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인형을 좋아하더라도 인형의 하루, 인형의 크리스마스 일정까지 생각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엠마는 스토브와 실제로 물이 나오는 펌프가 있는 부엌에서 고기를 굽고 쿠키를 만들고, 다이닝 룸에서 사람들과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온실에서 꽃을 키운다. 서재에는 물레와 체스와 150 여권의 책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엠마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고, 선물을 준비한다. 침실에는 사계절 옷을 보관하는 옷장이 있는데 옷들은 모두 엠마가 사는 시대의 복식을 고증한 타샤의 작품이다.

타샤의 작은 세상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졌다. 가족과 친구들의 선물, 도예가, 공예 장인, 모형 제작자 등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소품들 그리고 타샤의 끈기 있는 수집. 타샤를 똑 닮은 엠마가 사는 인형의 집은 단순한 놀이나 취미가 아니라 타샤 일상의 일부다. 타샤가 살아가는 방식대로 엠마도 살아간다. 타샤에게 엠마는 애착의 대상이 아닐까. 사람은 좋아하는 상대를 자기도 모르게 닮아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상대가 자기를 닮길 바랄 수도 있다. 보통 사이에서 발생하지도, 바라지 않는 서로 닮아가는 일, 동화되는 일.

사실 사진이 많고 글이 적은 책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했다. 주제가 인형의 집이고 다루는 것이 미니어처이니 읽으면서 섬세함에 감탄할 일이 많을 거라 생각했지, 생각할 거리가 많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무언가에 반영하고 싶을 정도의 일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를 설명할 라이프 스타일 같은 건 없다. 그래서 나를 반영하는 작은 세상 같은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책을 덮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면 인형이나 미니어처에 관심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 자신과 내 하루와 내 취향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상이 아닌 일상을 반영하는 인형놀이를 하게 되는 날이 올까. 당장은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런 날이 언젠가 생겼으면 좋겠다. 나를 닮은 작은 존재와 세상을 만드는 일. 나를 반영하는 일, 내 삶의 단면을 담는 시간과 노력을 가지고 싶다, 타샤 튜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