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공간의 이야기] 1-1. 광화문

글 입력 2018.07.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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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공간의 이야기


사실 많은 고민을 거듭하며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망설였다. 오래 전 써놓았던 프롤로그에서 공간의 카테고리를 나누어 이야기하고 공간의 디자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절대 쉬운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감성적인 날들에 보탬이 되고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무거운 부담으로 지워지는 것이 싫어 다른 방향을 숱하게 고민하다, 솔직하고 담백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 글을 시작할 때의 마음과 가장 맞을 것 이라는 데에 생각이 다다랐다. 그래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하루의 끝에서 자신의 삶이 지나간 오늘의 공간을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공기: 공간의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해보려 한다.
 
 
[공기, 공간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Prologue. 광화문에서


조금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나의 시작은 광화문이었다. 상경 후 서울과 친해지기 시작하며 가장 많이 갔던 공간이었고 지나칠 때마다 여전히 질리지 않고 사방을 둘러보게 되는 곳.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모이고 다양한 공간이 어울려있는 서울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다. 나에게 광화문은 서울 판타지를 처음 실제로 마주하게 했던 환상과 실재가 공존하는 그런 곳이었다는 표현이라면 그 마음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늘 북적이고 쭉 뻗은 대로가 이곳이 서울임을 크게 소리치고 있는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꿈과 생각을 떠올리고 그것들이 이뤄지기를 바랐었다.


 
1. History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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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수도가 한양이 되면서 왕이 사는 법궁으로 경복궁이 지어졌다. 광화문은 경복궁과 함께 조선 건국 직후인 1395년에 건립되었으며,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의 ‘광화’라는 이름은 1425년에 사정문(四正門)에서 바뀐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 중 왜국의 방화로 광화문과 경복궁이 소실된 이후 창덕궁에서 조선의 왕은 270여 년간 머무르게 되었다. 1865년 왕권강화와 왕실존엄성을 위해 새롭게 광화문과 경복궁이 복원되었지만, 다시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경복궁 내에 지어지면서 광화문은 경복궁의 북문인 건추문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6.25전쟁때 다시 불타 사라져, 지금의 광화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경복궁 정면에 재건된 것이다. 조선의 왕이 있는 경복궁의 정문으로 역사적인 상징성을 크게 갖는 광화문은, 그렇게 소실되고 복원되기를 반복하여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조선 역사 500년과 대한민국 역사 70년의 비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서있는 광화문에서 지난 시간을 떠올려보는 느낌이 전보다 더 애틋하고 애달프다. 시원하게 뻗은 도로와 광장에서 왠지 모르게 울음이 느껴졌다.

 
 
2. Sequence



서울의 중심에서 광화문을 외치다

 
광화문에 자주 가게 된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위치와 꽤 가깝다는 것도 큰 이유였다. 272번 버스를 타고 10분에서 15분, 터널을 두 개 정도 통과하면 나오는 경복궁의 뒷길을 지나 정문으로 향하는 동안 서울의 중심부로 스며들어감을 오롯이 느낀다. 버스에서 내려 광화문을 보려면 횡단보도를 지나 광장을 가는 동안 두 개의 동상과 마주한다. 하나는 이순신 동상이고 하나는 세종대왕 동상이다.

여담이지만, 이순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무과, 무신의 영웅으로 재조명되었던 인물이다.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대통령 자신을 더욱 대단한 인물로 느끼게하고자, 이순신의 영웅성을 군인이었던 대통령 자신에 투영하여 영화, 뮤지컬 등의 예술작품에 이어 동상으로까지 이어진 시대의 역사가 비하인드 스토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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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동안, 인왕산 자락을 눈앞에 두고 사방으로 탁 트인 8차선 대로와 검은 아스팔트위에 그려진 횡단보도를 지나면 이곳이 서울이구나 하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길고 넓게 뻗은 도로가 이곳뿐이 아닌데도 그것이 광화문이라는 공간의 특색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곳에 축적된 사람들의 발길과 시간, 사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숨들이 광화문을 광화문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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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차선 도로는 가운데에 광장을 두고 경복궁을 품고 있는데 사실 그 모양새가 통행하기에 매우 편한 것은 아니다. 주말이면 각종 시위와 집회로 차량 통행이 차단되어 광화문을 통해 혜화로, 종로로, 신촌으로 통하는 길들이 매우 우회하거나 정체되는 통증을 도시 전체가 앓기 때문이다. 차량이 다니지 않게 되는 도로는 광장의 성격을 겸하며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그들의 발걸음을 흔적으로 공간에 담는다.

그러나 어제 차를 타고 지나간 이가 오늘 발로 걸으며 여러 사람과 목소리를 남길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광화문을 지나는 여정의 재미난 포인트이다. 목소리를 들으려면 불편한 길을 감수해야한다는 것이 주말마다 사람들의 불만으로 터져나오지만 반대로 그 자신들의 소리를 내는 공간이기도 하기에, 어쩌면 이중성을 담고 있는 큰 그릇이라고 광화문을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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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공기: 공간의 이야기]에서는
01_광화문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다음 이야기
3. Now and here:
- 2030 트렌드 중심지로의 변화
- 광화문의 봄
 
 
4. 당신의 광화문:
- 광화문 광장, 확장 이후는
- 광화문의 내일





여러분의 공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광화문은 어떤 곳인가요?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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