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 라디오를 켜봐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6.2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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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매체는 한마디로 ‘변화’의 매체다. 사회변화의 속도를 보고 싶다면 곧 TV를 들여다보면 된다. 항상 새로운 것, 유행하는 것, 자극적인 것들이 온갖 프로그램들의 물결 속에서 연신 넘실거린다.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화려하고 보기 좋은 것들과 새로운 물건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경우가 많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세련되고 외적으로 우월한 연예인들이 화면 속 세상에서 살아 숨쉰다. 불과 5년 전 드라마의 재방송을 봐도 단번에 촌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TV는 그것을 시시각각 담아낸다.

그러나 5년 전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라고 한다면 나에게 그건 그다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는 지금과 크게 달랐던 것이 없었을 뿐 더러, 그 당시 썼던 휴대전화나 책가방 같은 것들을 보면 촌스러움 보다는 그 물건과 얽힌 기억과 추억 같은 것들이 더 크게 떠오르곤 한다. 나는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나이를 이만큼 먹었다는 것이 어색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사람에게는 이렇듯 가끔씩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너무 빨리 변해가는 것들에 대한 서글픔이 느껴지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날에 TV를 켜면 거기에는 여전히 ‘지금’의 빠르기만 한 세상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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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순간,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라디오’라는 매체가 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오직 소리를 통해서만 듣는 이와 소통하는 이 매체는 TV와는 달리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물론 예전의 아날로그 라디오 대신 스마트폰 어플과 ‘보이는 라디오’가 새로운 라디오의 매개체로 자리잡긴 했지만, 라디오 방송은 여전히 세상이 변하는 ‘속도’ 보다 ‘사람’에 집중한다.

DJ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듣는 이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DJ에게 전하며 주파수를 통해 서로 끊임없이 소통해 나간다. 점점 대화가 줄어드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이것만으로도 라디오가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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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라디오가 가진 매력은 비단 ‘소통’에 그치지 않는다. 라디오에는 소통을 말미암아 전해지는 따뜻한 ‘위로’와 ‘공감’도 있다. 특히 저녁 8시 이후부터 시작되는 밤 시간대 라디오에서 이러한 위로와 공감은 빛을 발하는데 그 이유는 이 시간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때라는 것과, 흔히들 말하는 ‘저녁 감성’, 혹은 ‘새벽 감성’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때라는 것에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나는 라디오의 매력이 가장 극대화되는 시간이 바로 밤과 새벽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인데다 생각과 마음이 가장 말랑말랑해지는 시간에 받는 위로와 공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장의 가장 가까운 곳에 와 닿기 마련이니까.

한편, 라디오의 매력은 ‘음악’에도 있다. 그 어느 매체보다도 라디오는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프로그램의 오프닝과 엔딩, DJ의 멘트와 멘트 사이, 심지어 광고에서까지 라디오의 곳곳에 음악이 숨어 있다. 하지만 라디오의 음악이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순간은 바로 앞서 말했던 ‘이야기’를 통한 소통의 순간,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전할 위로와 공감의 순간을 음악이 마지막 퍼즐 조각처럼 온전히 메꾸는 때가 아닐까 한다. 또한 그렇게 전파를 타고 흐르는 음악은 많은 청취자에게 있어서 그저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닌 그 시간의 공기, 혹은 그 날의 기억으로 남아 오래도록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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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러한 이유로 나는 조금의 긴장감과 피곤함을 함께 안고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시 라디오를 습관처럼 켠다. 주파수를 타고 사람과, 그 사람의 이야기와, 일말의 위로나 공감과, 음악이 흘러나와 나에게 닿을 때. 그리고 듣는 이인 내가 그 모든 것들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 때 라디오는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에. 이제 나에게 라디오는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매체가 되고 말았다. 마음 둘 곳이 없는 것만 같은 오늘, 혹은 온전히 고독의 한 가운데에 서 있고 싶은 오늘이라면 잠시 라디오를 켜보는 것은 어떨까? 그 곳에는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현실보다 ‘따뜻한’ 오늘의 세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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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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