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학교에 페미니즘을!

책 '학교에 페미니즘을' 리뷰
글 입력 2018.07.0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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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페미니즘을

여는 글

1장 여자 아니면 남자라는 틀 속에서

2장 교실을 낯설게 보기

3장 학교가 페미니즘을 만났을 때

함께 읽어요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는 페미니즘 바람이 거셌다. 관련된 단어가 생소하기만 하던 때를 지나, 동의하는 사람이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든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등과 같은 단어 자체는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을 정도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우리는 대화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에 있다. 학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학교에 페미니즘을>은 2016년 만들어진 '초등성평등 연구회'에 소속된 초등학교 교사들이 지난 2년 간 페미니스트로서 바라본 교실과 직접 경험한 페미니즘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학교와 이미 멀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도 졸업한 지 오래고 졸업한 후 연락을 이어가며 찾아뵐만큼 친한 선생님도 없기 때문이다. 진로가 교육 쪽도 아니고 아이를 낳을 생각도 딱히 없다. 그러다 문득 내가 그러했듯 지금의 초등학생이 불과 6,7년 뒤면 20대에 접어들어 나와 같은 사회를 살아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학교는 계속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실감하곤 한다. 학교를 이미 졸업했고 교사가 될 생각도,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학교는 나와 함께 살아갈 시민을 기르는 곳이므로 학교 교육에 무관심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에 페미니즘>은 학교와 관련이 없는 사람도 한번쯤은 관심을 가지면 좋을 이야기다. 책은 현장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오늘날의 초등학교 교실과 그 속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학교의 기울어진 운동장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성별이분법은 아직 신체적으로 성별 구분이 두드러지지 않는 초등학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학교에 페미니즘을>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문제를 지적한다. 예를 들면, 왜 출석번호는 항상 남자가 1번부터일까? 보통 학교에서는 남자가 출석번호의 앞부분에, 여자는 뒷부분에 해당한다. 누군가는 1번이 되어야 한다면, 왜 그 기준이 성별이여야만 하냐는 거다. 출석번호에서 시작해 책은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가지 성별이분법적인 관습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성차별을 지적한다. 남아용 학용품은 파랑색, 여아용 학용품은 분홍색 계열인 경우가 많으며, 교과서는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 라고 주장하면서도 여성은 주로 앞치마를 두르고 누군가를 돌보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한 교과서 속에서 덤벙거리고 말썽을 부리는 건 늘 남자아이의 몫이고 위인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20%에 불과하다. 이 밖에도 사회가 정해 놓은 성 고정관념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사례를 나열하자면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부분은 보호자와 교사가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바나 교육하는 방식도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였다.

책에 따르면, 여러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아이의 보호자로부터 '남자 아이 걱정'을 들었다고 한다. 그 걱정이란, 요즘 여자아이들이 똑똑하고 기가 쎄서 산만하고 장난기 많은 남자 아이들이 불리하다는 내용이다. 내가 어렸을 때도 종종 듣곤 했던 이 푸념에는 남자 아이는 항상 여자 아이에 앞서야 한다는 사고방식과 함께 남자아이들이 산만한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보통 학교에서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에 비해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장난을 많이 치는 까닭은 우리가 남자 아이를 교육하는 방식에 있다고 책은 이야기한다. 남자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인하고 넘어온 것들이 결과적으로 남자아이의 인격적인 성숙을 방해하는 것이다. 동시에 사회는 은연 중에 남자 아이보다 여자 아이에게 더 높은 성취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성취가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범주를 벗어나면 또다시 걱정의 대상이 되곤 한다. '여자 아이인데 너무 활달해서, 너무 말이 많아서-'로 시작되는 고민들이다.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가-'로 시작되는 푸념에는 이렇듯 엄격한 성별 이데올로기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은 여자아이, 남자아이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학교에 페미니즘을>은 페미니즘 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왜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할까



그러나 이름표 붙은 서랍에 누군가를 넣고 서랍을 잠가버릴 때, 그래서 그 이름 안에서만 살도록 할 때, 거기에 더해 이름표에 차등을 둘 때, 이러한 분류는 폭력이 된다. 

43쪽


기존의 교육은 무의식중에 아이들을 성별로 이분하고 사회의 성 고정관념을 주입한다. 이러한 교육의 폐해 중 가장 큰 것은 아이들의 성장가능성을 제어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활달하고 적극적인 여아와 꼼꼼한 남아가 있을 때 개개인의 성향이 아닌 성별이분법에 근거해 이들을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인도할 경우, 이들은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다 펼쳐보이기 힘들 것이다. 자기 자신의 틀이 아닌 '성별'이라는 협소한 틀 안에서만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우리가 여성이나 남성이기 이전에 독립된 개인이므로 모두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인용한 것처럼 교육자는 학생 개개인의 차이를 고려해 지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게 반대로 아이들을 억압하는 수단이 된다면 폭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다움을 인정받으며 성장할 때 행복할 수 있다.


