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색의 자유가 일상화된 유럽의 서점들, '시간을 파는 서점'

글 입력 2018.07.0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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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서점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이 책은 선물과도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꼭 유럽 여행을 간다면, 여기에 담긴 지도를 이정표로 삼아 서점여행을 계획해보고 싶다.

첫번째로 시선이 이끈 곳은 유럽 최대의 책 장터가 열리는 곳 '데이븐떠'였다. '유럽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심심찮게 열리는 벼룩시장에 가서 의외의 물건들을 구경하고 저렴하게 혹은 생각보다 비싸더라도 유일한 물건을 사는 일이다. 기대치 않았기에 그 물건이 숨겨진 보석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기대감이 커서 그 물건들이 거기서 거기라는 하찮은 물건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벼룩시장을 열었던 일이 생각났다. 벼룩시장을 여는 날이면, 나는 책장정리를 하곤 했던 것 같다. 집에 켜켜이 쌓아둔 채 읽지 않는 책들을 유일하게 세상 밖으로 꺼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벼룩시장 문화를 보기 힘들어진 듯하다. 특히 책을 벼룩시장하는 건 더더욱 보기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도 책장터를 자주 열게 된다면, 다양한 책을 고를 수 있는 시각도 기를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책문화로 발전되지 않을까한다.

두 번째로 멈춘 부분은 '네덜란드 도시 곳곳에는 중고장터가 있지만, 싸게 물건을 살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라는 점이다. '한국은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제품이라도 누군가가 구입을 했으면 바로 중고품으로 전락하여 반값 수준까지 가격이 떨어지지만 네덜란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비록 내 눈에 허름해 보이고 쓸모없어 보여도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으면 그 가치에 의해 물건 가격이 책정된다.'고 한다. 이 부분이 굉장히 놀라웠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조금만 흠집나도 불량품, 중고품이라고 인식하여 물건을 싸게 판매하지 않는 이상 팔리지 않는다. 특히나 중고장터에서 정가로 받는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당연히 물건을 싸게 파는 곳이 중고장터인데, 정가로 받는다고 하면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으로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문화 차이가 드러난다는 부분에서 신기했다.

세 번째로 공감이 되었던 부분은 직접 보고 느끼며 책을 구입하는 습관이다. '나는 가급적 우리 아이들과 서점에서 직접 책을 들추어보고 고르는 습관을 갖게 해주려고 한다. 서점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사색에 잠기는 시간의 가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격과 판매 경향만 살피고 사는 책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살면서 언젠가는 터득하지 않을까라는 기대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인터넷쇼핑몰에서 이 주의 베스트셀러 도서라고 하면, 무조건 좋은 책이겠거니하고 구입하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구입한 책을 정독해보니 전혀 내 성향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더러 있었다. 그 이후로는 직접 서점에서 내가 책을 읽어보고 나와 맞는 책을 고르는 일이 일상화가 된 듯하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행위는 마치 보물을 건져내는 느낌과 같다랄까. 인터넷쇼핑몰에서는 간략하게 목차와 저자의 생각만 둘러볼 수 있으나 서점에서는 책 내용도 함께 훑어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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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 안티크아리아트 서점은 '매달 '시의 밤'을 가지며 작가나 전문가와 함께 죽은 시를 다시 낭독하고 재해석하는 모임을 진행한다.'고 한다. 비전문가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 모임은 익히 봐왔지만, 여기에 전문가가 함께한다니.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뿐만 아니라 인기 시를 열거하는 것이 아닌, 죽은 시를 낭독하는 모임이라니. 당장이라도 이 모임에 참석하고 싶은 열망이 커졌다. 예전에 한창 시집을 읽던 때에 친구가 내게 요절한 시인의 시집을 추천해준 적이 있었다. 처음 들어본 시인이었는데, 그 시집이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 시집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내내 머문 것 같다. 재능을 주목받지 못하고, 묻혀져 간다는 게 이럴 때 쓰이는 말인 건가 싶기도 하다. 죽은 시를 다시 심폐소생술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멋진 모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마을의 가치는 오래된 책의 가치만을 말하지 않는다. 사라져 가는 책, 소멸 또는 잊혀가는 책을 되살려 놓는 데 의미가 있다. 반듯하고 세련되고 편집이 잘 된 요즘의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래된 책 향기에서 발산되는 권위스러운 아우라의 향취가 있다. 지적 허영심보다는 지적 향수를 가지게 하고 고전의 맛을 슬쩍 맛볼 수 있는 발효된 향기를 품은 헌책들. 옛 주인과의 만남을 정리하고 새 주인을 기다리는 책들. 어쩌면 각각의 책들도 인생이다.'

