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책임한 기억들, 김성중 「국경시장」 [도서]

“결함은 대단한 자산이야.”
글 입력 2018.07.0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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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작가만의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소설집 <국경시장>이 있다. <국경시장>에서 주인공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현실의 어느 지점에서 절망한 상태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주인공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환상으로 들어가고 있다. 인물들뿐만 아니라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작가가 만들어놓은 환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국경시장은 실제로 있는 장이 아니지만 소설 속에서 공간을 세밀하고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실제로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반복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자신의 삶에 권태를 느끼고 여행을 하는 도중에 국경시장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기억을 팔면 시장의 화폐인 황금물고기의 비늘로 교환해주는 국경시장만의 체계를 받아들이고 그 과정 속에서 만족감을 얻게 된다. 주코라는 인물은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기억들을 팔아서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책을 얻을 뿐만 아니라 사치스러운 생활까지 누리게 된다. 로나라는 인물 역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절망의 세 눈금’이라고 부르는 자살의 흔적들을 팔면서 자신이 원하는 물건들을 구매하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국경시장처럼 고통과 행복을 바꾸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코와 로나처럼 변했을 것이다. 사람은 한 번 욕망에 빠지게 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로나와 주코가 과거의 기억들을 판 이유는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들을 사기 위해서다. 또 다른 이유는 잊기 위해 노력해봐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갈망하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사기로 인해 꿈이 좌절된 ‘나’처럼 더 나은 삶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좌절하는 일은 쉽지만 꿈을 이루는 일은 어렵다. 사람들은 모두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결국에는 기억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치매에 걸리면 대부분의 기억들이 사라져서 소중한 사람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과연 주코와 로나처럼 떠오르지 않는 기억들과 너무 선명해서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까지 팔아버리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주코와 로나는 기억을 팔고 원하는 것들을 얻으면서 쾌감을 느끼게 되지만,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본질적인 모습들은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주코와 로나에게 구걸하는 걸인에게 집중해야한다. 걸인은 이렇게 말한다. “결함은 대단한 자산이야.” 과거의 사고로 인해 얻은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자산으로 만든 걸인은 국경시장에서 살아남게 되지만, 자신들의 상처를 결함으로 여긴 주코와 로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슬프고 나쁜 기억들은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고 생각해서 결함으로 여기고 그 기억들을 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억들도 우리를 이루는 것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걸인처럼 자신의 결함과 절망까지 자신의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기억을 버리는 일은 무심하고 무책임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차유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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