대부분의 부모는 내 자식이 가해자가 될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는다. 아무도 아이를 가해자로 키우겠다고 작정하지 않지만 피해자는 실재하고 당연히 가해자도 존재한다. 피해자가 될까 보호받던 아이들 중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고, 쏟아지는 성범죄 뉴스에서 우리는 가해자 아동 및 청소년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107쪽


더 나아가 성차별과 혐오표현이 만연한 교실은 '가해자'를 길러낼 수 있다. 물론 피해자가 되었을 대 대처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범죄예방교육의 핵심은 가해자를 길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책은 이야기한다. 보통의 사람과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되는 가해자 역시 우리와 같이 학교에서 배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환경에서 가해자는 '자라난다'. 요즘처럼 어린이들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기가 빠른 시대에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아이들은 사회의 '주류' 입장에서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에 쉽게 젖어든다. 페미니즘은 이러한 아이들에게 주류가 아닌 사회적 소수자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 '소수자'란, 좁게는 여성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다른 소수자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인권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많은 콘텐츠를 접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할 때, 그 기준을 세워줄 수 있는 게 페미니즘 교육이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교사가 교실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믿으며 자신의 말과 행위의 정치적 함의를 성찰하지 않는 것이 좋은 교육일 수 없다.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교사가 더 치열하게 정치적이여야 한다. 우리가 중립적이라고 믿는 모든 규범과 행위 속의 정치적 의미를 더욱 면밀히 탐구하고 밝히며 무엇이 더 정의로운 것인지를 부단히 고민해야만 한다. 페미니즘적 시선에서 학교를 해석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다.

129쪽


문제점만 나열한다면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학교에 페미니즘을>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넘어서 현장에서 교사들이 어떻게 페미니즘 교육을 행하고 있는지 경험을 이야기한다. '말이 미치는 영향'이라는 학습주제를 다루며 '연놈', '암수'와 같이 욕설이나 비하어에는 여성이 먼저 오는 반면 '신사숙녀'나 '남녀'와 같은 일상어, 존칭어에는 남성이 앞에 오는 것에 대해 토론하고 함께 영화를 보며 '벡델테스트'를 한 교사, 남자 아이들에 비해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는 여자 아이들을 위해 먼저 막춤을 선보인 교사,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사안에 대해 정해진 답을 내리는 대신 질문을 던져 아이들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끔 유도한 교사 등 다양한 시도가 돋보인다. 여러가지 방법의 공통점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교육이 모두 완벽할 수는 없다. 담임 교사의 교육 외에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책에서 어떤 교사는 혐오표현이 잘못된 이유에 대해 교육한 후에도 가볍게 관련 용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을 보며 회의를 느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혐오표현 사용을 자제하는 아이들과, 어느새 다른 사람의 외모평가 발언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페미니즘 교육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


나는 모든 아이가 자기다움을 좀 더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곳이 교실이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페미니즘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122쪽


'요즘 아이들' 이야기는 세대를 막론하고 대화의 단골 소재다. 20대는 10대를 두고, 30대는 20대를 두고,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요즘 젊은 것들' 을 두고 갖가지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 역시 '요즘 아이들' 이야기를 종종 한다.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다 화장을 한다더라', '요즘 아이들은 유투브를 끼고 살아서 온갖 욕을 쓴다더라' 와 같이 말이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요즘 아이들'은 아노미 상태에 놓인 구제불능의 상태로 왜곡되곤 한다. 관습화된 대화를 통해 나는 무의식중에 '요즘 아이들'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 페미니즘을>은 다른 어른과의 대화에서만 '요즘 아이들'을 접하는 나에게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아이는 동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마냥 순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요즘 아이들' 로 시작하는 대화에서처럼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대상도 아니다. 아이들은 그저 어느 쪽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교실은 획일화되어 있지 않다. 변화무쌍하고 입체적인 곳이다. 페미니즘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다름'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쉽게 배우고 체득하는 아이들에게 페미니즘 교육은 이미 사고가 굳은 어른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학교에 페미니즘을> 속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고민하는 교사들과 그들이 가르치는 아이들은 희망을 보여주었다.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작은 희망이다.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이 책을 쓴 '초등성평등 연구회'는,

초등성평등연구회는 공교육 현장에 난무하는 소수자 혐오와 성차별적 관행에 문제의식을 느낀 초등 교사들의 모임으로, 2016년 발족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초등 교사 22명은 한 달에 한 번 오프라인 정기모임을 가지고 페미니즘 교육 현안에 대해 논하면서 각자의 고민과 성평등 수업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눈다. 교과서 속 성 불평등 사례 찾기, 젠더적 관점에서 미디어 콘텐츠를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역사 속 여성 인물을 조사하고 발표하기, 성별 간 임금 격차에 대해 알고 게임을 통해 간접 경험해보기 등 아이들과 함께 생각하고 질문하는 수업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는 또한 다양한 강연과 을 통해서 교문 밖 세상과 소통하며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왔으며, 그 가운데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운동은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다. 이런 활동의 가치를 인정받아 제7회 이돈명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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