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치적 올바름과 컨텐츠적 완성도 사이 - 페미니즘 연극제: 조건만남, 기억이란 사랑보다

글 입력 2018.07.0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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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스트다. 인권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연극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래서 페미니즘 연극제의 존재를 알았을 때, 이건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던 이들이 줄줄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미투운동의 시발점이 됐기도 했고, 극 대부분이 남성 역할로만 이뤄져있다거나, 성소수자를 말하는 극의 대다수가 생물학적 남성 성소수자들만을 다루는 등 연극판도 굉장히 남성 중심적으로 꾸려져 있기에 한국사회에서 ‘연극’으로 페미니즘을 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아트인사이트에서 문화초대가 왔고 나는 고민치 않고 바로 신청했다. 연극으로 페미니즘을 얘기했을 때 어떤 의미를 창출할 수 있고, 나는 거기서 어떤 감흥을 얻을까?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리고 기대는, 역시나 배신감으로 돌아왔다. 연극을 보면서 나는 계속해서 <블랙팬서>를 떠올렸다. 페미니즘 연극에 갑자기 블랙팬서라니, 뜬금없을 수 있지만. 보는 내내 나는 끝없이 ‘정치적 올바름과 컨텐츠의 완성도’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블랙팬서>를 보고, 자신들을 깔보는 백인을 비웃는 와칸다 사람들이라던가 오코에나 슈리 등등 그 누구보다 강인한 언니들을 보면서 굉장한 쾌감을 느꼈기에 어느 정도는 소위 ‘뽕’에 차올랐었다. 아무래도 개연성이 애매하고, 주인공인 트찰라의 서사가 악역인 킬몽거보다 매력이 없고, 너무 설명조라서 중간부에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등. 분명 다른 마블 영화보다는 ‘재미’가 없고,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랙팬서>의 그 정치적 올바름이 나를 만족시켰기에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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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팬서> 스틸컷


그런데 모두가 나같은 건 아니었던 듯 했다. 영화평가 어플 ‘왓챠’엔 ‘정치적으로 올바르면 완성도가 낮아도 고평가 받아야하나’ 라는 식의 리뷰들이 꽤 있었다. 그러한 리뷰들을 읽고 생각이 많아졌었다. 사실 만듦새가 그렇게 좋은 영화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고평가하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고찰이랄까. 컨텐츠를 평가하는 기준에 있어 ‘정치적 올바름’에 얼마나 가중치를 부여해야하는가에 대해서 고민이 됐다. 과연 완성도가 낮은 컨텐츠가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에 추앙 받는 것은 옳은 일인가.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도 그릇된 이데올로기를 담고있음에도 완성도는 높은 컨텐츠보다는 낫다는 싶기도 했고, 어쨌든 나는 그 정치적 올바름에서 ‘재미’를 느끼니 이 또한 컨텐츠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큰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정치적 올바름’이 굉장히 큰 평가지표가 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컨텐츠 그 자체의 완성도와 별개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면 나는 기꺼이 향유할 의지가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조건만남’과 ‘기억이란 사랑보다’를 보곤 다시 고민하게 됐다. 과연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지만 그래도 잘 만들어져 재밌는 컨텐츠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 만듦새가 좋지 않아 재미가 없는 컨텐츠가 있다면 뭘 선택할 것인가.

이 고민을 하게 된 건 연극이 정말 심하게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애인과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였는데, 장애인 극단 애인 배우들이 연기를 하셨다.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특히나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장애인이 하니까 거기서 오는 묘한 감동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스토리나 연출이 너무 조악했다. 그나마 ‘조건만남’의 경우는 일단 짧기도 했고, 그 상황을 통해서 생각해볼만한 의제를 던져주었기에 그래도 나았다. 물론 연극 상에서의 그 상황조차도 ‘현실에선 저런 공방도 없이 힘을 가진 성인 남성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 않을까’하는 싶고, 현실이 더 처참할거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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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억이란 사랑보다’의 경우 관람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고작 4-50분 정도 되는 길이의 연극임에도 힘들었다. 일단 너무 늘어지기도 했고, 중반부까지는 개연성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려 인근의 도장가게로 들어선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하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도움을 구하려 들어온 사람치고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너무 많은 대화를 나누고자 해서 처음엔 그 여성이 무례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타인에게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았다. 이 의문은 뜬금없이 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할 때 배가 됐다. 상대도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타인한테 뜬금없이 ‘이 사람이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예요’라고 고백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점점 도장 파는 여성이 가방을 잃어버렸던 여성의 어머니였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가시질 않았다. 클레이로 꽃을 만드는 장면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그 장면의 의미 또한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수제비를 끓이는 장면에서는 그 의뭉스러움이 배가 됐다. 7번방의 선물에서 열기구를 만드는 장면을 보는 기분이랄까. ‘밥’이라는 게 어머니의 정, 사람간의 정 등등 수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기에 ‘수제비를 끓여준다’는 장면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 메시지가 하나도 와 닿지 않았다. 클레이를 만드는 장면에 이어 수제비를 끊어내는 장면이 이어지니 작위적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메세지를 주고자하는 의도가 너무 빤히 보이니 그 메시지에도 거부감이 생기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뻔히 보이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던져줄 거면 차라리 같은 이야기를 하는 논설문을 읽지 굳이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와서 이 불편한 의자에 앉아있을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시간에, 멀리까지 찾아가서,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자유를 제한당하면서도 연극을 보는 건 굳이 연극이어야만 얻을 수 있는 감동들이 있기 때문인데 이번 연극에선 굳이 연극을 보러와야할 이유를 전혀 못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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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팬서> 캡처


그래서 다시금 고민하게 됐다. 이 연극들이 주는 메시지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준으로 이 연극들을 고평가할 수 있겠는가. 일단 나는 이 연극들이 주는 메시지가 올바르다고 해서 관극하는 시간을 즐길 수 있었나.

<블랙팬서>때와는 다른 결론이 나왔다. 어쨌든 컨텐츠는 기본적으로 어떤 의미에서라도 ‘재미’있어야 하고, 그 ‘재미’를 확보하지 못한 컨텐츠는 수용자로 하여금 항유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해당 컨텐츠가 주는 의미나 메시지 따위는 사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책이나 논문을 읽었을 때 근거도 탄탄하게 더 강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컨텐츠가 컨텐츠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할 때는 컨텐츠 그 자체의 완성도, 그 자체의 재미를 어느 정도 담보해야한다. 그 일정 선의 완성도를 담보하지 못하면 아무리 정치적으로 올바르더라도 그 컨텐츠는 컨텐츠로서의 가치가 없다. <블랙팬서>가 정치적 올바름 덕에 고평가 받을 수 있던 건 그 자체의 재미를 일정 부분은 담보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지만 잘 만들어진 컨텐츠가 있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 잘 만들지 못한 컨텐츠가 있다면 무엇을 향유할 것인가. 다시금 내게 질문했을 때, 답도 달라졌다. 사실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도 잘 만들어진 컨텐츠가 최고고, 굳이 위 두가지 선택지에서 선택을 하고싶진 않지만…하나만을 선택해야한다면. 차라리 잘 만들어졌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컨텐츠를 보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비판하는 쪽이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컨텐츠는 컨텐츠 그 자체로서의 존재의미를 가져야하니 말이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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