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직 '우리'라면 [공연]

공연 리뷰
글 입력 2018.07.0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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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법 있어? 이 길 밖에 없어.”

하나 궁금증이 일었다. 정말 ‘이 길’밖에 없었을까, 죽음을 선택하는 인간의 판단은 어디까지가 ‘맞다고’, 누구의 기준으로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어떤 기준으로도 말하기 어렵기에 이런 공연이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른다, 태어나는 건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는 건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논리적 결함이 없다고 해서 모두 진실일까? 생각해봐야한다.


 
“죽기 좋은 날이에요, 목이라도 매면 어떨까요?”

산뜻한 배경음악과 함께 활기찬 목소리는 날씨를 전하다가, 툭 한마디 내뱉는다. 관객은 웃어야 할지, 슬퍼해야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어조와 의미가 엇갈리는 이 말은 그래서 자조였다. 어차피 이렇게 말해도 너는 죽을 수 없다는 걸 다 안다는 듯. 그만큼 죽음에 대한 권유는 쉬웠고, 쉬울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참담했다. 죽음은 이렇게 좋은 날 소풍을 가는 것처럼,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처럼 ‘아무 일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결정까지 쉬웠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게 끝난 것 같은 그 때에,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무너졌을까. 그나마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건 불행이자 희망이었을지 모르겠다.
 
*
 
‘이 길’밖에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전에도 고민했고, 이 연극을 보고 나서도 고민했다. 그런데도 ‘살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일까?
 
사실 주위에 꽤 있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몇몇이. 지인에게 “나중에 무얼 하고 싶느냐” 가볍게 물었더니, “죽고 싶다”는 대답이 가볍게 돌아왔다. 언니는 그 에피소드를 듣고 “정답이네.”라고 ‘쿨’하게 얘기했다. 친구의 지인이 얼마 전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이외에 아주 가까운 사람들도 내게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동시에 ‘네 마음을 아주 모르지 않아, 그런데도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까지 정확하게 말은 못하겠어.’라는 문장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서 없이 머릿속에 돌아다닐 뿐이었다.


 
“걱정 마. 나 그래도 죽지는 않아.”
 
반대로 그런 걱정을 보기 좋게 뒤집어버린 친구도 있었다. 내가 들었던 모든 이들의 이야기 중에서 내가 아는 한 가장 힘든 상황에 있었던 애였다. 그것도 내가 겪은 한, 가장 어린 나이에. 그 날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내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보았는지 그 친구는 씩 웃으며 이야기했다. 결코 밝은 친구는 아니었지만, 조용히 강한 아이였다. 그리고 겪었던 문제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할 때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였다. 오래 걸렸지만, 쏜살같이 지난 시간이기도 했다. 견뎌준 친구가 고마워 통화하며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
 
삶을 견뎌낸다는 가치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것부터 생각하면 암담하다. 대신 ‘우리’와 ‘아직’이라는 두 단어를 천천히 되뇌어본다. ‘삶’, 혹은 ‘죽음’과 같은 무거운 개념 이전에 떠올려보는 ‘지금의 너와 나’, 그 다음에 삶을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삶을 견뎌내고, 성장하고, 어른이 되고, 이런 것도 중요하겠지만 가끔 숨 막히지 않은가. 대신 지금 당장, 옆에 있는 사람만을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편이 훨씬 쉽다. 연극 주인공들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음에도 여전히 ‘우리’로 존재했던 것처럼, 나와 친구도 여전히 '우리'인 것처럼, ‘아직’, ‘우리’로 있다면, ‘살아있을’ 수 있다.


[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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