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울 오페라 페스티벌 - 라트라비아타

글 입력 2018.07.05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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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서울 오페라 페스티벌 - 라트라비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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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리뷰를 써보려한다. 6월의 세번째 주는 나에게 꽤나 정신이 없던 주였다. 여러 신변의 변화와 정리가 필요했고, 날뛰는 감정선과 여러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정신이 멍해져 갈 때, 서울 오페라 페스티벌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즐겁고 충만하게 향유하지는  했던 것 같다. 공연장까지 가는 길이 워낙에 멀기도 했고, 내 스스로 기운이 없기도 했고, 상황이 너무 복잡하기도 했다. 사실 위의 이런 저런 이유들은 핑계에 불과하다.

결국 내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에 공연장에 앉아있으면서도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있었던 것 같다. 공연을 본 직후에 기억나는 것은 공연 동안에는 잡념없이 공연에 빠져있었지만 막이 내린 후 다시 착잡한 현실에 있는 나의 모습과, 끝까지 불행만을 안고 살았던 비올레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왜 불행은 끝까지 사람들을 놓아주지 않을까, 왜 불행한 사람에게만 늘 불행이 찾아오는 것처럼 보일까... 씁쓸한 생각을 곱씹으며 강동아트센터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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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연 관람을 마치거나 영화를 보고 나오는 등 무언가에 푹 빠져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나올 때 그 감각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작품의 여운과 현실이 만나는 그 경계의 순간을 길고 오래 음미하고 싶어 스크린이 올라가는 영화관이나 막 공연이 끝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공연장에서 부러 발걸음을 천천히 놀리곤 한다. 이 날 역시 강렬한 비올레타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떼는 데 아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지금이야 장마에 태풍에 무더위가 겹처 한바탕 난리가 난 후이지만 공연날만 해도 시원한 초여름의 밤이 이어지고 있었기에 공연장을 나오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답답하고 복잡한 와중에 단비를 만난 듯했다. 그 날은 그렇게 그 짧은 기분좋은 순간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부러 다른 부분에 대한 신경을 최대한 줄이고서 말이다.

다음날에도 역시 강동아트센터에서 <영화 속 오페라> 공연이 있어서 다시 강동아트센터를 방문했다. 이 날은 친구와 함께. 동네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말 내내 함께했던 이 강동아트센터와 뮤지컬들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속 오페라' 공연이야 특별한 서사가 없었기에 정말 공연 시간 내내 음악에 푹 빠져 충만한 즐거움을 느낀 반면, <라 트라비아타>는 내심 배우들의 노래와 연출에 감탄을 하면서도 불행하고 불행했던 비올레타의 인생이 자꾸 떠올라 슬퍼졌다. 한창 우울감에 휩싸이던 시기여서 더 비올레타에게 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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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라 트라비아타>에 대해 설명하자면, 우선 제목인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불어로 ‘길을 잘못 든 여자’ 또는 ‘바른 길을 벗어난 여자’라는 뜻을 지닌다고 한다. 극 중에서 주인공인 비올레타가 바로 이 '길을 잘못든 여자'에 해당한다. 그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가식과 가면으로 얼룩진 상류사회에 자신 스스로를 팔아버린다. 그녀는 상류사회 남성들의 정부로 활동하면서 부와 명성(?)을 얻어가지만, 정신은 점점 황폐해진다. 비올레타를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외치는 알프레도의 구애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랑을 재 확인하려는 그녀의 모습은 진정으로 '사랑받아보지 못한 - 심지어 자신에게도- 아픔'을 잘 드러낸다.

시궁창 같은 삶에서 순수하게 그녀를 사랑하는 알프레도의 등장은 그녀의 삶에 나타난 한 줄기 희망이지만, 사회는 두 사람을 허용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사회적 기준으로 그들을 재단하고, 사회의 틀에 맞추어 이들을 통제하려 하는 타인들은 특히 비올레타를 동정하는 척 위선의 가면을 쓰고 사회의 틀을 강요한다. '나는 정말 당신이 안타깝지만, 우리 사회가 이런 어쩔 수 없어요, 당신이 희생해요'라는 무책임한 말을 내 뱉으며 말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특히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 지독히도 이기적인 심리다. 그리고 개인의 이기적인 심리가 모여 군중심리가 되면 불행을 겪은 사람에게 계속 불행을 강요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나타난다. 마치 당신의 인생은 이미 망가졌으니 조금만 더 망가져도 괜찮다는 듯, 당신은 이미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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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게도 나는 작품을 곱씹으며 화가 났다. 그녀는 결국 화려하지만 뒤집어 까보면 잔뜩 벌레에 좀 먹힌 꽃과 같았다. 처음 공연을 보고 나올 때는 그저 멍하니 허무한 여운에 빠져 있었지만, 다시 이성을 가지고 생각했을 때 이 작품의 줄거리는 너무나 잔인하다. 그리고 당시 내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더 더욱 심한 감정이입이 일어났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 건 나의 상황과 오페라라는 생생한 장르의 몰입감 때문이었다. 내가 배우들의 노래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준, 자격은 전혀 없지만 몰입도가 깨지는 상황은 전혀 없었고 대부분 시원시원하게 극을 이끌어갔다. 자막 화면 역시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 자막을 읽느라 허둥대다가 정작 무대를 못 보는 일도 없었다. 공연 중에는 그래도 무대와 극 자체에만 빠져 있었다. 아니면, 오히려 내가 복잡한 현실 상황에 대한 신경을 무대로 돌려버린 걸 수도 모르겠다. 의식적인 도피처럼 말이다.

어쨌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상황이 그리 안정되거나 편하진 않지만, 적어도 그 당시보다는 한결 나아졌다. 여전히 온갖 불행에 허무한 죽음을 맞는 비올레타가 안타깝고 답답하지만, 또 여전히 그녀에게 불행을 떠밀고 나몰라라한 허영과 가식을 뒤집어 쓴 상류 계층 캐릭터들에 화가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려 노력했고 끝까지 자신의 격을 낮추지 않으려던 비올레타가 이제야 보였다. DIGNITY. 내가 좋아하는 단어다. 굳이 번역하면 존엄성 정도가 될 텐데 그녀는 자신의 dignity를 지키려 끝까지 노력했다. 나 역시 그녀같은 강단과 위엄을 가질 수 있길 바라며 내 현실을 작품에 빗대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던 서울 오페라 페스티벌 - <라 트라비아타> 편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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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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