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건반위 그와 나의 거리

프레디 켐프 피아노 리사이틀, 에튀드 그 이상의 에튀드
글 입력 2018.07.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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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켐프 피아노 리사이틀
에튀드 그 이상의 에튀드”


Preview 건반위 그와 나의 거리



프레디캠프_포스터.jpg
 
 

첫인상
 
평생 빛이 들지 않을 것 같은 무대 위에 은은한 조명이 비춘다. 동시에 조명을 받은 수많은 눈들은 무대 위의 연주자를 보고 빛나기 시작한다. 피아노 리사이틀은 그 빛을 혼자서만 받아내야 하는 독주회, 그리고 그 눈빛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연주를 해야하는 고독한 무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터에 그려진 검은 고독의 이미지가 ‘프레디 캠프 피아노 리사이틀’에 드는 첫 느낌이었다.

아트인사이트의 문화 초대에 처음 참여하여 피아노 리사이틀을 감상할 기회가 생겼다. 클래식보다는 아무래도 대중음악에 관심이 많은 나는 피아노 연주회에는 무슨 옷을 입고 가야하는지부터 걱정되기 시작했고 남은 기간동안에 공연을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연주자 뿐만 아니라 관객도 공연을 대하는 데 있어서 최선의 준비를 다해야 성공적인 공연을 약속할 수 있으니. 피아노에 대한 내 기억부터 시작해서 연주곡들 그리고 당일에 입을 옷까지 천천히 고민해 보아야겠다.



피아노

어릴적 피아노만 존재하는 골방 안에서 혼자 체르니를 연습하던 내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양심을 조명 삼아 눈앞의 사과 동그라미 10개를 관객으로 한 어린 연주자의 리사이틀은 늘 6번째쯤 연주에서 끝나고는 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피아노에 대한 경험 하나쯤은 갖고있을만큼 피아노는 가장 보편적인 악기이다. 그러나 동시에 피아노는 특별하다. 흔한 악기로 특별한 연주를 하기는 반대의 경우보다 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상의 자리에 오른 피아노 연주자와 나와의 거리감은 한 4옥타브 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 거리감을 좁히지 않고 싶다. 나와 연주자의 거리는 곧 연주회에서 느끼는 만족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그 거리를 유지한채 세 거장들의 에튀드를 미리 들어보기로 했다.



에튀드?

‘에튀드 그 이상의 에튀드’

*
에튀드[etude]
기교의 연습을 위해 만든 연습곡 

그저 연습곡? 게다가 연습곡으로 구성된 연주회라니 어딘가 낯설었다. 낯선 구성에 대한 기대보다는 내가 에튀드 연주회를 감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혔다. 걱정만 하고 있기보다는 서둘러 ‘에튀드’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곡 구성과 인터뷰를 보고 정보를 검색해보자 에튀드가 그저 연습곡은 아니었다.

직접 들어보기 위해 유튜브를 찾아보자 공연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곡이 영상으로 나와있을 뿐만 아니라 프레디 켐프 자신이 일전에 쇼팽의 에튀드를 연주한 영상도 있었기 때문에 쉽게 들어볼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중에는 이미 내 귀에 익은 곡들도 있어서(결정적으로는 에튀드가 다른 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부담없이 들을 수 있었다.



쇼팽 맛보기

콘서트 구성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쇼팽의 에튀드를 먼저 들어보았다. 게다가 ‘쇼팽’이라는 이름은 음악시간에 자주 들어본 이름이기 때문에 가장 친숙했다. 쇼팽에 대한 세간의 평론은 쇼팽의 에튀드가 ‘에튀드의 정식’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쇼팽은 기교와 정서 그 자체만은 의미가 없고,
이것이 하나로 조화를 이룰 때
완벽한 예술이 된다고 믿었다.

쇼팽 에튀드 Op.10 No.4에 대한 평론


쇼팽 에튀드 Op.10 No.4는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 삽입되기도 했기 때문에 이미 멜로디가 익숙했다. 쇼팽의 에튀드를 듣다보니 연주자의 정서를 기교의 극한과 함께 표현하는 에튀드라는 형식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기교를 위한 연습곡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쇼팽은 에튀드를 예술의 영역에 올려두었다.

