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It's beautiful?' ‘It's life!' [영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e), 신과 생명애에 대한 이야기
글 입력 2018.06.2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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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바다 위에 표류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구명보트 위에서 소년은 외친다. "It's beautiful!" 이것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해해야 하는 걸까? 아니라면 망망대해에서 호랑이와 함께(!) 표류하다가 폭풍을 만나는 소년은 다 이렇게 호기로운 것일까.

수십 톤에 달하는 대형 여객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삼켜버린 바다. 가족들은 빛도 들지 않는 어두운 심해 속에 잠들어 있다. 영원한 이별이었다... 홀로 살아남은 소년은 바다의 무시무시함을 사무치게 절감하고 있다. 그리고 단지 그 뿐이었다.

소년 파이는 타고난 뱃사람도 아니고 기초적인 항해 지식을 아는 것도 아니었다.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어린아이지만 홀로 살아남아서 이제껏 버텨왔다. 어떠한 동인動因이 존재한다면 아마 그것은 본능일 것이다. 살고 싶은 본능이 그를 여지껏 버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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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와 영성(spirituality)


파이는 그닥 특별하지 않은 보통 소년이다. 영어와 인도어를 모두 잘 구사하지만 종교상의 이유로 고기는 입에 대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에게 이름과 동물원을 선사했다. 파이는 자신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본명이 ‘오줌 싸다’라는 뜻을 가진 피싱(pissing)과 유사해서 고민 끝에 앞의 두 글자를 딴 ‘파이(pi)’라는 이름을 고안해낸다. 친구들이 자신의 이름을 수학의 원주율 파이(π)와 연관 지어 생각해주길 바라지만, 짖궃은 친구들은 끝까지 피싱을 고집하며 괴롭힌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동물원은 파이가 나고 자란 곳이다. 동물원이 재정난으로 인해 문을 닫고 온가족이 고향 인도를 떠나 캐나다로 이주하게 된다. 노아의 방주처럼 말과 오랑우탄, 하마와 벵갈 호랑이 등의 동물들을 태우고 출항하지만 기상 악화로 인해 비틀거리더니 그만 침몰하고 말았다. 배가 침몰하던 날에 파이는 폭풍을-정확히는 폭풍의 신을- 구경하려고 난간에 나왔다가 보기 좋게 미끄러진다. 파이가 영접한 신은 모든 것을 앗아가는 죽음의 신이었다.

파이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종교적 감수성이었다. 어머니에게서 힌두교의 신화를 들으며 자라난 파이는 조금 크면서 불교와 이슬람교의 신까지 모두 받아들인다. 어느 날에는 성당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상을 보고선 크게 감명한 나머지 자신의 크리슈나 신상 앞에서 감사 기도를 드린다. “예수님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크리슈나 신이여.”

파이는 언제 어디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다. 그에게는 영적인 것에 대한 마르지 않는 갈망이 존재했다. 파이의 내적인 갈증, 불현듯 찾아오는 참기 어려운 목마름은 때때로 엉뚱하거나 무모한 행동으로 나타났다. 어린 시절 동물원의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에게 직접 먹이를 주려고 했다가 아버지를 기함하게 만들었던 해프닝은 파이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된다. 짐승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믿음으로 벌인 행동이지만, 사실은 교감하고 싶었던 것이다.

합리적 사고의 소유자인 아버지는 파이에게 호통을 친다. “짐승은 사람과 같지 않아!” “너는 짐승의 눈에 비친 너의 감정을 보고 있는 거야!” 아버지는 파이가 좀 더 이성적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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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


바다 위에서 폭풍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파이의 방식은 뛰쳐나와 숭배하는 것이었다. 절대적인 풍경 속에 자신을 작게 덧붙여 그리는 일이었다. 그에게 신이란 불가해한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고 초월적이지만, 인격을 가진 신을 믿었다. 그래서 사람에게 하듯 원망을 퍼붓고 크게 화를 내며 삿대질까지 한다. 그동안에도 세찬 빗줄기가 파이의 마른 몸을 강타하며 흘러내린다. 벼락과 뇌우가 파도를 광포하게 몰아간다. 파이는 종이배 같이 무력한 구명보트에 몸을 묶고 종주먹을 휘두른다. ""It's beautiful!"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파이는 커다랗게 웃는다. 소년의 웃음에는 조금도 위태로운 그늘이 없었다. 그만큼 강렬하고 꾸밈없는 홍소였다.

어떻게든 자신의 기쁨(!)을 공유하고 싶었던 파이는 보트 바닥에 있는 리처드 파커를 찾는다. 맹수의 노르스름한 두 눈이 공포에 질려있다. 보트에 들이친 검은 물이 요동 칠 때마다 거대한 몸집도 같이 흔들린다. "리처드 파커...?" 순간 파이를 사로잡았던 광기가 사그라진다. 쩌렁한 뇌우가 다시 한 번 그들의 바다에 내리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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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 생명애, 그 너머의 어떤 것


소년과 호랑이의 표류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아니었다면 파이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무려 망망대해에서 227일간 표류하여 살아남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잡아먹을 수도 있는 적과의 동거가 긴장을 만들어내어 생명을 이어나갈 힘이 되는 역설. 여기에는 생명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적나라한 생명애가 존재한다. 극한의 상황까지 밀려나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때 맹수와의 교감을 꿈꾸며 먹이를 건넸던 파이는 이제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먹이를 건넨다. 그러면서 함께 칠흑의 밤을 지새우고, 빛나는 해파리의 유영을 구경하고, 미친 폭풍을 견뎌낸다. 227일간의 표류 기간 동안 그들은 서로의 탈을 번갈아 쓰며 살아남는다. 본능이 결정적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여기에 성경의 예언서가 말하는 어린아이 같은 영성이 없었다면 둘 다 죽어버렸을 공산이 크다. 사실 둘 다 멀쩡히 살아남는 것보다는 둘이 함께 파멸로 치닫는 모습이 훨씬 '자연스럽다' 물론 그들은 진짜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 리처드 파커는 야성이 살아있는 짐승이고 파이는 인간이니까.

