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툴러도 괜찮아,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7.0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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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손가락의 천재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음악가 라흐마니노프가 교향곡 1번을 발표한 뒤 슬럼프를 겪던 3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라흐마니노프와 그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온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이 두 인물이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가 담긴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를 소개한다.


 
1. 피아노와 비올라

음악극답게, 극 중에서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는 각각 피아노와 비올라로 비유된다. 특히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를 자신과 굉장히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음악을 대하는 이 둘의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

“내 손이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면 피아노의 안쪽에선 해머가 현을 때립니다. 그 아픔에 현은 울기 시작하죠. 피아노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이고…….”
 
극 초반 피아노를 무시하는 발언을 한 달 박사에게 라흐마니노프가 내뱉은 말이다. 음악을 하는 그의 모습은 고통스럽고, 관객에게 그는 자신의 생명을 깎아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달 박사는 사뭇 다른 태도를 가지는데, 작곡의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라흐마니노프의 앞에서 그는 고작 석 달 배운 비올라로 ‘작은 별’을 서툴게 연주하며, “음악은 참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그렇죠?”라고 말한다. 매너리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의 즐거움과 설렘을 일깨워주는 달 박사. 라흐마니노프가 그에게 비올라는 어떤 악기이냐고 묻자, 그는 ‘슬픈 표정의 철학가’라고 대답한다. 바이올린보다는 낮고 첼로보다는 높다.

그들 중간에 위치해서 리드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이목을 끌지는 못하지만 그 어떤 악기만큼이나 중요한 악기가 바로 비올라다. 달 박사는 자신이 마치 비올라를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누구보다도 뛰어남을 증명하기에 급급했던 라흐마니노프에게, 달 박사는 비올라와 함께 그에게 조화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의 치료가 끝났을 때, 달 박사는 그를 떠나면서 자신의 분신같은 비올라를 남겨둔다. 마치 내가 떠나도, 언제나 당신 곁에서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는 듯이.


 
2. 열등감

아무리 거부하고 내쳐도 끊임없이 자신을 찾아오고 건드리는 달 박사에게 점차 마음을 열게 된 라흐마니노프는 어느덧 먼저 그를 찾아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치료하려는 기세를 보이기에 이른다. ‘당신은 새로운 곡을 쓸 것이고, 새로운 곡을 쓰면 관객들은 당신을 사랑해줄 것입니다.’ 달 박사의 자기 암시 요법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벽에 부딪히게 된다. 새로운 곡을 쓰겠다는 열망으로 돌아간 라흐마니노프는 완벽한 교향곡을 위해 스스로를 한계로 몰아붙이며 또다시 고통스러워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달 박사는 자신이 무엇을 놓친 것인지 혼란에 빠진다. 그는 라흐마니노프를 찾아가 ‘왜’ 교향곡을 쓰고자 하냐며 조급하게 그를 압박한다. 그리고 그런 달에게 라흐마니노프는 오히려 ‘왜’ 자신을 치료하려고 하냐며 반문한다. 당황하는 달 박사의 면전에서 그의 선배인 프로이트의 기사를 읽는 라흐마니노프는 달 박사 역시 이기심과 프로이트에 대한 열등감으로 자신을 찾아왔음을 까발리며 그를 조롱하고, 달 박사는 수치심에 가득 차 그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극 중 두 인물은 모두 열등감에 휩싸여 있는 인물이다. 달 박사는 자신과 달리 성공한 정신분석학자인 선배 프로이트를, 그리고 라흐마니노프는 한때 천재로 추앙받던 과거의 자신을 질투하며 그를 능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예술가와 정신의학자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직업을 가진 이 두 인물에게 관객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객석에 앉아있는 우리들과 상당 부분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잘 해내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그에 따르는 어중간한 재능은 사람을 열등감이라는 수렁에 손쉽게 빠뜨리기 마련이다. 열등감은 때로는 놀라운 성과를 내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지만, 결국 보이지 않는 적이 지켜보는 원형 감옥으로 자신을 빠뜨린다. 열등감이란 나보다 잘난 자와의 싸움이 아닌, 내 바람보다 못난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나의 이상향을 없애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지우고, 진정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 그 길만이 열등감이라는 끝없는 수렁에서 나오는 유일한 방법이다.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를 떠나기로 결심했지만, 이내 괴로워하는 그를 바라보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는 자신의 이상향이었던 프로이트에게서 눈을 돌려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정한다. 나의 바람보다 못난 나 자신을 인정하고 고백함으로써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을 얻게 된다. 라흐마니노프 역시, ‘오직 나만이 비르투오소’여야만 한다는 욕망을 버리고 달 박사와 함께 최면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봄으로써, 왜 음악을 하고자 하는지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는 ‘완벽’의 늪에서 스스로를 구원하게 된다.

