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에 대한 처절한 외침, 연극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

글 입력 2018.06.2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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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혜화'를 찾았다. 혜화는 신기한 동네다. 작은 극장과 극단이 모여있는 이 동네는 많은 사람들이 '연극'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실제로 나에게 혜화 오는 날은 곧 관극 하는 날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어떤 극을 보기 위해 혜화를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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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보게 된 극은 극단 '떼아뜨르 봄날'에서 올리는 연극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였다. 제목에서부터 이 극이 '삶'에 대해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줄 것이라는 느낌이 온다. 하지만, 포스터나 제목의 어감이 주는 분위기를 보면 그 이야기가 마냥 희망적일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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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분위기는 극장 로비에서도 계속 느껴진다. 로비에 배치된 포스터들은 배우들의 표정을 집중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봐도 이 극이 보여줄 '삶'에 대한 이야기는 밝고 희망적이기 보다는 어둡고 처절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극의 분위기를 어렴풋이 느끼며 표를 받으러 내려오니, 극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적힌 팜플렛과 극의 한 장면을 묘사한 듯한 엽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극을 관람하기 전 어느 정도의 사전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역시나 이 팜플렛의 설명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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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가난과 불안정한 생계가 걱정인 한 가정. 엄마는 영어 학습지 판매원, 아빠는 일용직 노동자, 어리고 착한 두 딸.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발버둥치던 그들에게 마침내 '한탕'의 기회가 찾아오고 부부는 거액의 빚을 얻어 그 기회에 올인한다. 그러나 기대와 믿음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고, 감당할 수 없는 빚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부부는 어린 두 딸과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곡절 끝에 아이들만 죽고 부부는 살아남아 도피생활을 이어가는데...

*
 
이 작품은 수년 전 실재했던 사건을 소재로, 삶을 향한 본능적 끈질김 앞에서, '살아가는'것이 아닌 '살아지는' 삶이라도 유지하고자 했던 어느 부부의 아픈 역정을 다룬 작품이다. 제 손으로 자식을 먼저 죽인 부모로서, 마땅히 죽어야 함을 알면서도 이미 경험한 죽음에의 공포 때문에 죽지 못하는 참담함, 그렇게 이어지는 반쪽짜리 삶에서 나마 가끔 찾아오는 생의 생생함, 살아있는 자만이 느끼는 사소한 기쁨과 즐거움들...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는 삶과 죽음의 언저리를 처절하게 맴도는 남녀를 통해 삶의 무신경함과 무자비함, 그리고 정말로 '살아있다는 것',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당혹스럽고도 날선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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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설명만 봤을 땐 이 극이 자칫 신파적인 분위기로 전개될까봐 걱정이 됐다. 신파적인 작품을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더더욱 이 점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극이 시작되고 얼마 안되 이 걱정은 무의미해졌다. 이는 극의 연출과 장르 덕분이었다. 만약에 이 내용을 사실적으로 보여줬다면 분명 신파적인 작품이 됬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극은 표현주의라는 장르를 선택함으로써 이를 아주 영리하게 피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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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믿음이나 신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삶,
인간의 위지 따위는 아랑곳없는,
삶 그 자체의 엄혹함과 참을 수 없는 달콤함!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모순적인 욕망과 윤리,
본능과 당위의 수레바퀴 사이에서 늘 흔들리는
인간 존재의 생생한 서글픔에 대해
노래하는 서정적인 작품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

 
위의 말대로, 극을 보다 보면 계속해서 '본능적인 욕망'과 '지켜야 하는 윤리의식' 사이에서의 불안을 느낄 수 있다. 현식과 은주는 이 둘 사이에서 계속해서 갈등한다. 둘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들의 모습은 끊임없이 '모순'을 보여준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살고 싶다는 외침으로 들렸고, 살아남아 삶의 달콤함을 누리는 그들의 모습은 어쩐지 삶을 살아가는 모습 같지가 않았다.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는 이런 모순 투성이인 불안한 인간 존재를 보여줌으로써,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이토록 불안정한 우리 인간 존재에게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아마 우리 모두는 삶을 살아가며 이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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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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