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에브리데이 데드라인(EVERYDAY DEADLINE)

벼락치기를 대하는 마음가짐
글 입력 2018.07.0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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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치기를 받아들이다


“마감이 영감”이라고, 급한 마음과 집중력은 비례관계에 있다. 적어도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을 땐 늘 그랬다. 예체능인 체육 시험은 전날 교과서 정독하면 된다며 또래 아이들보다 새벽하늘을 조금 일찍 맛본 나는, 그렇게 12년이 지나 대학 졸업을 앞둔 지금, 16번의 벼락치기와 앉은 자리에서 논문을 완성할 수 있는 초인으로 성장했다.

왜 나는 벼락치기를 하는 걸까? 이것을 문제라고 인식하고 고쳐보려 마음을 먹은 적이 부지기수지만, 결국 마감 직전까지 밤을 새우고 있는 나를 또 한 번 발견할 뿐이었다.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룬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미리 해야만 한다는 것에 공감하지 못하는 나는 “하고 싶은 건 최대한 다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하고 싶은 것”이라는 건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그 순간의 감정과 욕구의 충족이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그 순간 가장 하고 싶은 것이라면, 응당 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밤 12시에 친구와 만나 얼굴 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치킨을 시키고 친구의 집으로 달려간다. 나는 이렇게 본능에 충실한 순간들이 결국 삶의 활력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해버릴 때의 쾌감이 그 순간을 최대로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어떠한 ‘결과물’로 흔히 드러나며 노력이 필요한 경우이다. 이때 주로 ‘데드라인’이 발생하며, 첫 번째를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강제성을 가진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어디까지나 “하고 싶은 것”이며, 즉 내 선택과 욕심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에 익숙한 나는 매 선택에 대한 충분한 동기를 가져왔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의 본능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마감이 임박하면 해내야겠다는 욕심이 가장 극대화되어 최상의 집중력을 일으킨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후자에 할애할 시간을 남겨두고, 그전까진 전자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되었다. 명심할 부분은 두 가지의 실행이 확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자를 똑바로 즐겨야 후자가 가능하고, 후자 역시 만족스럽게 결과물을 내야 다시 전자로 돌아가 릴랙스 할 수 있다.

물론 벼락치기라는 것은 개인의 성향과 해당 기질의 유무에 의해 좌우되는 문제다. 나 역시 그저 벼락치기가 ‘가능한’ 사람이고, 원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여 이에 해당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10년 남짓의 일상 훈련을 겪은 나는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기’에 도가 트고, 해야 할 일거리를 스캔하면 각기 몇 시간짜리인지 답을 낼 수 있게 되었다.


꿈과 데드라인의 상관관계


기본적으로 결과물을 내는 경우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그 영역이 정해져 있다. 가장 처음이 글쓰기였고, 다음이 영어, 마지막이 문화예술이었다. 하나씩 내 삶에 등장하며 계속해서 품고 싶은 소중한 무언가가 되었다. 즉, 알아서 벼락치기를 위한 흔들림 없는 기반이 되었다. 이 세 가지에 대한 애정은 내게 오랜 염원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미래에 문화예술에 종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쓰고, 이를 직접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일차원적으로 꿈꾸던 작가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분야에서 일 하며 그것을 다룬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 글을 내 손으로 직접 옮길 때 본래 의미와 뉘앙스를 살려 가장 유사한 단어 및 문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이처럼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한 미래의 꿈에 대한 것은 눈에 보이는 데드라인이라는 게 없다는 것이다. ‘이루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나 희망과 같이 명료히 그려지지 않은 채 두루뭉술한 ‘마음’으로 표현되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겐 한없이 미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활동을 분류하고 지속적으로 구체화 및 실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


최적의 조건, 아트인사이트


그렇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것들을 추구하며 결과물 또한 내고 싶은 욕심으로, 영어영문학과와 문화콘텐츠학과를 복수전공 했고, 바라던 대로 대학 생활 동안 크고 작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보통 학과 이름 아래 수행하는 일들은 광범위한 공통분모를 가진 나머지, 오히려 일회성을 띠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수업이나 활동 별로 큰 연관성 없이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게, 꿈꾸는 미래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으로서 설치된 가장 구체적인 장치는 ‘아트인사이트’이다. 좋아하는 분야에서 지속성과 일관성을 동반한 결과물을 생성하게 된 첫 방법이며, 궁극적으로 막연히 느껴지는 목표를 위해서도 기반을 다질 수 있는 도구이자 무기이다. 1년 전, 내가 주기적인 강제성을 부여한 이후, 지금까지 나태함을 방지하는 장치로도 훌륭히 작용하고 있다.

순간의 욕구와 성취의 욕심을 함께 추구하기는 쉽지 않다. 감정의 욕구 쪽이 무시하기 영 어려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벼락치기를 원한다면, 이 둘의 맺고 끊음에 있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아트인사이트의 경우처럼, 후자에게 강력한 동기부여와 강제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이 원활히 이루어질 때, 둘의 관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이를 받아 주다가도, 정해진 때에 단호히 마음을 돌려 결과물 생성에 매진한다면, 이로써 다시 또 살아지는 것이다. 만족스럽고 뿌듯한 결과물을 냈다는 생각이 작용하고, 특히 애초에 원해서 한 선택이기에 그 과정을 결국 행복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간적인 감정의 만족과 벼락치기가 동반된 결과물의 만족은 서로 영향을 주며, 주체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까, 나는 즐겁다


물론 아트인사이트 기고는 그야말로 매번 밤샘과 벼락치기를 동반한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번번이 맞추는 그 데드라인이 나의 특정 주제 안에서 일관성을 갖고 지속됨으로써, 당장 눈앞의 현재와 막연해 보였던 미래와의 공백을 꾸준히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아트인사이트는 더 이상 단편적 결과물 생성용 장치가 아님을 훌륭히 입증했으며, 보다 구체화된 형태로 내 삶을 완성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가만두면 한도 끝도 없이 나태해지며, 그렇다고 마냥 즐기지도 못한 채 죄책감을 느낄 자신을 너무나 잘 아는 나는, 의도적으로 데드라인을 설치하고 벼락치기를 감행한다. 가끔 욕심이 지나쳐 매일매일을 데드라인으로 살게 되기 일쑤지만, 이렇게 지내는 것이 싫지 않다. 예외 없이 마감날 제출하는 이 글 또한 내게 글쓰기 훈련과 함께 일종의 환기가 더해진 즐거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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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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