극 중에서 악수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마음의 문을 닫은 라흐마니노프, 그에게 악수를 건네는 달 박사. 극 초반 달 박사는 악수를 거절당하지만, 극의 말미에 이르러 라흐마니노프와 온전한 이해를 나누고 악수하게 된다. 이 악수는 닫힌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상징적인 행위이자, 자신을 딛고 일어선 두 인물이 스스로를 용서하며 건네는 악수이기도 하다.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는 모두 자신의 바람 혹은 기대보다 한참 모자라고, 부족하며, 그에 열등감을 품은 인물이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다운 인간이다. 이 두 인물은 극 내내 서로를 통해 자신이 가진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보듬게 된다. 마치 거울을 보듯 서로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모자라고 부족한 나 자신을 이들은 마음껏 안아주고 인정하게 된다. 어쩌면 이 두 인물의 악수는 내 바람과 달리 여전히 부족하고 부족한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내 자아와의 화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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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대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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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무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무대 왼편 끝에는 니콜라이 달 박사가 머무는 방, 오른편 끝은 라흐마니노프의 방, 그리고 그 사이 무대의 한 가운데는 둘의 방을 오갈 수 있는 복도이자,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가 과거를 되짚을 때 빠지게 되는 무의식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무대 뒤쪽에는 현악 6중주단과 피아노가 자리하면서 극을 뒷받침해준다.

라흐마니노프의 방은 피아노와 차를 마실 수 있는 탁자가, 달 박사의 방은 환자(라흐마니노프)에 관련된 메모가 한 가득 붙어있는 벽, 탁자, 그리고 책이 잔뜩 꽂혀있는 책장이 배치되어 있다. 각자의 방에서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는 서로가 알지 못하는 속내를 꺼내 보인다. 혼자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그 둘은 솔직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진짜 자신을 보여주는 서로의 개인적인 공간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이 존재하는, 깊고 넓은 무의식의 세계가 펼쳐지는 공간을 넘어야만 한다. 이는 서로가 진실로 서로의 마음에 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대 한 가운데는 라흐마니노프의 무의식 속 자리한 오브제들로 가득 차 있다. 한 쪽에는 은사였던 니콜라이 쯔베르프 교수의 무덤과, 그에게 바치는 붉은 코트가 걸린 마네킹, 다른 쪽에는 (아마 아버지의 무덤일)부서져버린 비석과 군화가 놓여 있고, 사이사이에는 그가 쓰다 만 악보들이 널려있다. 무의식의 길은 무대 뒤편을 향해 길게 이어져있는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깊은 무의식의 영역이 자리하고 있다. 무의식의 끝, 가장 깊은 마음속엔 그가 애써 잊으려 했던, 죽은 누나 옐레나의 조그만 침대와 탁자가 놓여있다.

그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최면 작업은 세 단계로 진행되는데, 이것은 ‘음악가 라흐마니노프’의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그가 음악을 접하게 된 계기인 사촌 형 실로티의 피아노에 관련된 이야기는 무의식의 공간에서도 가장 앞쪽에서 전개되고, 그가 음악가로서 거듭날 수 있게 한 스승 쯔베르프 교수와의 이야기는 그보다 조금 더 안쪽 깊숙한 곳에서 진행된다. 실로티와의 일화는 그에게 즐거운 기억이기 때문에 마주하기 쉬운 기억이다. 그러나 쯔베르프 교수는 그가 모진 말로 거부하고 배신한 인물이기 때문에, 끝내 은사에게 사죄하고 감사를 전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음악을 하고자 했던 본질적인 이유인 누나 옐레나. 그는 쯔베르프 교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죄책감을 안기는 인물이다. 어린 라흐마니노프는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그의 죽음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흐마니노프는 자괴감을 안기는 가장 큰 고통이자 동시에 그의 작곡의 원천이 되는 누나의 기억을 가슴 깊이 묻고, 옐레나의 오브제는 무대 가장 안쪽, 무의식의 길 끝에 자리하게 된다.

