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과사람①: 나의 십대 - 레이디버드 [영화]

과거의 자신을 받아들이기
글 입력 2018.06.30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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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학창시절에 대해 거의 되돌아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기도 했고,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면 할수록 학창시절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아이와 어른 사이의 나이대인 십대 후반은 전반적인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난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떠올려 보니, 잘 기억나지 않고 일기 같은 구체적인 기록도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사진은 한껏 꾸민 날에만 찍었고, 그랬던 날은 일 년 중 몇 번 없는 소풍, 수련회, 방학식이나 종업식뿐.

한 가지는 분명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세상을 맛봤을 때, 나는 과거의 내 모습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십 대의 내 모습이 부끄러웠고, 이전 모습과 달리 멋지게 변하는 게 성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외모에 큰 변화를 주거나 이전과 다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노력하는 것을 비웃는 편이었다. 갑자기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져? 자신을 받아들여야지, 하면서.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정작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나였다.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자 결국 ‘나’는 달라지지 않았고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나를 괴롭혔다.

어릴 때는 게임을 할 때, 전적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떤 경기에서 이미지가 좋지 않게 박히면 그냥 새 캐릭터를 만들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과거의 행적을 리셋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의식중에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인생을 그만 두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수를 하거나, 스스로 찌질하다고, 못났다고 생각되는 모든 순간에 그런 충동을 느꼈다. 나 자신이 부끄럽고 그 감정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어리석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학창시절에 대해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즐거운 추억도 많았는데, 부끄러움에 뒤덮여 함께 희미해진 그 시절의 기억들.

그래서 신기했다. 자신의 학창시절에 대해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얼마나 면밀히 곱씹었던 걸까? 그 시절을 거쳤던 무게가 달라서 그런 것일까? 나에게는 너무나 빨리 지나갔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저 무난하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던 시간들이 그들에게는 일련의 과정이었던 걸까. 나의 시간은 분절되어 있고, 연결고리는 불안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에게서 내 삶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내가 끊어 버린 지점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차곡차곡 쌓인 시간과 관계가 어떻게 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지 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그것을 알려준 작품이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버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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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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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버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새크라멘토에 사는 고등학생 크리스틴이 자기 자신에게 붙인 이름이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한 번에 ‘레이디버드’라고 부르는 일은 드물지만, 크리스틴은 자기 이름은 ‘레이디버드’라고 꿋꿋이 지적하며 스스로 지은 이름을 사용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다소 당황한 반응을 보이든 말든 레이디버드는 당당했고, 이런 고집스러운 태도 덕분에 가까운 사람들은 ‘레이디버드’를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된다. 그녀의 성격을 단번에 보여주는 장면이 도입부에 나오는데, 엄마와 차 안에서 말다툼하던 레이디버드가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것이다. ‘레이디버드’가 어떤 인물인가를 선전포고하듯 보여주는 유쾌한 장면이었다.

레이디버드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 새크라멘토를 촌구석 취급하며 벗어나고 싶어 한다. 예명은 자신이 부여한 정체성이지만, 부모님이 지어준 자기 이름에 대한 일종의 거부이기도 하다. 가까운 대학에 지원하기를 바라는 엄마에게 동부의 대학들에 지원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잡으려고 악바리처럼 노력한다. 레이디버드는 확실히 말 잘 듣는 딸은 아니다. 원하는 것이 뚜렷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모해 보이는 수단도 가리지 않으며, 남자를 얻기 위해 가장 친한 친구까지도 뒤로 하는 다소 무정한 면모도 가지고 있다. 자존심 센 성격 덕분에 베프 줄리에게서 “넌 네가 주인공이 아니면 아무 것도 못 하는 관심종자야.”라는 말까지 듣게 된다. 나쁘게 보면 오만한 철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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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런 레이디버드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을 꾸밈없이 그려낸다. 가족들과의 잦은 마찰, 친구와의 관계 단절, 들통난 거짓말, 남자에 대한 실망 등... 실제로 레이디버드가 했던 고민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그 나이를 거친 여자들이라면 공감할법한 것들이다. 부모님이 날 사랑하는 것은 알지만 나를 좋아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 잘못을 저지른 친구에게 사과하고 화해하는 일과 같은 고민들. 그 중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자식이 항상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기를 바란다는 엄마에 대한 레이디버드의 반응이었다.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나는 사실 그 반대쪽이었다. 엄마의 관점처럼,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 생각과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을 미루면서 자랐다. 그러니까 십대 후반에 레이디버드 같은 애를 봤으면 유별난 고집불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레이디버드의 태도가 옳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뜻대로 얌전히 자란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구체적인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확실히 나를 마주보는 데 도움이 됐다. 이 사람이 이렇게 자랐듯이 나는 그렇게 자란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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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버드의 성장 배경은 감독인 그레타 거윅과 매우 닮아 있는데, 가상의 이야기일지라도 자신과 닮아 있는 캐릭터의 치부를 포함한 모든 감정선을 이토록 사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놀랍다. 18세 생일에 담배와 ‘플레이 걸’을 산 후 벽에 기대 담배를 피우며 잡지를 넘겨보는 레이디버드의 모습은, 나였다면 웃겨서 숨기고 싶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귀여워 보였다. 영화를 보던 나도 ‘레이디버드’를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감독이 그만큼 치기 어렸던 자신과 그 시절을 보냈던 모든 소녀들을 따듯하게 바라봤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성장 배경뿐만 아니라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도 레이디버드와 그레타 거윅은 닮아 있다. 성인이 되고 원하는 대로 새크라멘토를 벗어나 동부 대학에 진학한 레이디버드는 자신이 싫어했던 본명 ‘크리스틴’과, 고향 새크라멘토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자연스럽게 말하는 크리스틴이라는 이름, 새크라멘토 거리를 처음 운전하며 감상에 젖은 시선은 화면에 차분하게 담겨 마무리를 장식한다. 그 와중에 술에 취해 화장이 번진 얼굴은 아직 치기 어리고 자존심 세지만 주관은 뚜렷한 그녀의 성격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것은 모든 철없던 시간이 모여 만들어진, 자신의 과거를 똑바로 마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그려낼 수 있는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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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거윅은 한 인터뷰에서 크리스틴이 자신과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이 세상 모든 딸들의 십대 시절을 상징하는 캐릭터라고 답한다. 주관이 뚜렷하지만, 고집 세고 오만하며 철없는 소녀였던 크리스틴은 원했던 대로 부잣집 친구들과 어울리다가도 자신의 길이 아님을 서서히 깨닫고 결국 가족의 품으로, 친구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했던 일들은 ‘흑역사’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행착오였던 것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딸을 사랑한 엄마의 애정이 그녀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었다. 나 또한 한 명의 딸이고 그것이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역할이기에, 국적 성격 환경이 모두 다른 레이디버드의 이야기에 푹 빠졌고, 나의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십대를 벗어난 지 4년 가까이 지나고 봤지만, 앞으로 나의 십대를 떠올리면 이 영화가 함께 떠오를 것 같은 이유이다.





이미지 출처: 영화 '레이디 버드'




[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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