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엄마가 주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유산, '시간을 파는 서점' [도서]

Héritage - 엄마가 딸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것
글 입력 2018.07.0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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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서점

글/사진 신경미
카모마일북스
2018년 5월 22일
17,000원



Héritage, 유산


우리집에는 생일 전통이 있다. 평소에는 잡곡밥을 주로 먹지만, 가족 구성원의 생일이 되면 흰 쌀로만 밥을 짓는다. 그리고 생일의 주인공은 고봉으로 꾹꾹 눌러담은 하얀 쌀밥과 국그릇을 가득 채운 미역국을 받는다. 반찬은 때마다 다르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빠져서는 안 되는 두 가지는 고기가 든 반찬과 통통한 계란말이다. 엄마는 우리가족 여섯 명 중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늘 밥을 뜨며 어린시절 이야기를 해주곤 하셨는데, 내가 그때의 엄마만큼 어릴적에는 그냥 그렇구나 넘겼던 이야기가 요즘들어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먹을 것이 마냥 넉넉하지는 않던 그 때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생일은 엄마네 사남매에게 얼마나 특별했을까. 평소 자주 먹지 못하는 고기반찬과 계란이 듬뿍 들어간 두툼한 계란말이,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많이 받는 흰 쌀밥!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와 생활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몸소 깨닫는 것들이 있었다.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 중 어떤 부분이 부모님으로부터 왔고, 어떤 부분이 사회로부터 왔으며, 어떤 부분이 내 고유의 것인가 하는 것. 그 많은 요소들 중에 ‘특별한 생일상=흰쌀 고봉밥과 통통한 계란말이’라는 명제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확실하다. 나는 후에 내 아이들의 생일이 되면 나또한 흰쌀로 밥을 지으며, 계란을 잔뜩 풀어 계란말이를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때, 우리에게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주시던 다비드 선생님에게 Héritage라는 단어를 배운 날이 기억난다. Héritage라는 말은 문화 유적 같은 사회적 유산 뿐 아니라 부모님에게서 물려받는 개인적 유산을 뜻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유산’에 물질적 가치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가치까지 포함된다는 것이다. 즉, Héritage란 사상,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일상생활에 묻어나는 습관 같은 보이지 않으면서 보이는 것들까지도 모두 포괄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시간’을 파는 서점


나는 내 아이가 생기면 어떤 것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아주 가끔씩 하던 요즘, 어쩐지 절묘한 타이밍에 ‘시간을 파는 서점’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이자 어머니이고, 작가인 이 책의 저자 ‘네딸랜드’ 신경미 작가님이 자신의 네 딸들에게 물려주기로 한 유산은 ‘책’이다. 작가님의 네 딸들에게는 책, 책내음, 글 읽는 습관, 책에 대한 사랑과 도서관, 서점에서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들, 이 모든 게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스스로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단단한 주춧돌이 될 정신적인 유산이 되지 않을까. 책에는 작가님이 딸들과 함께 방문한 서점들에 대한 소개와, 그곳에서 딸들과 함께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그 두 가지 요소중에서도 작가님의 ‘서점여행기’에 더 마음이 간 것이 이 책에 대한 잘못된 접근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어릴적부터 ‘서점’과 ‘레스토랑’을 한 공간에 마련하는 것이 꿈이었다는 데보라 드라이온 사장님의 꿈이 녹아 있는, 맛있는 서점 [쿡앤북]. 아홉 가지 테마를 가진 건물들이 능선처럼 이어져 있다는 이 레스토랑-서점의 웅장함이나 공간에 녹아 있는 가치보다 더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단연 작가님이 서점에서 산 가족들과의 ‘시간’이었다.

[얼마나 아이들이 기특했는지 모른다. 쿡앤북에서 원래 목적대로 먹고 책도 보고 그랬어야 했는데 책만 보고 눈만 배불려 준 무심한 엄마를 그래도 이해해주니 말이다. 이 멋진 서점을 눈으로만 즐기게 해서 미안한 마음을 이미 아이들은 헤아리고 있었다. 선뜻 먹기에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배를 불리지 않았어도 좋은 책과 멋진 곳을 구경시켜 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사랑의 빚을 진 것 같다.

