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유럽 성당 기행기 [여행]

글 입력 2018.07.07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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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은 1/3이 건축, 1/3이 미술, 1/3이 자연이라고 유럽여행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 말했다. 그중 건축과 미술은 종교를 빼고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유럽은 오래된 가톨릭 국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어느 곳에 가든 성당을 마주할 수 있는데 나는 종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유럽 여행 중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당에 들어가곤 했다. 우선 앉을 곳이 항상 있어서 추위와 여행에 지친 몸을 따뜻하고 평온한 분위기에서 쉴 수 있었고, 나만 아는 보석 같은 건축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내가 아는 종교에 대한 지식을 재확인하는 것(예를 들어 아담과 이브를 벽화에서 찾는다든가 12 사도를 구별해본다든가 하는 일)때문에 매번 성당에 들어가는 일이 재미있었다. 가끔 미사 시간에 맞춰서 성당에 들어갈 기회도 있었는데 무교인 나에게 기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경건하게 미사를 보는 사람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성당은 광장에 있어 오랫동안 지역주민들에게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해왔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매시간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려 성당은 유럽인들에게 언제나 함께해온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입이 떡 벌어지는 대규모 성당을 보면 가톨릭 신자들에게 신이란 도대체 일상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기에 저런 건축물을 짓게 된 건지 매번 의문이 들었다. 높은 빌딩들이 즐비한 서울에서 온 나에게도 몇몇 성당들은 신의 존재를 납득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는데 그 성당이 지어질 당시의 사람들에겐 성당이 백 마디의 말보다 설득력 있는 존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나는 종교가 없고 신의 존재에 대해 종종 의문을 품고 때론 성당에 들어갈 때 `나에게 감동을 줘봐!` 혹은 `내가 종교를 믿게 해봐!` 같은 도전의식 혹은 반발심을 갖곤 한다. 그런 나에게 아래에 소개할 성당들은 이런 게 종교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오랜 시간 머물렀던 장소들이다. 유럽에서 5개월간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성당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3. 베를린 성 헤드비지스 대성당

겨울같이 춥던 3월 말에 몸을 녹일 겸 들어간 성당이다. 로마의 판테온같이 둥근 돔의 지붕을 가진 외관이 독특한 성당인데 내부에 있던 오르간을 둘러싼 전구가 은은하게 성당을 밝고 따뜻하게 감쌌다. 오르간은 오르간 연주소리를 듣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해도 기억에 잘 남지 않는 편인데 이곳의 오르간은 조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건했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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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도 공간이 있어서 내려가 보았는데 바티칸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모조품이 동굴같이 생긴 기도실에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조각과 마주했고 나와 조각만 그 기도실에 있어서 바티칸에서 기대를 하고 피에타를 봤을 때보다 더 경건하게 느껴졌다. 이 성당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또다른 기도실 안에 있던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작은 피에타상이었는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 아름다운 삼각형 구도를 가진 것도 아니고 조각의 재료도 투박했다. 마리아보다 예수의 몸이 너무 커서 구도적으로도 불안정해 보였고 조각 자체도 크지 않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는데 한번 눈에 들어온 후로는 나를 사로잡았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라면 이곳에 있던 피에타는 실제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을 목격하고 아들의 시신을 수습했을 때 이렇지 않았겠냐는 생각을 들게 했다. 작품 뒤에 두 인물의 그림자가 졌는데 예수의 그림자가 훨씬 부각이 되어 마리아가 아들의 시신을 들며 느꼈을 무거우면서도 가벼웠을 무게감과 슬픔이 더 와 닿았다. 작품이 있던 기도실은 당장에라도 문이 닫힐 거 같은 작은 공간이었는데 이런 폐쇄에 대한 공포도 역설적으로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데 한몫했다.

오직 나와 그 작품만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늦은 시간에 성당에 간 것도 아니고 토요일이었는데 기도실들 문을 빨리 닫아버려 조각을 본 게 꿈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 기대 없이 들어갔던 성당이었는데 깊은 감동을 하고 와서 선물같이 느껴졌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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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파리 사크레쾨르 대성당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은 파리 시내가 한 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높은 곳에 있어서 옛날에 성당까지 걸어 올라갔다면 고생했겠다 싶었다. 알쓸신잡 TV 프로그램에서 유현준 건축학과 교수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절에 들어가기 전 수많은 계단이 있는 이유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게 되고 그 상태로 부처님을 마주하면 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 성당 역시 교수님의 이야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었다. 파리 시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성당은 햇빛에 비치면 더 빛을 발해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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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미사 시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성당 내부전체를 가득 울리는 오르간 소리에 나도 모르게 압도되어 자리에 앉아 미사를 지켜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신부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나서 껌 같은 걸 받아먹었는데(신부님께서 직접 입에 넣어주기도 했고 신자들이 손으로 받아먹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인 남자친구에게 물어보니 성체를 모시는 것이라 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가 나의 몸이라며 가는 빵을 나눠주었는데 그 빵이 성체이고 그 의식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라 했다.

성당이 생긴 후 몇 천 년 동안 이와 같은 의식이 반복되고 그 의식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게 신비로웠다. 사실 종교의식이라는 건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이해되는 언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성체를 모시는 장면을 봤을 땐 다 큰 성인인 신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받아먹는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은밀한 의식을 엿본 거 같아 그 자리를 빨리 떠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언어도 종교도 다른 이방인인 내가 멀리서라도 그 엄숙한 분위기에 끼고 싶어서 한참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1.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이 성당을 본 이후로 다른 성당들이 감흥이 없어졌다. 여행 후반부에 가게 되어 행운이라 생각될 정도로 인생 최고의 성당이자 건축물이다. 평소 스페인을 정열의 나라로만 생각해 가톨릭국가라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 알고 보니 스페인에는 검은 성모상으로 유명한 몬세라트 수도원도 있고 유럽 3대 소년합창단인 몬세라트 소년 합창단도 스페인 출신이었다.

한국어로 성(聖)가족성당인 이 성당은 2026년 완공 목표로 130년 넘게 짓고 있다. 성당은 특이하게 3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면이 예수의 탄생과 수난, 영광을 표현했다. 성당을 갈 때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는데 특히 성경과 연관된 탄생과 수난의 면을 보면서 많이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성경을 잘 알지 못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조각은 섬세했다. 과연 그가 의도한 대로 모두를 위한 성당이구나 싶었다.

가우디는 자연을 건축으로 표현하려는 철학을 가진 건축가로서 건축물에 곡선을 많이 사용했고 자연광이 건물 내부를 환하게 밝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성당을 만들어냈다. 처음 봤을 땐 성당의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하고 성당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면 그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천재성에 놀랄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는 숲을 형상화했는데 성당이 거대한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숲 같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성당에서 쉬어갈 수 있는 건물을 지은 가우디와 그의 천재성이 존경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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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정신을 담는 그릇이듯이 성당도 성당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행위와 기도를 담는 그릇이라 생각한다. 성당의 요소 하나하나가 가진 의미를 찾으면서 성당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신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유럽 여행의 재미가 늘어날 것이다. 유럽인들이 사는 방식을 가까이서 엿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찬송가를 부를 때, 그들의 언어로 설교가 진행될 때, 교회를 가득 채우는 오르간 소리, 조용한 기도 소리 모두 여행의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다.


[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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