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직 살아있어 행복한가 살기 위해 행복해야 하는가.

글 입력 2018.07.02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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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예고할 수 없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내 삶에도 예고편이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삶엔 예고편이란 없다. 눈을 감았다 뜨면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우리는 그것과 맞닥뜨려야 한다. 모든 것은 '순간' 찾아온다. 나의 행복도, 불행도, 웃음도, 실패도, 슬픔도, 죽음도.

주인공 은주의 삶도 그랬을 것이다. 영어학습지 판매로 은주는 행복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온 것은 순간의 불행, 그리고 '순간' 다가왔기에 어찌할지 모르던 은주가 선택했던 극단의 선택이다. 그 불행이 있고 난 후 초점 없이 흔들리며 어찌할 줄 몰랐던 그녀의 모습, 몸은 살아있지만 혼이 빠져나간, 그녀는 마치 '죽어있는 것' 같았다. 교통사고가 날 때, 순간 발견한 차를 보고도 당황해 몸이 움직이지 않고 사고 회로 가 멈춘 것처럼 마치 그녀의 모습은 눈앞의 트럭을 봤지만, 그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이 끝내 죽게 되는 것과 같았다.

죽어있던 것만 같았던 은주는 감당할 수 없는 불행에 죽음을 선택한다. 행복했던 순간의 죽음. 그녀의 선택이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자신들의 두 아이를 두 손으로 살해한다. 그리고 자신들도 죽음을 택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온 실패와 불행처럼, 장난처럼 두 부부는 살아남게 된다. 예측할 수 없었고 갑자기 다가온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랬다. 그렇기에 은주가 그랬고, 우리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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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남편은 죽음과 실패를 경험 후 생각할 틈  없이 일을 한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 부정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그녀와 남편은 온종일 바쁘게 살았다. 일은 가리지 않고 뭐든 했다. 생각할 틈이 있으면 안 됐다. 마치 기계처럼 일만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지난날이 생각났다. 생각할 틈이 많아지니 온갖 잡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날 불행하게 했다. 그래서 뭐든 하자라는 생각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일했다.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생각으로 인해 힘든 것이 더 힘들었다. 아마 그녀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밤낮으로 정신없이 일해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고통보단,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아이들의 죽음과 한 번의 죽음의 경험은 고통스럽고 잔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 그녀가 보는 세상은 달라졌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새롭게만 느껴졌다. 이걸 불행 중 다행히라고 할까.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다행이 아닌 불행 중 다행이다. 어떤 것을 그것에 반대되는 무언가와 비교를 했을 때 어떠한 것은 더 극대화돼서 느껴지게 된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지난날의 불행했던 일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죽음과 새로운 삶 그녀는 그 불행했던 삶 덕분에 새로운 행복함을 느꼈다. 아마도 지난날과 대비되는 현재의 상황 때문에 더욱더 극대화된 행복함이 찾아온 것 같다. 왜 행복은 불행했던 것과 비교되어야 그 행복이 극대화되는 것일까. 고통 속 행복, 사막의 오아시스, 운동 후 식사와 같이 왜 반대되는 고통 속 행복만이 더 극대화되어 다가오게 되는 걸까. 행복했던 순간에는 왜 느끼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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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행복해 우린 괜찮고 남편은 날 사랑하고 애들은 호주에 있어 우린 잘 살고 있어' 연극이 끝나갈 무렵 은주는 저 대사를 끊임없이 외치며, 아니 울부짖으며 달려간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은주를 응원한다. 호루라기를 불고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고 그것은 마치 마라톤을 달리는 모습과 같다.

누군가가 삶은 마라톤이라 한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기나긴 마라톤. 오랜 달리기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리다 보면 결국 끝이 보이는 마라톤처럼 우리의 삶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야 한다. 일본의 한 마라톤 선수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그녀의 코치는 그녀가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지 트레이닝 덕분이라고 한다. 우리의 뇌는 실제의 경험과 상상의 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상상과 심상화로 우리의 뇌를 속이고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녀의 울부짖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두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잃고 1억 8천이라는 빚과 경찰의 눈을 피해 살아간다. 이런 삶을 잊기 위해 한 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어찌 보면 불행한 그녀의 삶을 행복하다, 괜찮다, 아이들은 호주에 있고, 우리는 잘 살고 있다는 구체적인 상상으로 그녀는 그것을 현실로, 불행한 현실을 행복한 현실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그녀는 달렸다. 비록 울부짖고 있었지만, 달렸다. 마치 인생의 마라톤을 달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구체적인 상상을 했다.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현실과 반대되는 상상이며,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안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런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 그리고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 어떻게든 이 마라톤을 완주하려는 그녀의 의지, 혹은 행복의 최면으로나마 겨우 이어갈 수 있는 그녀의 슬픈 삶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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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직 살아있기에 행복했을까. 아니면 살기 위해 행복해지려고 한 것이었을까.

다시금 의문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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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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