이처럼 책마을은 잊혀져가는 책들을 연결시켜주는 소통의 매개체이다. 잊혀져 가는 부분들을 되새김질 시켜주며, 오래된 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새로운 주인에게 새로운 정보를 습득시켜주는 그 마음들이 하나하나 모여 책마을이 탄생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책마을들은 숨겨둔 유물을 발굴하는 재미를 안겨주는 곳이 아닐까.

앞으로 유럽여행 계획에 있으신 분들이라면, 유럽서점도 한 번 둘러보면 어떨까한다.





< 목 차 >


▶ 책을 내며: 우리는 그렇게 서점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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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네덜란드에서 시간을 파는 서점을 찾아 출발

1장 꿈꾸는 책들의 도시
유럽의 최대 책장터 · 고서점 거리 · 당신을 위한 책을 만들고 인쇄합니다
북하우스 · 끄네벨 꼬믹스 · 파피루스 · 쁘람스트라 · 헷 안티크아리아트 ·알터노트

2장 암스테르담의 독립서점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서점 · 부칸들 로버트 쁘렘셀라
멘도 · 부키 우키 · 타센 · 아키텍추라 앤 나추라

3장 네덜란드의 역사적인 자부심이 서린 서점
아테네이움 부칸들 · ABC · 스헬트마 · 드 킨더북빈클

4장 헤이그의 알록달록한 서점들
판스토쿰 · 팩맨 · 스탠리 앤 리빙스톤

5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부칸들 도미니카넌

6장 나만 알고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서점
반더스 인 더 브루어른

7장 책마을에서 공정여행을 배우다
네덜란드의 책마을 브레이더포르트


2부
벨기에와 프랑스의 매력적인 서점들

1장 사라지는 책들의 운명이 되살아나는 책마을
벨기에의 책마을 흐뒤

2장 브뤼셀의 정말 예쁜 서점들의 매력에 푹 빠져 보실래요?
트로피슴 · 르 울프

3장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서점
쿡앤북

4장 푸른 수레국화가 그려져 있는 책방
르 블뤼에

5장 그때도 지금도 예술적인 장소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6장 역사 속으로 사라진 책의 도시 리옹의 어느 멋진 서점
르 발 데 아르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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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독일, 영국, 포르투갈의 서점 속으로

1장 숨은 보석 같은 무한대의 감동을 주는 서점
노이서 부흐 운트 쿤스트안티쿠아리아트 · 마이어셰 드로스테 · 후겐두벨

2장 하인리히 하이네의 생가가 서점과 문학카페로
하인리히 하이네 하우스

3장 런던 최고의 서점과 최대 서점의 향기
워터 스톤즈 · 해저즈

4장 파두의 선율을 닮은듯한 리스본의 서점들
버트란드 · 리브라리아 레르 데바가르

5장 전통과 아름다움으로 시작한 서점의 변화
포르투 렐루


에필로그: 시간을 파는 서점에서 다시 일상으로

참고자료
책에 수록된 서점 정보
편집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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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생활자 '네딸랜드'의 특별한 유럽 서점 순례





'인상 깊었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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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금씩 경기가 살아날 뿐이지 유럽의 경제가 많이 어렵다. 워낙 검소하고 절약하며 사는 네덜란드인일지라도 불황 같은 나날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다." (p32)