고생 끝에 멕시코 연안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의 행보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리처드 파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으로 사라지고, 파이는 그런 리처드 파커를 보며 참기 어려운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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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의 반복적인 코드


영화를 보면 참으로 목이 마른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그들이 표류하는 동안 겪어야 했던 어려움 중의 하나가 갈증이다.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줄곧 심각한 탈수 증세에 시달린다. 비상용 식수도 다 떨어지고, 맨몸에 소금기만 겨우 입고서 작열하는 태양 아래 놓여진 상황이다. 실제적인 갈증에 못잖게 내적인 갈증도 심해진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비슈누, 알라, 붓다, 예수님? 구원을 간절히 바라지만 보이는 것은 질리도록 시퍼런 바다뿐이다.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을 때 얼굴을 때리며 흘러내리는 빗줄기, 몇 방울의 이슬이 파이와 리처드 파커를 살린다.
 
신비의 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육지의 담수와 다름없는 물을 양껏 들이키며 소생한다. 그 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밤이 되면 산성을 띠며 물고기들을 죽이는데, 섬 자체가 낮에는 풍요로운 생명을 선사하지만 밤이 되면 죽음으로 변모한다. 파이는 섬을 떠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오랜 시간 동안 갈증과 배고픔을 겪으며 죽음에 무엇보다 가까이 다가갔기에 알 수 있었다. 섬은 파이와 리처드 파커를 잠시 소생시켜 주었지만, 그 뿐이었다. 이 신기루 같은 휴식이 완전한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바삐 떨쳐버려야 했다. 파이는 다시 죽음의 바다로, 그 너머의 생(生)으로 나아간다. 섬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파이는 리처드 파커를 기다리는데 그 호랑이는 파이가 기대했던 대로 섬을 떠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해안으로 달려나온다.



'It's beautiful?' ‘It's life!'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는 이 모순에 가득 찬 생명을 발견하는 순간이 그려져 있다. 어쩌면 미친 짓에 불과했을 폭풍 속 파이의 외침-It's beautiful!'-은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가슴을 치게 한다. 파괴의 참혹한 현장에서 강렬한 생의 감각을, 부드럽고 끊임없이 포용하는 무언가를 감지하는 것이다. 철저히 영혼에 속한 일을 맨 몸으로 확인하는 순간 뷰티풀이든 다른 어떤 수식어든 탄성을 내뱉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 신의 존재를 믿게 될 것이라고 말하던, 장년이 된 파이의 대사는 실로 감동적이다. 감동적이지만, 짜릿한 나머지 당장 걸치고 있는 육체를 벗어던지는 행동으로 이어지면 신앙은 광태가 되어버린다. 그런 건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취하는 것이다. 겁에 질린 리처드 파커를 보면서 정신을 차린 파이는 구명보트 속으로 몸을 숨긴다. 그들은 함께 폭풍이 이는 바다를 견디며 아침을 기다린다. 신의 본질을, 영원한 생명과 자비의 속성을 느끼기엔 아무래도 폭풍보다는 기나긴 밤 끝에 찾아오는 아침이 어울리지 않을까. 그들의 구명보트는 끝내 침몰하지 않고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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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


영화 ’라이프 오프 파이‘는 궁극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이성 너머의 영성을, 비정한 본능 너머의 생명애(Biophila)을 이야기한다.

영화 속에는 물에 뜨는 바나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바나나는 실제로 물에 뜬다. 하지만 보험처리 문제로 파이를 찾아온 운수성 직원들은 쉽게 믿을 수 없어한다. 헛소리라고 치부하다가, 의심하다가, 그렇게 실험을 거친 바나나는 '과학적 사실’로 재탄생한다. 이렇게 입증된 바나나를 다시 물에 뜨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헛소리가 된다. 만약 물에 뜨는 바나나처럼 신의 존재를 입증하려 든다면 그렇게 탄생한 신이 과연 신일까. 그러니 신과 생명의 신비 앞에서 합리적 사고가 빛을 잃고 초라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비밀의 열쇠는 어린아이 같은 영성이다. 극한의 대결을 통해 얻는 깨달음이다. 산 목숨을 가지고 감히 죽음 너머의 완전한 생명을 넘보는 일이다. 여기에 이성이 배제되어, 마치 불청객이나 된 듯 취급당할 필요는 없다. 이성과 과학은 주어진 생명이 헛되이 소멸되지 않도록 돕는다. 바다 위의 기기묘묘한 환상으로부터 현혹되지 않기 위해 파이가 필사적으로 붙잡은 것이 이성이다.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문명도 파이를 살리는데 일조한다. 구명보트에 실린 비상식량과 노트, 연필, 생존 지침서가 그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주인공 파이의 이름이기도 한 수학의 파이(π)는 무리수이다. 소수점 밑으로 숫자가 끝없이 나열된다. 영어로 'irrational number'이다. 원주율 파이의 타고난 태생이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강사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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