책을 가지고 놀고
책을 좋아하고 읽고
책을 구경하고
책을 아끼는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이어서,
그.러.나.

엄마는 너희들의 아름다운 마음 가득 담긴 책 한 권을 소유하게 되어 진심 행복한 서점 여행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서점 쿡앤북]

맛있는 음식과 다양한 책을 파는 서점 ‘쿡앤북’에서 작가님 가족이 구매한 가장 가치있는 것은 아마도 함께한 ‘시간’이었을 것 같다.



엄마 ‘네딸랜드’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자 한 것


[그러다가 책을 고르면 여지없이 사 달라고 한다. 나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이 책이 왜 마음에 들었는지, 왜 이 책을 사고 싶은지 등등의 이야기를 나눈 후에 살만한 책은 사고 그렇지 않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본다. 난 이런 것이 좋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쁘람스트라]

[나는 가급적 우리 아이들과 서점에서 직접 책을 들추어보고 고르는 습관을 갖게 해주려고 한다. 서점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사색에 잠기는 시간의 가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격과 판매 경향만 살피고 사는 책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살면서 언젠가는 터득하지 않을까라는 기대 때문이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쁘람스트라]

[여기서 둘째 딸이 고른 책을 큰아이 생일선물로 주기로 했다. 우리끼리의 비밀이 생긴 곳이다. 첫째 딸에게 줄 ‘마틸다’라는 책이다. 네덜란드어 책을 사고,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가져갈 작은 선물도 사서 아이들에게는 기억에 남은 서점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은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을 친구 생일 선물로 산다. 순진한 딸들이 고맙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알터노트]

[사랑하는 나의 네 딸들은 엄마인 나와 이모라고 불렀던 벗에게 라벤더 향 가득한 편지를 써주면 좋겠다. 더 욕심을 낸다면 다시 그 푸른 수레국화 서점 한구석에서 글을 쓰고 편지글을 읽고 시를 쓰는 우리만의 문학의 밤을 맞이하고 싶다.
아 참! 중요한 한 가지! 평화롭게 눈을 감고 라벤더 향을 머금은 책장 사이사이를 거닐고 싶다.
-푸른 수레국화가 그려져 있는 책방 르 블뤼에]

[우리 한 번 파두 들어 볼까?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이와 듣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에 공연이 진행되어 망설였다.
결국 파두 공연은 보지 못했다. 코임브라에서도 리스본에서도 파두의 선율을 들어보지 못했다. 언젠가 들을 날이 오겠지? 엄마의 역할 속에서 정작 엄마인 나 자신의 숨겨진 바람은 종종 뒷걸음질쳐져가는 것을 둘째야 너는 아직 모르지?
-파두의 선율을 닮은 듯한 리스본의 서점들]

책 한 줄 한 줄에 추억이, 시간이 묻어 있고 딸들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묻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릴적부터 친척집이나 친구집에 가면 그 집의 서가부터 들여다보고, 뛰어놀기 전에 책부터 읽었다는 신경미 작가님. 서점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나 탐이 나는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을 선물로 고르는 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아이들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친구 생일 선물로 산다. 순진한 딸들이 고맙다’고 말하는 작가님은 알고 계실까? 엄마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딸들에게 물려주고 계시다는 걸.



내가 받은 유산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나는, 내가 물려주게 될 것보다 내가 받고 있는 것들에 집중할 시기에 있는 것 같다, 작가님처럼 내가 가진 가치를 삶에서 묻어나듯 자연스럽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아직 한참 배우고 소화하기에도 바쁜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나는 이번 독서를 통해서 또 하나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 같다. 엄마는 여행을 통해서 딸들에게 책에 대한 개인적인 유산을 물려주었고, 작가님은 여행 이야기를 통해서 다수의 독자들에게 사회적 유산을 남기셨다. 운이 좋은 나는 이런 책을 만난 덕분에 소중한 유산의 일부 지분을 상속받아, 역사가 시간 안에 살아 숨쉬는 유럽 땅의 아름다운 서점들을 알게 되었고, 서점에서 책장을 뒤적이며 나와 꼭 맞는 책의 단잠을 깨워 집으로 데려오는 법을 배웠으며, 좋아하는 책을 품에 안고 서점을 나서는 발걸음에 담긴 설렘을 대리만족으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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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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