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당신이 좋아하는 종이를 보여주십시오

도서 종이의 신 이야기
글 입력 2018.07.0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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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신 이야기
_오다이라 가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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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종이라는 존재는 익숙하면서도 묘하다. 우리는 종이를 '종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너무 익숙해서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존재가 종이지 않을까. 지금의 나조차도 이 글을 쓰고 책을 붙들고 있다가 아 '이 책도 종이로 만들어진 거구나' 하며 너무 당연한 건데 종이라고 명확히 인식하려고 하니 기분이 묘하다. 어쩌면 지금의 많은 사람들과 종이의 관계가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신’

우리는 무엇인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보고 신이라 부르곤 한다. 그만큼 아무 사람에게 붙지 않는 말이기도 한 '신'.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첫인상에 궁금증을 자아낸 제목이 나를 이끌었다. 『종이의 신 이야기』. ‘종이의 신, 과연 이런 말이 어울리는 인물은 누구일까. 종이에서의 신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라며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종이와 사람 사이의 이야기
잊고 있었던 어떤 뭉클함"

- 보도자료 中


그들은 어떻게 종이의 신이 되었을까. 그들이 종이와 어떤 인연을 가지고 있기에 저자가 종이이 신이라고 부르는 걸까.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만나보는 종이와 사람의 이야기라며, 책과의 만남을 정의해보며 읽기 시작했다.


*


10년 전에 한 번.
그리고 10년 만에 다시 한 번
나는 작은 여행을 했다. 
누구나 마음에 남아 있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종이의 신'을 만나기 위해.

- 『종이의 신 이야기』 첫 페이지 中



종이의 신 이야기의 탄생은 저자가 처음 취재를 시작한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년 전부터 종이 장인들을 취재하며 이를 엮어 그 당시 『종이의 신』을 출간하기도 한 저자는 취재차 만났던 한 디자이너가 그로부터 2년 뒤에 페이퍼 프로덕트 전문 상점을 개업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축하할 겸 그 디자이너를 찾아갔는데, 놀랍게도 저자와의 인터뷰 덕분에 상점을 차리게 되었고, 놀랍게도 저자와의 인터뷰 덕분에 새로운 길을 택할 수 있었다고 고백해왔다.(중략) 종이가 맺어준 인연에 감동한 저자는 10년 전에 취재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 종이에 대해 물었고, 그 이야기를 이 책, 『종이의 신 이야기』로 엮어냈다.

- 보도자료 中



*


클릭 한 번으로 사라지지 않는, 
덧쓰기도 할 수 없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느려터진 전달도구.
그런 종이가 이 책의 주역이다.

- 『종이의 신 이야기』 첫 페이지 中


"당신이 좋아하는 종이를 보여주십시오"


취재를 한 저자도, 이야기를 꺼내는 '종이의 신'도 종이에 대한 그저 그런 관심만으로는 꺼내기도, 대답하기도 망설여지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당신이 좋아하는 종이를 보여주십시오”. 질문에 답하기 위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종이의 모습은 정말 다양하고, 거기에 종이의 신만의 이야기가 더해지니 평범한 종이가 특별함으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과 인연을 가진 종이 이야기를 하며 즐거움에 푹 빠져버린 분위기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종이의 매력에 흠뻑 취한 사람에게는 세상 모든 종이가 수집 가능한 대상이다. 성냥갑 라벨, 우유병 뚜껑, 책갈피, 전단, 화장지 등의 포장지 같은, 이른바 쓰고 버리는 인쇄물 종류를 ‘프린티드 에페메라(Printed Ephemera)’라고 한다. 에페메라는 ‘단명한’, ‘쓰고 버리는’이라는 의미.

- 보도자료 中


저자가 종이의 신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트디렉터, 화가, 염색공예 디자이너, 요리연구가, 사진작가 등등. 공통점이 있다면 다른 것도 아닌 종이에 마음을 기울인 사람들, 더 나아가 내가 이들에게서 하나 발견한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익숙하고 단순하기만한 존재인 종이에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하루살이 인쇄물을 오래전부터 수집해온 여든 살의 아티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림의 치졸함, 소박함이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요. 디자인이나 이름으로 팔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왠지 ‘아무거나 상관없다’는 여유로움이 느껴져서 끌리는 거지요. 보고 있으면 왠지 편안해집니다. 모던디자인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가진, 이런 미의식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걸까요.”

-보도자료 中


여행지에서 사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공항이나 편의점에서 팔고 있는 관광용 엽서다.

"호텔에도 곧잘 놓여 있지요. 촌스럽고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은 느낌이 나는 그런 것. 그걸 보면 오히려 여행을 떠나왔다는 실감이 납니다. 두세 장을 사서 책에 대충 끼워 가지고 오기도 하는데 그런 대접 또한 왠지 안쓰럽습니다. 그 안쓰러움이 좋은 건가"

-70p


너무 익숙해서 그냥 지나가고, 다른 것을 위해 포장되었고, 그래서 버려지고, 단지 아주 볼 품 없는 작은 일부인 종이. 내가 본 종이의 신은 주역을 위한 단역 중에 단역이었던 것의 이야기를 볼 수 있고 이를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정성을 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생각보다 더 소중한 이야기를 읽어내고 결국 '종이의 신'이 된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신'이라는 의미의 뒤에는 그만의 진심 어린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읽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행동을 괜스레 하게 되었다.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이 느끼는 종이의 결, 괜히 책에서 올라오는 종이 내음을 느끼고 싶어졌다. 마치 종이의 맛을 음미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내게 종이라는 것이 '당연하게 존재해야 할 것'에서 '그 의미를 읽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종이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손에 들린 종이와의 인연에도 관심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


