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사람을 보내는게 왜이렇게 힘든가요? [영화]

글 입력 2018.07.0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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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헤어짐 > 다시 만남 >
다시 헤어짐 > 다시다시 만남 >
다시다시 헤어짐 > 다시다시다시 만남 > ...
 

찌질하다.

< Like Crazy >의 두 주인공, 애나와 제이콥은 영화 캐릭터 치고는 상당히 멋없다.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n번의 헤어짐과, 괜한 미련에서 야기되는 n+1번의 재결합을 영화 내~내 반복한다. 맞다. 한마디로 저 둘, 바보짓 하고 있다. 근데... 저 바보짓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01. 특별한 줄 알았지만 결국 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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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교환학생을 온 영국인 소녀 애나. 그리고 미국인 소년 제이콥. 애나의 용감한 관심표현을 시작으로 두 청춘남녀는 서로에게 스미듯이 빠져든다. 우연이라 치기에는 공통점이 너무 많고, 날 보는 그의 눈빛 역시 특별하다. 아무래도 우리, 보통 인연은 아닌가봐! 설마...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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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웃고, 마주보다보니 어느새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버린 애나와 제이콥. 정성들인 선물까지 주고받으며 사랑은 더욱 돈독해지나 했지...만?!
 
VISA.
이 영화 속 사랑의 방해물은 불치병도, 숨겨둔 연인도 아닌 비자 문제이다. ‘귀국날짜’라는 무시무시한 악마는 파들파들 떨고 있는 영국인 소녀와 미국인 소년에게 무려! 두 달 반이나!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을 내린다. 하여 이 두 남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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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갈래.”
 
그렇다. 귀국 따위 하지 않아버린다. 한 시라도 떨어져있으면 죽을 것 같은데 그깟 국제법 따위가 뭣이 중하겠는가! 하여 애나와 제이콥은 여름 내내 함께 시간을 보내며 법을 넘나드는 달콤한 사랑의 기억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이들은 몰랐다. 두 달 반의 이별을 회피하려던 그 순간의 결정이 끝까지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족쇄가 되어버릴 줄은 말이다. 애나에게 박혀버리는 불법 체류자 딱지와 두 번 다시 밟을 수 없게 되어버린 미국 땅. 그리고 찾아오는 허무한 이별. 찬란했던 연애의 끝은 꽤나 초라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사회인이 된 애나와 제이콥. 삶에 치여 잊은 듯해도 불쑥불쑥 떠오르는 추억의 조각들까지 뿌리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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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자니?’ 로 시작된 둘의 통화는 ‘이 쪽으로 올래?’라는 명쾌한 결론으로 귀결되고, 그렇게 올라가는 연애의 2막! 하지만 이들 앞에는 또 다른 시련이 버티고 있었나니... 바로 미국과 영국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의 시작이다.
 
헤어짐과 재결합 사이의 궤도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관계. 둘의 유대 역시 눈에 띄게 위태로워지지만, 서로를 보내는 게 이토록 힘든 이유는 왜일까?
 

  
02. 이 손을 놓기가 왜 이렇게 힘든가요?

   
“너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그런 감정이 안 생겨. 우리는 함께 해야 돼.”
 
극 중 이 대사를 내뱉는 애나의 심정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 자세히 뜯어보면 상당히 께름칙하다. 초점이 ‘너’가 아닌 ‘감정’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뒤집어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완성된다.
 
“그런 ‘감정’을 느끼기 위해선 ‘너’가 필요해. 우리는 함께 해야돼.”
 
결국 이들이 그토록 떠나보내기 힘들어한 것은 ‘서로’가 아니라, 서로와 함께하는 동안 존재했던 ‘자신의 예쁜 기억’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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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꼭 잡고 함께 걷던 빛깔 고운 길은 어느 순간부터 미세하게 두 갈래로 나뉘기 시작한다. 각각 다른 길로 진입한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점점 멀어지고, 마주잡은 손의 완력도 덩달아 느슨해져간다. 그 헐거움을 느끼면서도 쉽사리 손을 빼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에서 비롯된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다. ‘서로 조금만 노력하면 예전처럼 다시 좋아질 수 있겠지.’ 이런 믿음과 함께 슬슬 ‘너와 나의 안녕(安寧)’보다는 ‘관계유지’를 더욱 앞세워 고려하기 시작한다. 간격은 그렇게 하염없이 멀어지고 결국 두 손가락 끝만 겨우 바들거리며 붙이고 있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둘은 깨닫는다. 예전에 놔주어야 했던 손이라는 것을 말이다.
 
수줍게 고백해보자면, 필자 역시 이러한 경험이 있다. 이미 한참 전에 어긋난 인연을 우리는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중얼대며 억지로 붙여보던 기억 말이다. 결국 살얼음판 걷는 듯 위태롭고 답답한 그 관계를 누가 먼저 박차고 나가느냐에 따라 ‘차버린 나쁜 놈’과 ‘차인 불쌍한 놈’이 결정되는데, 애석하게도 필자는 참을성이 좋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하느냐는 필자의 다분히 상투적인 물음에, 차버린 나쁜 놈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우리가 너무 멀리 와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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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인정하긴 싫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차버린 나쁜 놈의 말이 맞다.

애나와 제이콥 역시 그러했다.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과거를 과거로만 간직한 채 보내야할 때 보냈더라면 참 좋았으련만,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한때 좋은 시간을 나눴던 이에게 스스로 감당해내지 못한 공허함을 채워달라고 발만 동동거리며 붙잡고 늘어지는 모양새였던 것이다.
 
하여 이들은 쿨하지 못하다.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연인들은 쿨하지 못하다. 이별선물처럼 자신의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보여준 후에야 서로의 손을 놔준다.
 
 
 
03. 쿨하지 못한 우리의 사랑에, 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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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이렇게 우리는 사랑 앞에서 현명하지 못할까?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Crazy의 상태로 만들어버리기 충분한 힘을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저항할 수 없는 권력 앞에서 똑똑하게 처신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는, 그저 해탈의 자세로 Love Like Crazy하는 것이 가장 똑똑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행여나 어른스럽지 못한 과거를 떠올리며 얼굴을 붉히고 있을지 모를 당신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정말 열심히 사랑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장 어리석은 면을 숨기려 하는 인간의 본능을 뛰어넘어 추잡해질 용기까지 끌어올 정도로 당신은 최선을 다해 솔직했다. 무언가를 그렇게 열심히 해냈다는 것도 멋있고, 그 무언가가 ‘사랑’이라는 것도 멋있다. 비록 미숙했을지라도, 당신이 그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비록 보잘것없는 결과만이 남았을지라도, 최선을 다한 경험은 종종 그에 합당하는 결과 없이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하기 때문에 낙담할 필요가 없다.
 
하여 당신의 어리석음은 도리어 빛난다. 모든 격식, 품위를 내려놓고 누군가와 진솔하게 진탕을 뒹굴어본 그 특이한 경험을, 당신이 결코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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