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대하여] 나와 당신의 공간에 대하여

사라지는 공간과 그 속에 있던 사람에 대하여 헤아려 보다
글 입력 2018.07.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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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 나와 당신의 공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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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간. 의.  의. 미. 에.  대. 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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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에서 애용하는 카페는 청소년 자립훈련을 위해 운영되는 '커피동물원'이라는 카페다. 좋은 취지로 설립된 만큼 의미 있는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늘 북적였고, 단지 접근성이 좋은 이유만으로도 찾는 사람들도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 음료의 맛도 좋다. 특별히 커피 음료는 공정무역 원두를 사용해서 별다방 못지않은 '착한 커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카페가 학교 건물 재건축으로 잠시 사라지게 되어 버렸다. 카페의 휴식 기간 전에 내가 먼저 졸업을 하니, 사실상 내겐 이별이었다. 누구보다 종강을 기다렸지만, 카페 앞 계산대에 부착된 안내문을 본 이후로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 종강이, 곧 이별의 시간이 천천히 오기를 바랐다. 나의 대학 생활 시작부터 함께한 이 카페는 친구를 사귀고, 후배에게 시원한 음료를 사주고, 잠깐의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고, 교수님과 면담을 하고, 공정무역에 대해 배우게 하고, 녹색소비 캠페인 홍보 때 도움을 받았던 곳이다. 나에겐 20대 시절의 반인, 대학 생활의 추억이 깃든 이 공간과 이별한다는 건 무척 서글픈 일이었다. 나에게는 그저 잠깐씩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공간일 뿐이었는데, 하물며 이 곳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이 공간에서 보낸 시간 그리고 추억 만큼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을까. 주문한 딸기 스무디를 건네 받으며 물어보고 싶었다. 그들에겐 이 공간이 어떤 의미였을까.

커피동물원과의 이별을 앞두고 사라지는 공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즈음에, 이미 나보다 앞서 누군가가 사라지는 공간에 대하여 적은 것을 발견했다. SNS에 편지인지 에세인지 모르는, 자필로 써진 글이었다. ‘사라지는 공간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써진 이 글은 내 삶의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다가 어느새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내 삶의 공간은 인천에 위치한 집이 될 수도, 10년 만에 생긴 나만의 방이 될 수도, 현재 재학 중인 학교가 될 수도 있겠다. 이 공간들은 모두 내게 편안함을 주기도 하고, 내가 삶에 지쳤을 때 온전히 쉴 수 있게도 하고, 활력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내 삶의 공간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상상해본 적도 없어서 사라진다는 가정조차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했던 공간 - 이를테면, 커피동물원과 같이 자주 가던 카페, 먹을 때마다 소울푸드라고 칭하며 자주 가는 짬뽕집, 맘모스빵이 정말 맛있는 단골 동네빵집, 물건을 사지 않아도 인사는 꼬박 드리고 가는 과일가게- 등이 사라진다면? 커피동물원과의 이별을 앞두고 내가 느낀 허탈감, 공허함, 안타까움, 그리움 등으로 감히 내 삶의 공간이 사라지는 걸 짐작이나 해 볼 수 있을까.

부족한 상상력과 지레짐작한 것들은 뒤로한 채 사라지는 공간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 있던 사람에게 직접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공간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사라지는 그 공간에 있던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의 공간을 빼앗긴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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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공간에 대하여 전문>


사라지는 공간에 대하여

사람은 어느 누구나 고향이 있습니다. 나고 자란 보금자리가.
어느 누구는 한 곳에서 평생을 지내기도 하고 어느 누구는 이곳 저곳을 떠돌아 생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치하진 않아도 누구에게나 정이 어려 있고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픈 장소와 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즐거우면 즐거운 데로 슬프면 슬픈 데로 자기만의 기억을 갖고 살아갑니다. 젊을 때는 바쁜 생활의 연속에 과거를 생각하기보단 앞만 보며 치열하게 살게 되지만 어느 순간엔 나를 되돌아보고 내가 살아오며 지낸 시간 속에서 가장 보람되거나 감명 깊었던 순간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거슬러 그 장소를 찾았을 때 모습이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걸 보면 얼마나 기쁜 감정을 느낄까요? 모든 것이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나만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장소를 세월에 관계없이 존재한다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계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하는 생활 속에서 사람은 변했지만, 동심으로 돌아가서 나의 즐거운 추억의 공간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장소로 저희 가게도 거듭나길 감히 기원해 봅니다. 저에게는 아주 작은 소망이지만 꿈이 있습니다. 저희 가게를 엄마 아빠 손을 붙잡고 왔던 어린이가 어른이 돼서 자기 자식을 데리고 다시 찾아와 주는 꿈! 지금은 이룰 수 없지만, 생각만으로 다시 한번 그런 행복한 꿈을 꾸어 봅니다.

-궁중족발 윤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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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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