3장부터는 눈에 띄게 종이가 바뀌면서 짙어지는 종이 내음이 내용보다 먼저 나를 반겼다. 종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어설프게나마 종이의 신들처럼 종이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3장의 종이는 내가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늘 공지사항을 인쇄해서 나누어주는 그 회색 종이와 닮았다(물론 이 책의 종이와 같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왠지 모르게 하얀  용지보다는 가볍고 싼 것이라고, 그래서 수백 장을 인쇄해서 나누어줄 수 있는 거겠지 라며 생각했던 보들보들한 회색 종이. 이 책에서는 또 다른 느낌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종이와의 인연을 담은 책인 만큼, 앨범지, 미색백상지, 만화용지, 크라프트지 등 다양한 종이로 인쇄하여 보고 만지고 맡는 맛을 더했다.

-보도자료 中


책을 리뷰하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 말하는 것이 맞는 맥락이지만, 이 책은 왠지 모르게 계속 종이 자체를 느끼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고, 그래서 그 느낌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마치 저자가 책을 보고 책의 제목이나 내용 보다는 책을 이루는 종이와 그 느낌을 이야기 하며 감탄하는 것처럼. 남다른 시선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경험하는 책 내지의 변화는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내지가 서로 다른 재질의 종이로 이루어진 책도 있겠으나, 이 책은 오로지 종이를 위해, 독자들이 종이의 존재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변화하는 모습을 세심하게 챙기고 있었다.


*


앞서 많은 사람들의 다채로운 종이와의 인연에 대해 읽어보았다면 후반에는 더 본격적으로 종이에 파고드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종이가 인생인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예를 들어 보자면 새로운 종이가 탄생하는 과정과 이야기, 종이의 이름이 지어지는 이야기를 언급하고 싶다.


그렇다면 종이를 개발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두고 있는 걸까?

“‘지금의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컬러의 밸런스, 광택, 부드러움과 딱딱함, 감촉과 분위기, 엠보싱 등으로 디자인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최선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느낌이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대마다 톱 크리에이터와 논의하고 감수를 받으면서 기획・개발합니다. 동시에 대중적인 용도로, 그러니까 사용하기 편리한 상품을 만든다는 측면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187p


모두 하얀 종이지만 사실 그 종이들은 저마다의 흰색과 이름이 있다는 것을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더 길게 살펴볼 수 있다. 혹자는 종이를 조금 전문적으로 접해보지 않았다면 의아할 수도 혹은 우연히 종이의 색이 미묘하게 다름을 느꼈을 수도 있다. 사실 모든 종이는 다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두 흰색이지만 다 다른 흰색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종류는 생각보다 더 다양하다, 지금도 새로운 종이가 탄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떤 책이 이토록 종이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관심을 두고 세세히 이어나갈까'라는 생각과 함께 만나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보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신기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추상적이고 막연한 ‘지금의 느낌’이라는 것에서 시작하여 여러 세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 또 다른 정체성의 새로운 종이인 것이다. 거꾸로 살펴보면 이 종이 한 장은 ‘지금의 느낌’이란 것을 우리가 감각할 수 있도록 실현하는 과정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함축되어 있다면 종이의 존재가 가진 것은 생각보다 더 깊고 우리와 가까이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전히 종이라는 존재를 우리 곁에 두게 되는 것일지도.종이의 신들이 가진 마음이 조금 더 이해가 되었다.



Epilogue



무심한, 사소한 종잇조각 안에도
'종이의 신'은 있다.
조용히, 하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
쓰고, 찢고, 접어서,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종이는 신통하게도 살아 있다. 

『종이의 신 이야기』 첫 페이지 中


개인적으로는 종이의 신들을 만나러 간 저자도 종이의 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에 감탄할 수 있는 저자의 감각마저도 종이의 신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이 좋아하는 종이를 보여주십시오" 라는 질문을 건넬 수 있었고, 그 질문에 종이의 신들이 소중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며 화답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을지.

종이에 종이만으로 이어지는 종이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감탄한 것은 그들이 종이에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들이 무엇인가에 마음을 두고 간직하고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사소한 종이에도 소중한 생각을 더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미 저자가 종이의 신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를 글의 끝에서 설명했지만 글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의미를 또다시 가지게 된다면, 그런 맥락에서 내가 느낀 종이의 신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당연한 말일 수도 있으나 세상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고 그만큼이나 남들과 달리 자신만의 무엇인가에 시선을 둘 수 있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이 만나면 아무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만남일지라도 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그만의 특별함으로 탄생한다. 그렇게 생겨나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이 책에서는 종이와의 만남으로 종이의 신이 된 이야기가 담긴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도서 종이의 신 이야기는 종이와 사람 사이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만나게 된 이에게 그들이 보고 간직해온 특별함을 전해 줄 수 있는 다리가 되었다. 무엇보다 주인공을 글과 함께 바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특별한 책이기 때문이다. 바로 내 손에 들려있는 책, 그 안에 담긴 여러 느낌의 종이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고, 새롭게 느끼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행동들이 모두 이 특별함이 비로소 나에게 까지 전해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도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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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다이라 가즈에 글
고야바시 기유우 사진

옮긴이
오근영

출판사
책읽는수요일

쪽 수
248쪽

정가
15,000원

출간일
2017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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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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