"고서점의 책 먼지가 좋은 사람들. 절망스러울 정도로 케케묵은 향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때때로 레몬향기를 연상케 하는 시큼한 냄새에도 콧노래를 부를 사람들이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오면 자극적인 방향이기도 하고 지적인 느낌을 주는 인쇄용 검정 잉크의 향을 맡게 된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진정시키는 나무 냄새에 편안함을 느낀다." - 발터 뫼어스, 《꿈꾸는 책들의 도시》중에서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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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헌책방 골목에 대한 향수가 있다. 학창 시절에 가끔 지나치던 그곳에는 수많은 책들이 노끈에 묶인 채로 책방 앞부터 책방 안 구석구석까지 쌓여 있는 풍경이 많았다. 그러다 종로서적을 가보니 시골에서 서울로 놀러 간 느낌이었다. 계단 혹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기도 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을 보며 그 기세에 눌려 책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책 구경만 한 적이 있다. 고속터미널 근처의 수많은 서점에 가보고 강남역 지하상가와 대형서점에 드나들면서 자연스레 헌책방에 대한 기억은 잊혔고 책방골목에 대한 기억은 쾌쾌한 냄새처럼 먼지 나는 기억으로 사라져 갔다.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미련을 느끼기도 전에 온라인 서점에 재빨리 대응해가면서 편리함과 경제성이라는 두 가지 이유로 서점은 한낱 아날로그 감성을 자아내는 장소로 바뀌어 갔다."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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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으로 이루어진 ABC 서점의 가장 큰 볼거리는 무엇보다 1층에 있다. 한 층 한 층 달팽이 같은 계단을 오르면서 펼쳐지는 책장의 실루엣도 근사하지만 1층에서 시작되는 거대한 나무가 꽤나 인상적이다. 아이들은 보자마자 잭과 콩나무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서점 가운데에 심은 나무를 타고 오르면서 책 동산을 바라볼 수 있으니 가히 모험적인 설계라고 여겨진다. 서점 나들이를 함께 한 둘째 딸 역시 서점 가운데 있는 나무가 참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책의 원료인 종이, 종이의 원료인 나무를 굳이 연상하지 않아도 마음이 자라고 지식이 자라는 것을 잘 형상화해 준 작품 같다." (p83)

"대형서점은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단순하게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을 연결고리로 한 여러 가지 문화를 판다. 그래서 대형서점에 가면 문화의 소비자가 되면서 문화를 만들어가는 창조자가 될 수 있는 가변적인 공간이라고 느낄 수 있다.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서점일수록 그 서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이벤트는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서점의 이벤트를 살펴보다가 관심이 생겨 방문하게 된 스헬트마 서점은 무려 1853년에 세워졌다 한다. 아마도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지 않을까 한다." (p85)

"암스테르담에는 정말 책방이 많다. 하나하나 이야기가 숨어 있고 자부심이 서려 있으며 저마다의 색을 지니고 있다. 어느 서점 하나도 똑같은 인테리어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유행하는 취향이라고 같은 패턴으로 꾸미지도 않는다. 개성을 살리되 주변과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는다. 물론 그 안에 갈등과 고민은 있을 것이다. 책값이 생각보다 비싸다. 책값이 비싼 건 책 장터와 중고서점도 마찬가지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책은 제값을 받는다. 중고라고 결코 헐값에 거래되지 않는다. 책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를 보상해주는 만큼 가격이 책정된다. 사람들은 도서관을 충분히 이용하기에 정작 책을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 여행객들이 찾는 책들은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저 수많은 책방들이 든든히 버틸 수 있는 암스테르담의 문화가 부럽다."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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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발걸음을 내딛는 여행자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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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쇼핑 거리를 따라가 보면 어느 한구석에 조그만 골동품 가게 같은 작은 서점 하나가 있다. 뜨거운 햇살을 잠시 막아 줄 초록색 줄무늬의 차양으로 꾸며진 작은 서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시점. 지도와 마을 안내서를 들고 조심조심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녀야 하는 여행자의 마음가짐으로 찾지 않으면 잘 발견되기 힘든 곳. 거기에 뭔가 콜콜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p112)

"수많은 서점들이 생겨나고 문을 닫는 것이 다반사인 요즘에 20년 이상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서점 운영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나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행에 민감하여 우후죽순처럼 무엇인가가 생겨나고 좀 시들해지면 흔적을 감추어버리는 그런 문화가 상대적으로 덜한 곳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한 번 둥지를 틀면 안정을 위하여 노력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기질도 숨어있을 것이다. 전통을 중시하고 보존하는 것에 주요한 가치를 두는 정서가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유럽에는 100년 이상 운영해 온 전통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서점들이 생각보다 많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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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구어가는 책마을. 대부분 유럽의 책마을은 그렇게 생겨났다. 마을 사람들의 생계이기도 하겠지만 마을 사람들의 자존심이고 자랑이다. 관광안내소에서 관광객을 안내하는 할아버지, 책방에 계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서 그들의 자존심을 느낄 수 있었다. 흔히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싸구려 흥정이 아니라 품격을 가진 거래라고 보면 좋겠다." (p152)

