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 같은 연극 '댓글부대'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7.01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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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4년 간 민간인 수천 명으로 구성된 댓글부대를 운영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특히 대선이 있었던 2012년에는 30개 팀, 3,5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주로 정치기사에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한 달 인건비로만 2억 5000만원이 지급되었다고 JTBC 뉴스룸에서 밝혔다. 2억 5000만원, 이 돈은 어디서 거저 나온 것이 아니다. 바로 국민의 피땀이 묻어 있는 세금에서 가져온 것이다. 세금뿐만 아니라 댓글로 여론 조작을 했다는 사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사회를 암울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진실을 밝힌 소설이 있었다. 바로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을 밝혔다는 장강명 작가님의 ‘댓글부대’였다. 그러나 2018년이 되어서도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은 여전했다. 지시한 진영이 달라졌을 뿐 ‘드루킹’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고 아직도 댓글 여론에 놀아난다는 불쾌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2017년에 초연된 ‘댓글부대’는 그러한 논란 속에서 ‘공연예술 창작산실’* 작품으로 선정되어 올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진실’이 잘 담겨져 있을까하는 우려와 기대 속에서 필자는 ‘댓글부대’를 관람하러 대학로로 떠났다.

*공연예술 창작산실: 제작부터 유통까지 연극, 무용, 뮤지컬, 전통예술, 오페라 등 공연예술 전 장르에 걸쳐 단계별 지원을 통해 우수 창작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사업입니다.



지금 인터넷은 언제든 당신을 포섭할 준비가 되어 있다!_팀-알렙의 이야기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발해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티비를 통해서 뉴스를 확인했다면 요즘은 뉴스 방송 대신 SNS나 카페,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달받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 급속도로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다. 그것이 바로 ‘댓글부대’가 노린 점이었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등의 문장들은 2012년 국정원 사건 후 나타난 ‘2세대 댓글부대’가 사용하는 선동의 언어들이다. 사회에 ‘분노’를 심는 것 그리고 진실의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 바로 연극 ‘댓글부대’에 등장하는 팀-알렙의 지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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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문화인_팀-알렙)


팀-알렙은 미모의 인터넷 여강사의 사진을 포토샵해서 짝가슴으로 만들고 김치년이라고 소문내기, 기업 상품평과 유학 후기를 지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트기 등 여느 일베와 다름없는 그룹이었다. 그러다 실제 어느 기업에서 있었던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의 인권을 다룬 영화를 망하게 해달라는 조직 합포회의 의뢰를 받게 되고 이들은 그 작전에 성공하게 된다.

그들의 작전은 바로 ‘진실의 관점 전환하기’였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한 스태프를 생각해내어 성실하게 알바도 하고 열심히 영화작업에도 참여했지만 임금 체불이 계속 지연되고 있어 생활비조차 없는 지경이다, 인권을 다루는 영화인데 영화인들의 인권은 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냐 라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리고는 마치 1인 시위를 하는 듯한 사진을 다각도에서 찍고 마치 영상에서 캡처한 듯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처음엔 쉬쉬하던 사람들은 점점 그 글이 퍼지면서 거짓인지도 모른 채 믿기 시작했고 결국 진보 진영에서도 ‘지지를 철회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처음에 이런 일이 없다고 주장한 영화사는 결국엔 있지도 않은 스태프에게 임금을 지불했으며 일을 잘 마무리했다라고 밝히는 웃긴 일도 중간에 발생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신세계일보 임소진 기자에게 제보한 팀-알렙의 멤버 찻탓캇은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이다’라고 말하며 그 영화사에서 실제로 임금 체불이 지연된 적이 있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영화와 영화사가 망하게 된 것은 당연히 있었어야 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끝없는 권력 욕심, 타락하는 젊은 세대


경제 연구원, 국정원 팀장, 대기업에서 온 듯한 ‘이철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 합포회는 부와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로서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자 팀-알렙을 적극 활용한다. 그리고 이들이 영화를 망하게 했을 때 이들은 ‘여성혐오’를 내세우고 사회에 ‘분노’를 심으며 ‘적’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여 여론 조작을 하고자 했다. 특히 암막에 감춰져 있는 ‘회장’이라는 사람은 경제가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분위기가 경제를 만든다고 하며 진보 인사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부각하여 ‘아직 물들지 않은’ 10대들에게 그들을 따라가면 얼마나 찌질한 미래를 갖게 될지 보여주라고 말한다. 여성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어린 세대의 마음까지 꿰뚫는 회장은 권력에 이미 몸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끝없는 욕망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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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문화인_조직 합포회 멤버: 국정원 팀장, 이철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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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문화인_암막 속에 가려진 회장)


팀-알렙의 리더인 삼궁 역시 회장과 합포회를 만난 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이철수가 팀-알렙의 멤버 3명에게 초밥을 하나씩 먹여주며 권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어긋난 생각을 심는다. 결국 삼궁은 자신이 소모품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권력에 욕심을 내게 되면서 팀-알렙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언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제보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사를 내려던 임소진 기자는 뚜렷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황만 있으면 기사로 낼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밝혀진 진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찻탓캇은 기자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기자님, 저희는 멘탈이 아주 강해요. 왜냐하면 멘탈이 없거든요.”

깨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없기 때문에 이들을 공략하게 되면 쉽게 잘못된 생각에 물들 수 있다. 찻탓캇이 말한 이 얘기는 앞으로 더 많은 이가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전제를 보여준 듯했다.



여성 캐릭터의 역할 그리고 연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이 연극을 만든 이은진 연출가는 이번 공연에서 초연과 달리 여성 캐릭터를 많이 활용했다. 원작에서는 모든 주인공인 남자인 반면 기자와 신문사 국장이 여자로 등장했다. 이는 찻탓캇이 기자에게 제보를 할 때 기자의 입장에서 또 여자의 입장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연극 전반적으로 ‘여성혐오’ 시선이 들어가 있기에 사회를 주도하는 ‘남자’ 그리고 약자로 치부되는 ‘여자’라는 이분적인 방식으로 내용을 해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자 캐릭터를 사회 주도권에 조금 넣으면서 남녀대결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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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문화인_찻탓캇과 임소진 기자)


이은진 연출가는 이 작품을 통해 시민사회의 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이 작품이 편 가르기가 아닌 건강한 논쟁의 장이 되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있을 법한’ 이야기를 통해 ‘나도 모르게’ 조정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과연 여론을 100% 믿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온라인에 노출되어도, 사실이 쉽게 조작될 수 있어도 자신의 건강한 생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댓글놀음이나 게시글에 현혹되기 보다는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을 갖고 있는 것, ‘진실’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는 것, 이것이 바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김민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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