라흐마니노프가 옐레나의 기억을 묻어버리고 외면한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하늘에 보내는 교향곡을 작곡한다. 무대의 천장에 한가득 붙어있는 악보들은 마치 하늘에 있는 옐레나에게 올려 보내려다 실패한 그의 교향곡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4. 조명 디자인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라흐마니노프의 실패한 교향곡 1번의 연주 장면으로 시작한다. 극의 시작과 동시에 완전히 암전이 되는 다른 공연들과 달리, 라흐마니노프에서는 객석에 앉은 관객들이 마치 극 속의 연주회에 온 관객인 양 객석의 조명을 조금 남겨두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교향곡 1번의 좌절과 함께 객석의 조명이 완전히 꺼지면서 관객들은 극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라흐마니노프는 심심한 스토리라인을 보완하듯 조명을 꽤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쯔베르프 교수와의 첫 만남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일 때, 실제 라흐마니노프 역할을 맡은 배우가 아닌 무대 뒤편의 피아니스트가 모차르트, 쇼팽, 리스트, 베토벤 등의 곡을 연주하는데, 이때 무대 앞의 라흐마니노프와 무대 뒤의 피아니스트를 같은 색 조명으로 비춤으로써 누가 누구인지에 대한 관객의 혼동을 효과적으로 줄였다. 이밖에도 스승의 엄격한 지휘에 맞춰 연주하면서 힘에 겨워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심정을 마치 피아노 건반과 같은 모양의 조명이 쉴 새 없이 깜박이며 표현했다. 또, ‘complete’ 넘버 이후 자신만의 연주 세계에 갇힌 라흐마니노프를 표현하기 위해 무대를 암전에 가깝게 처리한 채 주저앉은 라흐마니노프의 위로 한 줄기 조명을 비추었는데, 이는 마치 컴컴한 방에 갇힌 라흐마니노프가 문 틈새로 흘러나오는 빛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며 한 마디 대사 없이도 그의 외로운 심정을 와 닿게 했다.

타지에 홀로 남겨진 외로운 유학 시절, 고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를 듣고 위안을 받았다는 달 박사의 이야기에서는 달 박사가 서 있는 무대 바닥을 차가운 푸른색으로 비추고 그 위에 따뜻한 노란빛의 작은 사각형 조명을 쏘였다. 이 모습이 꼭 새파란 조명 속에서 혼자 고개를 숙이고 걷던 달 박사의 마음에 라흐마니노프의 연주가 남긴 흔적과도 같아보였다. 크게 대단치 않아도, 푸르게 시린 마음에 점점이 남았을 따뜻하고 소박한 위로.

무대 양 쪽에 떨어져있는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의 방 사이에 존재하는 복도는 극 중 내내 격자무늬의 조명이 드리워져 있다. 격자무늬 조명은 주로 창문을 표현할 때 많이 쓰인다. 이 복도는 두 사람이 양 극단의 개인적인 공간에 처박혀있더라도 서로를 만나기 위해서는 건너야만 하는, 혹은 만나게 되는 물리적 공간이자,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무의식, 혹은 개인적 경험의 공유가 이루어지는 추상적인 공간이다.

이 공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닿기 위한 공간, 마치 창문처럼 서로에게 드나들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서로 교류할 때 그 위에 창살처럼 격자무늬가 드리워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더해서, 이 둘이 서로의 치부와 과거의 경험을 온전히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복도의 격자무늬 그림자는 사라진다. 대신 그들의 방으로 옮겨간다. 이때 그들은 더 이상 이 복도를 통해서만 서로를 알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들의 방에는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구가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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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가 자신의 기억을 더듬고 무의식의 세계에 빠져들 때의 조명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자신의 세계에 빠져들 때 그들 위로 물결 같은 무늬의 푸른 조명이 깔리는데, 마치 자신만의 심연에 가라앉은 듯한 연출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최면에 걸린 라흐마니노프가 무의식 속을 거닐 때, 극 중 현실의 무대에는 조명이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무대 뒤편, 관객과 마주보는 벽을 색색의 조명이 채운다. 그 벽은 극 중 인물의 깊은 마음속과 같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가지 색만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색이 일렁이는 마음의 빛. 달 박사의 말마따나, 인간의 마음은 깊고도 복잡하다. 그것이 무슨 색인가?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하고, 어쩌면 그 어떤 빛깔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역시 달 박사의 말마따나, 그래서 아름답다.


