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날-것의 감정들 [시각예술]

글 입력 2018.06.1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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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영 작가의 가시적인 시각 예술은 감각을 통해 내면 속 감정이라는 비가시적인 영역에 침투한다. 인간의 깊은 마음 속에선 행복, 슬픔, 열정, 부끄러움, 외로움, 상처, 두려움, 질투,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의 물결이 서로 뒤엉키며 일렁이고 있다. 나는 이러한 내면의 깊은 '날-것의' 감정들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이 두렵다.

사회적인 규범과 타인과의 관계맺음 속에서 암묵적으로 형성돼 나를 옭아매는 규율가는 동 떨어진 포장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인해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감정의 골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낱 작은 물방울에 불과한 나의 감정 하나하나는 김승영의 작품을 통해 거세게 일렁이는 물결이 되고, 이는 강한 파도가 되어 나의 마음에 큰 파동을 일으킨다. 바로 김승영 작가의 라는 설치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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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영, < Knock 쓸다 >, 270x660x380cm, 나무_문_철, 2017


넓고 어두운 전시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이다. '탕탕- 타탕당!'. 그 소리는 너무나 긴박하게 들렸으며 원치 않던 침입자가 나를 찾아온 것만 같아 불안감을 조성한다. 소리를 따라 한 가운데로 가면 나무로 지어진 직사각형의 설치물과 이 안으로 향하는 커다란 철문이 보인다.

문고리를 돌려 그 안으로 들어서자 나의 고막을 위협하던 knock 소리는 그대로 멈춰버린다. 대신 거대한 어둠이 동시에 나를 삼켜온다. 폐쇄적인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운 암흑과 적막함 속에 덩그러니 방치된 것만 같아 무서웠기에, 그 자리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 속을 빙빙 맴돌았다.

그런데 그 순간 순간의 공포가 감추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하는데, 그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유리 거울이 설치되어 있어, 유리에 비춰진 나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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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의 두려움과 불안함의 진실된 감정들이 만들어 내는 나의 외면을 처음으로 마주했던 순간이 아니었다 싶다. 행복, 슬픔, 열정, 부끄러움, 외로움, 상처, 두려움, 질투, 분노 등의 감정들은 같은 '단어'로 형용되지만, 사람마다 각기의 감정을 느끼는 상황과 깊이는 다르다.

< Knock 쓸다 >라는 작품이 야기시키는 같은 '두려움'의 감정일지라도, 사람마다 해당 감정을 느끼게 된 이유가 다 다들 것이고, 어쩌면 어떤 이는 두려움 대신 또 다른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우선 깜깜한 암흑이 나를 집어 삼키는 것이 무서웠고, 또 답답했다. 내가 거대한 세상 속에 혼자 갇혀버린 것만 같은 폐쇄적인 공포가 나를 옭아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마주했던 유리 속 비추어진 나의 모습이 이야기하듯, 모든 감정의 근원은 '나'인 것이다. 즉, 나의 내면 속 깊은 골짜기에서 웅크리고 숨 쉬던 감정들이 외부의 특정 상황과 만나 그 밖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와 진실되게 그리고 온전한 집중으로 마주했던 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나와 함께 나라는 존재를 이뤄온 무수한 부정적인 감정들의 원인을 그동안 밖으로만 돌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원인의 방향을 나의 내부로 돌리기에는 아직 '나'조차 이해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또 다른 '내'가 있을까봐 이를 마주할까봐 두렵다.
 

[이혜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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