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시대를 초월하는 영화의 의미 [영화]

글 입력 2018.07.0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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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제작된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영화사에 있어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영화의 짧은 클립들을 본 적은 있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기억이 나는 영화의 이미지는 영화 내내 지속되는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한 박사가 무엇인가를 광기 어린 듯하게 연구하는 모습이었다. 그 표정이 너무도 생생해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은 “아무리 짧고 아무리 적은 소품의 영화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작곡가가 음표를 적는 것과 같이 영화 표현의 모든 것을 미리 적어 두어야 한다”는 언급을 한다. 이는 곧 감독이 영화의 표현에 있어서 최대한 많은 부분, 혹은 모든 과정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그의 언급에 완벽히 부합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영화는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인공적인 표현이 극대화되는데, 이러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의 부분이 있었다.



'영화 표현의 모든 것을 미리 적어 두어야 한다'


우선 영화의 배경을 살펴보면,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녹화한 연극을 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로 인공적인 무대가 설정되어 있다. 배우들은 마치 연극을 하는 것처럼 계단을 통해 무대를 오르내리고, 현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사선의 뾰족한 공간들을 지나다닌다. 당시 영화가 흑백으로 촬영되었고, 조명의 효과 역시 이러한 흑백의 대비를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배경에 대한 혼란은 더 가중되었다.

또한 첫 장면부터 눈길을 끌었던 것은 보자마자 좀비를 연상시켰던 배우들의 얼굴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인지, 죽은 귀신들인지 알 수 없는 등장인물들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흰 옷을 입은 인물은 초점 없는 눈으로 지나가기도 했다. 배우들의 진한 분장과 표정으로 인해, 영화의 내용이 실제 상황 속인지, 혹은 배우들의 상상이나 꿈속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자연스럽게 전개되지 않는 결말이 있다. ‘Du musst Caligari werden; 너는 칼리가리가 되어야 한다’는 충격적인 박사의 생각이 밝혀지고, 당연히 범인으로 지목될 것 같았던 칼리가리는 한 정신병자의 망상일 뿐이었다는 점. 감독의 적극적인 설정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결말이었다.

결국, 감독의 개입으로 인해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나타난 여러 양상들이 공통적으로 가져온 결과는 ‘혼란’이었다. 무엇을 옳다고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 영화를 집중해서 보아도, 내가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이 맞는지 의심하게 되는 이 상황은 영화가 제작될 당시 독일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독일의 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경제·사회적 상황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폐허가 된 독일인들은 늘 공포와 불안 속에 있었을 것이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영화 전반에서 나타나는 표현주의적 기법을 통해 당시 독일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혼란 속의 세상은 곧 현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지금,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 가지는 의미는.


그렇다면 당시 독일의 시대상을 암시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 현대에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우선 영화의 큰 틀이 가지고 있는, 표현적인 측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초의 표현주의 영화로 불리는 이 영화는 현실세계의 재현과 모방적인 양식으로 촬영되었던 기존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특징을 보인다. 앞서 언급하였던 감독의 개입과 그 개입으로 인한 배경, 인물, 내용의 ‘표현’들은 영화 그 자체로의 형식에 대한 고찰을 가능하게 하였다. 모방과 재현으로부터의 탈피는 현대예술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미술계에서는 이미 19세기 세잔에 의해서 시도된 바 있다. 우리에게 현대미술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유독 영화에 있어서는 아직도 고전적인 내러티브에 더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거의 100년 전 제작된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표현주의적 특징을 극대화함으로써, 영화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점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게 되는 관객은 영화 속 내용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 영화에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성행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독립영화관들과 예술 영화들은 실험적인 영화에 대한 관객의 요구를 반영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대의 관객들은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결말이 아닌, 끊임없이 영화에 개입하며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기보다는 낯설게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영화에서 나타난 무대장치, 배우들의 표정이나 장식 등에서 유발된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오히려 영화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조건들을 마련해 준 것이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나타난 다양한 모티브는 관련 장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세자르의 비이성적 행동은 이후 전개된 많은 영화들에 주제로 작용했는데, 스릴러 영화의 연쇄살인범, 이유를 알 수 없는 살인이나 분노를 표출하는 인물들의 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높게 솟은 성탑, 계단, 어두운 분위기 등을 주제로 한 고딕 소설의 분위기가 드러나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이후의 드라큘라나 뱀파이어, 좀비를 나타낸 영화들에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영화감독 팀 버튼의 영화 역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기하학적인 이미지,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음침한 분위기, 인물의 표정 등을 살펴보면 그 영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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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당시 독일 사람들의 내면 상태를 적절히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내용과 형식 측면에 있어서 후대의 영화 속에 실재하고 있었다. 평소에 지나쳤던 다양한 설정들이 사실 많은 부분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이 놀라웠고, 이 영화가 거의 유일한 표현주의 영화라는 점에서도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 아직까지도 중요한지, 영화사적으로 그토록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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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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