 
5. 각본의 한계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잔잔한 힐링극으로 유명한 만큼, 스토리라인이 지루하다는 평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필자가 가장 크게 실망했던 점은, 라흐마니노프의 트라우마를 지나치게 간편하고 뻔하게 처리해버렸다는 점이다. 결국 그 라흐마니노프가 작곡을 하고 음악을 삶의 반려로 삼은 근본적인 이유가 누나의 희생이었다는 부분은 가족애를 강조하는 진부한 코드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더군다나 그렇게 되면 누나의 죽음을 외면하면서까지 모스크바 음악원에 가고 싶어 했던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또, 잊어버린 누나에 대한 기억, 마주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묻어둔 그 기억을 꺼내놓고 슬퍼하다 곧바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장면으로 넘어가는 흐름은 개연성이 부족해 보였다.

또한,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한정적인 시선 역시 엿보였다. 라흐마니노프의 누이인 옐레나는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할 예정이었던 촉망받는 무용수였고,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를 음악원에 보낸 것은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가 아니라 극에는 등장조차 하지 않는 그의 어머니였다. 이 둘의 서사를 지워버리고, 옐레나를 그저 보듬어주고 보살펴주는, 라흐마니노프의 뮤즈로만 존재하는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로 만든 것은 조금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더해서, 예술가가 “나는 왜 예술을 하는가?”라는, 슬럼프에 빠진 것 이상으로 더욱 본질적인 질문에 다가섰을 때, 이 물음에 대한 해결책을 사랑‘받음’으로 처리하려 했다는 점은 각본가로서 게으른 선택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극 중 그의 슬럼프는 교향곡을 만들고자 했던 본질적인 이유를 잊고 완벽에만 치중했기 때문으로 나온다. 그래서 달 박사의 첫 번째 자기암시요법(“당신이 새로운 곡을 쓰면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해줄 것입니다.”)은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이 교향곡을 쓰고자 했던 이유를 깨닫자 그는 옐레나에게 보내는 선율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매너리즘에서 탈피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달 박사는 “당신이 새로운 곡을 쓰건, 쓰지 않건,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필자는 바로 이 부분에서 예술가 라흐마니노프가 지워지고, 환자 라흐마니노프만 남은 인상을 받았다. 극 중에서 그가 곡을 쓰지 못한 이유는 곡을 쓰고자 했던 진정한 이유를 잊었기 때문이고, 곡을 다시 쓸 수 있게 된 것도 완벽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옐레나에 대한 기억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나 자신을 꺼내어 여러 장르로 각색하는 작업이며, 극 내내 강조하는 열등감의 극복 역시 내 안에 있는 타인의 시선을 버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예술이란 ‘타인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나 자신’을 그리는 일이다. 그러나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힐링’의 메시지를 강조한 나머지, 예술가로서 그의 실패와 재기의 기준을 관객의 인정 여부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라흐마니노프가 절망한 이유가 관객의 사랑을 받는 곡을 쓰지 못해서였다면, 옐레나에 관한 서사를 부여할 필요는 사실 없었던 것이다. 이는 곧 나와 나의 예술의 존재 이유가 타인의 애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내 예술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내 속에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은둔한 3년의 시간동안, 달 박사는 그에게 ‘당신은 새로운 곡을 쓸 것이고, 그 곡은 최고의 교향곡이 될 것이다’라는 자기 암시 요법을 시행했다고 한다. 슬럼프는 ‘해내지 못할 것이다’라며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끝없는 저주이다. 그리고 이것은 ‘할 수 있다’라는 자기 암시로 대응이 가능하다. 이 자기 암시는 창작이라는 고통과 환희가 공존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용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라흐마니노프가 바라는 교향곡을 쓰는 데 있었다.

그러나 첫 번째 암시 요법의 실패 이후 마치 실패를 보완한 정답인양 ‘새로운 곡을 쓰건, 쓰지 않건 당신은 사랑받는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라흐마니노프의 궁극적인 목표가 음악이 아닌 사랑‘받음’에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순간 예술가 라흐마니노프는 사라지고, 우울증 환자 라흐마니노프만이 남았다. 그래서 필자는 마지막 대사를 새롭게 고쳐 쓰고 싶다. ‘당신이 새로운 곡을 쓰건, 쓰지 않건, 당신이 사랑받건, 사랑받지 않건, 당신은 괜찮습니다.’라고. ‘나’보다 모자라고 부족한 나를 안아줄 수 있는 만큼, 남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나를 받아들일 용기 역시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끝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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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으며 최근 중국으로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완벽을 바라는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현대인들에게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가 전하는, 서툴러도 괜찮다는 메시지는 가슴 속 깊이 한 조각 위안이 되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바쁜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악수를 건네길 기대해본다.




[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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