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그파이트_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 [뮤지컬]

안타까웠던 번역
글 입력 2018.06.3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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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파이트
: 개싸움. 가장 못생긴 여성 파트너를 데려온 사람이 상금을 타는 대회


정식으로 본 첫 뮤지컬이라 기대감에 한껏 들떴다. 현란한 무대 구조와 조명, 음향이 관람 내내 '내가 바로 뮤지컬이다'를 외쳤다. 배우들의 연기와 보컬도 풍성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구성과 연출에서 조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뮤지컬을 보러 가기 전, 미리 들어봤던 수록곡들의 존재감이 현장에서 오히려 희미했다. 번역 문제가 제일 큰 문제다. 뮤지컬에서 가장 몰입하게 되는 중요한 서사에서, 번역을 너무나 대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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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원작 노래 < Pretty Funny >에서 'isn't funny'라는 가사가 있다. 작중 로즈가 설레하면서 참가했던 파티에서, 파티의 남자 모두에게 못생긴 외모로 조롱당했음을 알게 된다.

적어도 미리 살펴본 노래 가사에서는 상처받은 심정을 도입으로 하면서 절정에서 분노를 표출하고 다시 체념하면서 마무리하는 전개였다. 상처와 분노, 체념의 감정 모두를 담기에 'isn't it funny?'라는 가사가 매우 잘 어울렸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웃기는 하루'랜다.. 정말 웃겼다..갑자기 상처 - 상처 폭발 - 체념 수준의 전개였다. 내 식견이 짧았다고 할 수 있으나..

한국의 로즈는 상처를 준 주체보단 자기 외모 때문에 그런 상처를 받는다는 듯이, 오히려 자기와 사회에게 화를 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가해자보단 피해자에게 잘못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나, 로즈의 수동적이었던 성격을 반영했다고 한다면 뭐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캐릭터가 붕 뜬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작에서는 노래를 기준으로 로즈가 더 자기감정과 생각을 표출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노래를 기점으로 갑자기 로즈가 능동적인 캐릭터로 변했다. 캐릭터가 붕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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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롱당했음에도, 여주인공이 다시 넘어가 주는 장면이나 ( 마치 퀘스트를 주는 npc처럼 형식적이었다.) 군에서 편지를 안 했음에도 그걸 제대로 짚지 않고 로즈에게 다시 상처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음에도 친구들이 죽었다고 하는 것이나 로즈가 바로 수긍해버리는 장면에서 필자는 파시식 식을 수밖에 없었다. 섬세한 전개라고는 볼 수 없었다. 너무 급한 마무리였다.

제목에서도 그랬듯이, '도그파이트'는 중요한 장치다. 가장 못생긴 여성 파트너를 데려온 사람이 상금을 타는 대회다. 데려올, 데려온 여자 파트너를 못생긴 '개'에 비유하며, 그들의 외모를 조롱한다. 중요한 장치인 '도그파이트'는 현장에서 그저 수단이었다.

맥락 상, 군인이었던 주인공과 친구들은 군, 전쟁에서 자기가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압박감, 극심한 스트레스가 쌓였을 것이며 이를 해소할 수단 같은 게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환경에서도 몹쓸 짓을 하지 않았겠지만.. 한마디로 도그파이트는 원초적인 감정과 욕망이 이리저리 뒤엉켜서, 사람이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회였다. 또한 대회 참가자였던 여성들은, 자존감이 박살나고 평생 지울 수 없는 잔인한 기억을 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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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치를 마련해놓고서도 마무리가 덜 됐다. 사랑의 수단이자, 로맨스의 수단으로 도그파이트를 사용했다. 상처받은 여인들은 잠깐 조명됐을 뿐이며 한순간 치유됐다. 그냥 서사를 연결하기 위한 매개일 뿐이었다. 적어도 제목에 도그파이트를 달고 나왔으면 마무리는 잘 해야지.. 사랑하면 조롱했던 것들이 다 무위로 돌아간다는 것인가? 대충 덮어두고 가는 구성은 마치 작품 전체가 도그파이트를 정당화하는 것만 같다..

뮤지컬을 보는 나도 혼란하며 황당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는데, 비슷한 경험이 있는 관객이 이 작품을 봤다면 어떡할까? 사실 한국에서 외모로 조롱받지 않기가 더 어렵기 때문에, 나도 비슷한 경험이 기억났다. 더없이 불쾌감만 남은 뮤지컬. 물론 내용 상관없이, 배우들의 연기나 보컬은 좋았고 반짝거리는 무대 조명은 화려했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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