"이곳 시골 마을도 마을을 살리고자 생각해 낸 문화산업의 일환으로 책마을을 가꾸어가고 사라져가는 것의 안타까움을 되살려 놓고자 과거를 현재로 붙잡아 미래를 여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책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살려 놓은 것이다. 묵혀두는 과거는 그냥 묵혀진다. 적절한 때에 끄집어내서 새로운 요리법으로 옛맛을 잘 살려야 한다. 무턱대고 오래된 것은 다 골동품으로 보면 안 된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오래된 것을 캐내야 하고, 때로는 의미가 묻혀 있던 것을 새롭게 덧입히는 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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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는 전통적으로 만화 강국이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스머프'와 '틴틴'의 고향이 벨기에다. 벨기에는 만화박물관까지 만들면서 문화산업으로서의 만화를 육성하고 있다. 만화책은 도서관과 서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벨기에의 출판문화를 만화책이 주도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는 만화 주인공이 살 것 같은 동화나라 궁전을 닮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서점들이 곳곳에 있다."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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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는 만화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넘쳐나는 국민들이 대다수이다. 만화박물관과 만화 전문서점이 있고 도서관에는 만화 전문 코너가 있다. 벨기에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캐릭터인 스머프와 틴틴이 여전히 살아있는 나라다. 문화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싶은 국가의 정책적인 후원도 무시 못한다. 어린이 그림책 역시 만화책이 많다. 양질의 만화책이 어린이를 위한 권장도서로 정해져 있으며 수많은 그림책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곳이 벨기에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 자란 이들에게 기존의 밋밋하고 건조한 배열로 책을 판매하는 서점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개성을 중시하는 유럽인들의 심성이 이곳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각자의 개성과 생각을 현실화시킬 공간을 세련된 디자인 감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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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이 한마디 내뱉기에는 인생 속에는 너무 야속한 부분이 많다. 정호승 시인의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라는 시의 한 구절을 암송하듯 혼잣말을 하며 쓰디쓴 인생을 대면해야 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래서 더 마음속에 담아두는 서점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우리네 인생과 닮아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반가움 때문에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르 블뤼에 서점이 마을의 이정표가 되도록 안간힘을 쓰는 정성때문에, 공감하고 싶은 따뜻한 이야기와 잔인하리만치 차가운 생존과 현실을 그대로 부둥켜안고 있는 서점이기에."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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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not inhospitable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 낯선 이를 냉대하지 말라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서점에 들어서니 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너무나도 알려진 파리의 명소. 수많은 문학가들이 거쳐간 곳이라는 명성과 함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주연한 영화 <비포 선셋>에서 극 중 인물인 제시와 셀린느의 해후가 이루어진 장소로도 널리 알려진 곳. 그래서인지 문학의 향기와 영화의 낭만이 버무려지고 누구나 한 번쯤은 동경하는 파리의 한복판이라는 후광에 힘입어 언제나 서점 앞에 또 서점 안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고 모여 든다. (p224)

"쓰러질 듯 쌓여있는 책들, 천정까지 차곡차곡 놓인 책, 무질서해보이나 나름의 운치를 가지고 진열된 책들, 아늑함을 넘어선 따뜻함, 그 따뜻함 속에 용해된 많은 사람들의 열정.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흔적들, 그 흔적 속에서 자신을 찾고자 애쓰는 사람들. 오가는 눈길 속에 저마다 감탄하는 모습. 과거와 현재 사이에 술래잡기하는 즐거움. 어떤 공간에서는 책을, 어떤 공간에서는 오래된 언더우드 타자기를, 어느 공간에서는 피아노 연주 소리를, 어느 비좁은 구석에서는 기타 연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이들, 그들을 숨죽이며 바라보는 이들까지. 하나하나가 풍경이 되고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었다. 고서점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종이 냄새와 묵은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빛바랜 책들까지 추억과 아련함을 공감할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었다."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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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주년을 맞이한 뒤셀도르프의 명품 서점

마이어셰 드로스테

"뒤셀도르프는 부유함이 넘치는 여유로운 도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라인강을 끼고 있는 도심 속에 문화적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걸출한 미술관을 필두로 곳곳에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항구도시에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달려들었다. 건축가들이 몰렸다. 공업도시 이미지의 격을 색다르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 자체가 미술관이고 박물관이다. 때로 '작은 파리'라고 불리는 도시다. 하인리히 하이네와 슈만과 멘델스존이 활동하던 이 도시에는 괴테 박물관, 프랑크게리의 건물들, 로샬리의 설치미술, 독특한 건축물들이 함께 세련된 이미지를 완성해 간다. 훼손되지 않는 구시가지의 모습 위에 새로운 신도시가 함께 어우러진 풍경에 결국에는 감동을 받고야 만다." (p260)

