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머리말에 대하여 [기타]

책의 첫 페이지에 담긴 숨결
글 입력 2018.07.09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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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머리말이 있다. 몇 년도 몇 월 며칠 어느 날, 지금은 날씨가 이렇고, 나는 어디에 앉아서, 글을 끝마친 후에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머리말을 쓰고 있다는. 모든 머리말이 이런 내용인 건 아니지만, 대개 내가 보아 온 머리말들은 그랬다. 책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지라도, 그 몇 장이 채 되지 않는 적은 공간에는 작가의 숨결이, 숨 고름이, 때로는 작가보다는 그저 글을 써낸 어느 날 어느 한 사람의 결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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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현 「책은 도끼다」 머리말 中


대개 그러하듯 나 역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다’는 건 그 핵심인 제목과 내용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 머리말을 읽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실 머리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책을 펼쳐 곧바로 마주하는 것은 제1장, 혹은 모든 말들의 운을 떼는 첫 문장이었다. 가끔 머리말을 읽었다고 해도, 그건 잠시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짧은 순간과 같았을 뿐, 책에 대한 나의 인상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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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머리말 中


그리고 마침내, 잠시의 숨 고름과 같은 그 머리말들에 점점 더 오랜 시선을 두게 된 건, 국내 작가들의 자전적 소설들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다.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낸 것인지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 머리말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는지, 어떤 이들의 도움을 받아 글을 썼으며, 때로는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 대한 작가 자신의 솔직한 마음까지 담겨있었다.

책 겉면의 커다란 제목 아래 나지막이 쓰인 작가의 이름 세 글자는, 마침내 머리말에서 그의 숨결을, 그리고 글을 써 내려갔던 자신의 마음을 풀어내며 글을 쓰는 자신과,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도 한다. 잠시나마 회포를 푸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때로는 고상한 단어들로
시적 기교를 부리려고
애쓴 나의 시가 기댈 곳은
시를 읽어내는 독자의 눈과 마음뿐이다.’

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머리말 中


위의 문장을 일기장에 옮겨 적은 후, 나는 이렇게 썼다. '문장보다는, 진심으로 느껴진다'고. 분명 좋은 책으로부터 받는 인상이나 위안은 책의 중점적인 내용들에서 받곤 했지만, 이렇듯 글을 쓰는 자신을, 그리고 그 글을 읽을 독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때로는 더욱 위안이 되기도 한다. 형식이라기보다는 진심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건들보다는 그저 그 모든 것들을 써 내려간 마음과 이유, 그리고 그 생각의 결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 바로 머리말이 아닐까.

책의 첫 머리에서, 이렇듯 한 사람은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넌지시 알리고, 그 뒤의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맡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머리말을 좋아한다. 맨 앞 몇 장에 날씨와, 날짜와, 그리고 마침내 모든 말들을 써낸 뒤 마지막 마음과 순간을 기록하는, 가장 솔직하고도 숨결이 살아있는 공간이 머리말인 것 같기 때문이다. 쓰기를 다 한 후, 마치 독자인 우리가 그러하듯 책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그 공간이 좋다.


[남윤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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