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난 행복해, 난 괜찮아.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

글 입력 2018.06.2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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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아직살아있네요_포스터.jpg
 

난 행복해
우린 괜찮고
남편은 날 사랑하고
애들은 호주에 있어
난 행복해
우린 잘 살고 있어

-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 中




그들은 살아있었다.


아내는 발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매일매일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 낡은 구두를 신고 아침부터 밤까지 돌아다니고 겨우 집에 돌아와서 하는 샤워조차 눈치를 봐야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딸들의 발을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발이 좀 아파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들을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아픈 발의 감각을 잊은 채 일을 해야만 했다. 남편은 오늘도 일이 없어서 술을 마시고 들어왔지만 아내의 발을 주물러주었다.

그들은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럼 살아있는 것이겠지. 그들은 가난했지만 그래도 살아있었다. 아내는 영어 학습지 교사, 남편은 일용직 노동자. 이 부부는 착한 두 딸과 함께 친척 집에 얹혀서 살고 있었다. 아내는 승진을 위해서, 한탕을 위해서 빚까지 내어 올인하지만, 그 희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고, 이 부부는 좌절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부부가 선택할수밖에 없었던 것은 동반자살. 수면제를 먹여서 연탄을 피웠지만 중간에 깬 두 딸을 부부는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

여기서부터, 부부의 '삶'은 끝이 났다. 두 딸은 죽고, 부부는 살아났다. 부부는 두 딸을 따라가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막상 죽음 앞에서 선택을 하자니 갈등하게 된다. 삶의 희망이자 사랑하는 공주님, 두 딸을 죽인 손에서는 그 흔적과 죄책감이 떠나지 않고, 눈과 귀에서 딸들의 향연이 둥둥 떠다닌다. 일단, 숨은 붙어있던 이 부부는 살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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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함을 공연하다.


이 연극은 단순히 대사로만 이루어진 연극은 아니다. 대사, 표정, 춤과 노래 등 '공연'적인 요소들까지 접목시킨 운문적인 연극이었다. 너무나도 처참한 현실을 강렬하기도 하고 감미롭기도한 음악과 춤으로 표현을 하니 그 장면 장면이 더욱더 처참하며 처참함이 최고조가 되니 그 모습이 아름다움으로 착시를 일으키는 효과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송은지 배우의 노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그 역할이 굉장히 컸고, 연극의 몰입도를 더욱 높여주었다.

글 가장 앞부분에 인용한 대사는 연극의 마지막 부분에 아내가 웃으며, 절규하듯이 반복해서 하는 말이다. 행복하다고, 잘 살고있다고, 남편은 자기를 사랑하고, 아이들은 호주에서 행복하게 공부하고 있다고. 자신은.. 행복하다고. 너무나도 큰 절망과 죄책감, 좌절감과 고통 속에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면 살아가는 것 조차 불가능한 가여운 여자가 선택한 방법이다.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_장면사진5.jpg
 


살아간다는 것을 질문하다.


좋은 기회로 이번 연극은 가장 앞자리에서 관람하게 되었다. 덕분에 배우들의 눈물 한방울 한방울, 얼굴의 근육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전부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눈물의 무게, 그리고 그 눈물에 담긴 수많은 감정들. 슬픔, 고통, 공포, 죄책감, 허무, 절망, 셀수 없을 만큼 많은 감정과 생각이 담긴 눈물은 한방울 만으로도 가슴속에 어떤 멍울을 만들어내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목숨이 붙어있다고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숨죽이면서 유령처럼 살아가도, 현실감 없이 정신을 놓은채 살아가도, 죽지 못해서 살아가고 있어도 우리는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삶의 가장 바닥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지는' 사람들의 삶. 죽지 못해서, 삶도 두렵지만 죽음을 선택할 수는 없어서 미쳐버린 상태로 그저 연명하는 삶. 숨소리도 말소리도 내지 않고 정착하지 못한채 떠돌아다니면서 본인을 숨기고, 거짓말하면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삶. 모든것을 잃어버리고 가장 사랑한 것마저 자신의 손으로 파괴시켜버린 삶. 90분 남짓의 연극은 쉴틈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런 삶에서 당신은 어땠을지,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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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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