쇼팽의 에튀드를 연주하는 켐프는 페달을 밟을 때도, 하나의 터치를 할 때도 정말 쇼팽의 있는 그대로를 ‘재현’해 내는 듯했다. 유튜브 화면 아래 쇼팽의 에튀드는 생생하게 재연되고 있었고, 무려 11년 전의 240p 화질에서도 나는 ‘에튀드 그 이상의 에튀드’를 느낄 수 있었다. 추가적으로 쇼팽의 에튀드에는 유명한 부제가 붙은 곡들이 있다. 4번 추격, 5번 흑건, 12번 혁명 등 부제를 보고 감상하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가 한결 수월했다. 인상적이었던 곡의 부제에 부연설명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적어보았다.


F.Chopin: Etudes Op.10


제1번 C장조
‘승리, 한번 시작해볼까?’



제3번 E장조
‘이별의 곡,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



제4번 C#단조
‘추격, 놀랍다.’



제12번 E♭장조
‘혁명, 익숙하지만 새로운’




카푸스틴 맛보기

재즈 리듬을 에튀드에 활용한 카푸스틴 에튀드는 오프닝으로 연주되기 정말 좋은 느낌이었다. 재즈 특유의 빈 공간을 활용하는 듯한 연주는 마치 재즈 밴드 셋이 피아노 내부에 숨어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에튀드 그 이상의 에튀드란, 카푸스틴에게 있어서 에튀드를 연주하면서 다른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기 때문에 카푸스틴의 곡은 ‘그 이상’을 보여주는 이 연주회에 적합하다. ’에튀드스러운’ 멜로디에 재즈의 당김음이 녹아있는 VII. Intermezzo가 가장 인상깊었다.


N.Kapustin: 8 Concert Etudes for Piano Op.40


VII. Intermezzo (Konstantin Semilakovs)
‘민트 아이스크림 속에 숨어있는 팝핑스타처럼 재즈 리듬이 숨어있다.’




라흐마니노프 맛보기


첫번째 에튀드는
벨벳이나 두꺼운 연기처럼 매우 어둡지만,
음악 안에 모든 것이 제시되어 있어
연주자가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없죠

켐프의 인터뷰 중


켐프는 라흐마니노프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그럼 연주자 없이 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는 위 둘과 달리 곡의 악보를 따라가며 들어보았다. 손은 절대 따라갈 수 없어 눈만 따라갈 뿐이지만, 곡의 흐름을 음표를 따라가며 듣는것도 연주자를 보며 듣는 것과는 또다른 느낌을 주었다. 제1번을 들어보니 두꺼운 연기가 곡전체를 감싸고 그 연기 안에 무언가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간결하지만 짧은 음을 활용해 포인트를 잡아주는 왼손의 역할이 인상깊었다. 경쾌한 울림을 주는 제9번도 중간에 한 음만으로 연주되는 그 짧은 순간이 기억에 남았다. D장조와 피아노포르테의 조화가 주는 경쾌함은 현장에서 가장 기대되는 포인트 중 하나이다.


S.Rachmaninov: Etudes-Tableaux Op.39




Freddy Kempf

Freddy Kempf2.jpg
왠지 모르게 슬퍼보이는 사진


실제로 계획을 세우거나
특정한 야망을 가진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항상 발전하며 배우려고 노력해요.

피아니스트로서 나이가 들더라도
제 경력을 통해 배우고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
행운인 것 같아요.

프레디 켐프 인터뷰 중


프레디 켐프라는 연주자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인터뷰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켐프가 늘 노력하는 자세로 피아노를 연주해왔다는 것은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그는 연주할 때 건반의 터치, 서스테인의 감도 등 세밀한 표현에서 정말 완벽에 가까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있는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을 의도한듯 하고 정확한 타건을 보여 준다.

유튜브 랜덤 재생이 프레디 캠프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을 들려주었다. 에튀드가 아닌 곡이 나와 다른 곡을 선택하려 했지만, 카메라에 비친 그의 표정이 정말 심각하게 슬퍼 보여서 계속 듣게 되었다. 온 힘을 다해 감정을 전달하려는 그의 노력이 표정에 나타나는 걸 보며 진짜 ‘프로 뮤지션’의 모습을 보았다. 프리뷰를 마무리하자 왠지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진듯하다. 아마 4옥타브 중 반음 정도만 가까워졌을 것이다. 그래서 빨리 리사이틀을 보고싶어졌다. 무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할 연주회 날이 너무도 기다려지는 이유는 바로 그와 나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좁히고싶기 때문이다.


Beethoven : Piano Sonata No. 8, Op. 13 "Pathétique" II. Adagio






Preview 민현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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