 상처를 극복하기엔 조금 부족하며 그걸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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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포레스트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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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영화의 주인공들은 요리를 통해 힐링을 넘어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내용은 곧이곧대로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퇴근하고 나서 요리할 시간이 거의 보장되며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이 많이 등장하는 줄리의 요리, 도시생활을 아예 정리하고 시골에서 나는 재료들이 들어간 혜원의 요리, 평소에 쉽게 따라할 수 없는 토마스의 예쁜 케이크. 그렇다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요리들도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줄 수 있을까? 당연히 너무나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음식이 됐든 자신만의 소울푸드를 찾아 소중한 사람과 같이 먹는다면 그것이 바로 소확행, 즉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인 것 같다.


[강혜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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