"후겐두벨 서점은 서점이라기보다는 복합 문화공간과 백화점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특별한 곳이다. 특히나 뷔르츠부르크에 있는 후겐두벨 서점은 드넓은 공간과 독특한 인테리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5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도서관, 행정기관, 학교, 대학, 기업, 문학 전문가들에게 최상의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며 출판과 디지털 매체에 책을 공급하는 저력 있는 서점이다. 책을 엄선해서 전시하기로 소문이 나있는 서점으로 2,000여 개의 출판계와 온라인 포털과 협업을 통하여 명실공히 최상의 서점으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책을 고르는 사람들, 여유롭게 빨간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문구코너에서 아이들과 함께 예쁜 물건을 고르는 아이와 부모들, 아래층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느긋하게 커피 한 잔에 책을 즐길 줄 아는 이들이다."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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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하이네의 문학적 고향

"여행길에 누군가의 생가를 여행하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다. 그들은 별 것 아닌 것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전시한다는 사실이다. 사소한 것도 그냥 넘기지 않고 소소해 보이는 물건까지 의미부여를 하며 전시공간을 메꾼다. 그저 그럴 것 같은 일상의 흔적까지도. 화려한 업적과 비교 불가한 역사적 유품을 전시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명작에 길들여진 내 눈에 어느 순간부터 은은한 색채가 감도는 생가의 풍경이 슬그머니 시야에 들어온다. 무려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인 도시 뒤셀도르프에 그런 잔잔한 감동을 안겨줄 미지의 장소가 있었음에 마음줄을 놓아버렸다." (p275)
 
"17세기 건물인 하이네 생가는 21세기 초반에 이르러 도시 내 문학 카페이자 문학서적 전문서점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 서점 앞에는 이곳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는 커다란 이정표가 있다. 하이네 하우스로 다시 태어난 후 이 곳에서는 2주마다 저녁에 동시대 문학을 주제로 워크숍을 갖는다. 서점 안으로 들어가면 비밀의 뜰 같은 곳이 나타나고 건물 안 쪽에서 다양한 문학 강의와 토론회가 열린다. 사회와 문화 간 정책에 관한 토론을 하며 때로는 체임버 콘서트를 열어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다."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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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나 서점이 요즘은 복합 문화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추세다. 이미 그런 추세로 움직였겠지만 최근 들어 그러한 현상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단순함으로의 회귀도 조심스레 이루어지겠다는 생각도 든다. 단순함과 복합적인 것은 욕구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도 하나보다. 모든 것을 망라한 곳에서 단순함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단순함 속에서 모든 것을 포함한 복합성을 깨닫기도 하니 말이다."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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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느끼지만 기존의 건물들을 무조건 철거하지 않는 이들의 창의적인 보존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래된 건물들은 일단 철거를 하고 경제 개발이란 명목 하에 재건축을 한다. 문화적 역사적 가치의 여부보다 당장의 이익을 취하는 행태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분명히 어딘가에 사라져 가는 우리 옛것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매번 한계를 보이는 현실에 내키지 않는 인정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못내 속상하다." (p312)

"하늘을 나는 자전거는 이탈리아 예술가 피에트로 프로세르피오의 작품이다. 오갈 데 없이 버려진 자전거를 하얗게 칠하여 예술이라는 생명을 입혔다. 그래서인지 이 서점에 들어오는 이들은 저마다 책보다 자전거에 눈길을 준다. 하늘을 나는 자전거. 상식을 벗어난 상상이지만 재미있다.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잠시만의 꿈을 꾸겠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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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렐루 서점은 이미 너무 훌륭한 서점이다.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에 이끌려서 서점에 오는 이들을 탓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서점을 사랑하게 될 테니까. 아름다운 것과 유명한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을 값싼 호기심이라고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호기심은 어쩌면 시달렸던 일상의 고됨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마음일지도 모르니까. 그 호기심에 의미를 던져주고 삶을 더 공고히 만들어 줄 수 있는 지적인 산물인 책을 파는 곳은 중심을 잡아야 할 것 같다. 특히나 이런 의미있는 설립정신과 역사를 가진 곳이라면 지켜내는 것 또한 시대적 사명이지 않을까 싶다."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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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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