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힐링물이 아니다 [공연예술]

힐링을 넘어, 여보셔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
글 입력 2018.06.2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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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님이 보고계셔' 는 힐링 뮤지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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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에 대한 희망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가는 각박한 사회는 ‘힐링 열풍’을 만들어 냈다. 자극적인 콘텐츠 없이 잔잔한 일상을 보여주거나 이대로도 괜찮다며 위로를 전하는 TV 프로그램들이 크게 흥행했고, 많은 공연들이 힐링 연극, 뮤지컬을 마케팅 전략으로 내놓았다. 무한 생존 경쟁 속에 내몰린 청년들이 찾아 낸 하나의 돌파구인 셈이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도 언뜻 보면 이러한 힐링 열풍에 동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공연은 단순한 힐링물이 아니다. 북한군과 남한군이 여신님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화합하고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가 대체 힐링물이 아니면 무엇이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정의와 연대, 투쟁,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와 ‘여신님’으로 상징되는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며 작금의 ‘힐링 열풍’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힐링을 넘어 이 시대에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는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를 소개한다.



#1. 여신님이 보고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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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쟁 중 국군대위 한영범은 인민군 이창섭, 류순호, 변주화, 조동현을 포로이송하라는 명령을 받고 부하 신석구와 함께 이송선에 오른다. 하지만 인민군들은 이송 중 폭동을 일으키고, 폭동 중 기상악화로 고장난 이송선 때문에 모두가 무인도에 고립된다. 그들 중 유일하게 배를 수리할 수 있는 류순호는 전쟁에서 얻은 트라우마로 정신이 이상해진 상태. 순식간에 인질이 된 영범은 순호를 악몽에서 벗어나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 가상의 존재인 ‘여신님’을 만들어 낸다.


미움도 분노도 괴로움도
그녀 숨결에 녹아서 사라질거야
그만 아파도 돼 그만 슬퍼도 돼
그녀만 믿으면 돼
언제나 우리를 비추는
눈부신 그녀만 믿으면 돼
여신님이 보고계셔


 순호는 여신님 이야기에 안정을 찾아 가고, 다른 병사들은 순호가 하루빨리 배를 수리할 수 있도록 모두가 여신님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여신님이 보고계셔’ 대작전을 실시한다. 그러자 고립된 상태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생존 본능만이 남았던 병사들도 여신님의 규칙 속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각자의 가족과 연인을 여신님에 대입하며 서로에 대한 유대감을 가지게 된다.


그대가 보시기에 참 예쁘구나 여기게
그대가 보시기에 참 기특하다 느끼게
그대가 보시기에 참 단란하다 느끼게
그대가 보시기에 참 깔끔하다 느끼게
그대가 보시기에 참 훈훈하다 느끼게




#2. 돌아갈 곳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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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에 대한 불신과 생존 본능만이 남아 ‘그저 살기 위해’를 외치던 병사들의 모습은 현 시대의 청년들이 외치는 ‘헬조선’의 모습과 닮아 있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아야 하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연대와 믿음, 정의와 희망과 같은 삶의 가치를 잃어간다. 그러던 이들을 변화시킨 것이 바로 여신님이다. 여신님은 창섭에게는 어머니로, 주화에게는 여동생으로, 동현에게는 아버지로, 영범에게는 딸로, 석구에게는 연인으로, 순호에게는 여신 그 자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이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주는 이유이자 궁극적으로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신님은 이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찾아 주고 살아갈 의욕을 부여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서로를 타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었음을 인식시켜주는 연대의 열쇠 역할을 한다. 그들 모두는 국군과 인민군이기 이전에 돌아가야 할 곳과 못다 이룬 꿈이 있는 ‘사람’ 이었던 것이다.

 타인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는 순간 연대의 가치는 그 빛을 발한다. 각박한 사회 현실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타인을 짓밟고 타도하려 드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불합리한 사회를 더욱 불합리하고 각박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게 된다. 하지만 타인을 마음속에 여신님을 간직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연대한다면 분노의 화살은 서로가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의 힘은,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를 클라이막스로 이끈다.



#3.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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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신님’으로 찾은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고, 배를 고치는 작업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다. 창섭은 국군 영범과 석구를 무인도에 두고 갈지, 북한까지 데리고 가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이들을 두고 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러한 창섭의 결심을 알지 못했던 영범은 배를 타고 북한으로 간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여 전파기로 국군에게 지원 요청을 한다. 국군에게 지원요청을 하는 신호탄을 터뜨린 뒤에야 창섭의 결심을 알게 된 영범은, 조금 있으면 국군이 몰려올 것이라는 사실을 털어놓고, 모두가 힘을 합쳐 국군을 후퇴시킬 것을 제안한다.

 귀를 멍멍하게 때리는 폭격 소리와 번쩍이는 조명, 강렬한 일렉 기타 사운드에 맞추어 모두가 여신님이 보고계셔 넘버를 떼창하는 모습은 가히 이 공연의 클라이막스라 할 만 하다. 이들은 여신님으로 하나되어 부당한 권력에 맞서고, 결국 국군을 후퇴시켜 서로를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부당한 권력이 끈끈한 연대의 힘 앞에 무너지는 모습은 현실에 지쳐 서로를 볼 힘조차 잃어버린 시대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순호의 변화이다. 국군의 폭격 소리에 놀라 숨어버린 순호는 여신님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놀랍게도 이런 말을 한다.

“너를 믿는 척 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어”

 순진하게 여신님을 믿는 것 같았던 순호는 사실 처음부터 무기 상자를 여신님의 제단 밑에 숨겨 사람들의 폭력성에 제동을 걸고, 여신님을 통해 연대의 힘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폭력과 부당한 권력의 실체와 정면으로 마주하자 공포에 질린 순호는 여신님이 만들어낸 무인도의 평화 속에 계속 안주하고 싶어 한다. 그와는 반대로 순호의 여신님은 사람들과 연대하고, 무인도에서의 만들어진 삶에 안주하지 말고 현실을 마주할 것을 이야기한다.


저들을 봐요
왜 저토록 힘겹게 싸우고 있는지를 봐요
저들을 봐요
그 너머에 있는 당신의 사람들을 봐요
잊지 말아요
전쟁도 싸움도 모두 다 부질없는 거죠
잊지 말아요
그 너머에 있는 당신의 사람들을 봐요




여보셔가 전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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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도 괜찮아, 수고했어 오늘도 라고 말하는 위로는 지친 삶의 소중한 쉼표이다. 하지만 위로와 힐링은 삶을 지속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순호가 여신님이 주는 안정감에 도취해 현실을 외면하고 끝까지 무인도에 남았다면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을까?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곳과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서로를 사람으로 인식하며 연대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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