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혹시 그대인가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공연예술]

가슴 뜨거운 첫사랑의 설렘 같은 공연
글 입력 2018.07.08 20: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5년 전, 뮤지컬 팬들의 심금을 울리며 수많은 ‘번점 덕후’들을 양산했던 뮤지컬이 세종 M씨어터로 돌아왔다. 죽음마저 넘어선 운명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소개한다.



우연일까, 운명일까


일괄편집_35480971_1890936027637803_8829228329824419840_n.jpg


“혹시 그대인가요,
내게 특별한 그런 사람”


비 오는 날 거리를 걷던 인우의 우산 속으로 태희가 들어온다. 버스 정류장까지만 우산을 씌워 달라고 부탁하는 태희에게 인우는 첫눈에 반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았을 운명적인 첫 만남이다. 떨리는 마음에 이름도 묻지 못한 채 태희를 보내버린 이후 시름시름 앓던 인우는 학교에서 우연히 태희와 마주치게 되고, 그녀의 신발 끈에 마법을 걸어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운명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주인공들은 서로 첫눈에 반하고, 우연히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진다. 태희는 죽음 이후에도 인우의 반 학생인 현빈으로 환생하고, 현빈은 태희가 생전에 조각한 라이터를 우연히 습득하며, 다시 인우와 사랑에 빠진다. 이쯤 되면 작품 전체가 우연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사의 많은 부분을 우연에 기대는 작품은 그리 좋은 작품이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 우연은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

김민정 연출가는 이 작품에 대해 ‘불완전한 한 인간이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으로 다가갈 때 느끼는 통증에 대한 드라마’ 라고 정의한 바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하는 것'이라는 인우의 마지막 대사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죽음과 고통을 넘어 운명적이고 완전한 사랑이 완성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의 우연은 운명에 의한 필연이며, 서사 진행에서 관객들이 주인공들이 운명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진부함을 넘어선 뮤지컬만의 힘


하지만 운명이라는 주제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누구나 꿈꿔 봤을 운명적인 첫 만남’ 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뜻도 된다. 게다가 이 작품은 동명의 영화로 먼저 제작되어 꽤 큰 흥행을 했다. 애초에 10년도 넘은 작품의 시나리오에서 관객들이 진부함이나 지루함, 촌스러움 등을 느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공연은 여전히 뮤지컬 팬들의 인생 뮤지컬로 꼽히고, 많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며 찬사를 받고 있다. 자칫 진부하거나 뻔할 수 있는 소재에서, 이토록 크나큰 감동과 찬사를 이끌어 낸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만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
인우, 태희, 현빈의 현생

일괄편집_FB_IMG_1528818212385.jpg


이 공연의 강점 중 하나는 탄탄한 배우진일 것이다. 필자는 인우 역의 강필석 배우, 태희 역의 김지현 배우, 현빈 역의 최우혁 배우의 회차를 관람하였는데, 진짜 인우, 태희, 현빈의 현생을 보는 듯한 생생한 연기와 안정된 보컬을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강필석 배우와 김지현 배우는 그들 앞에 놓인 환희와 혼란, 설렘과 같은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또한 왈츠를 추거나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찰진 호흡과 두 배우 사이의 케미는 관객이 작품의 서사에 자연스럽게 빨려들게 하였다. 이러한 강점이 두 배우가 여전히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인우 장인’, ‘태희 장인’으로 불리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현빈 역의 최우혁 배우는 내면의 자리한 태희의 기억에서 큰 혼란을 느끼며 변화해가는 과정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현빈이 혼란을 느끼고 고민하는 장면이 극 자체에 많이 없었던 것은 아쉽지만, 적은 분량에도 섬세한 연기를 펼쳐 관객들로 하여금 현빈의 혼란과 갈등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력은 극 자체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생함, 현장감과 같은 뮤지컬만의 강점을 극대화하며 관객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
아름다운 그들을 더욱 아름답게

일괄편집_35487971_1890936007637805_306186852732239872_n.jpg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만의 아름다운 무대와 조명은 이들의 이야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인우가 처음 장면에서 칠판에 그은 선은 인우와 태희의 질긴 인연을 상징하며, 극의 진행 내내 무대 위쪽에 비친다. 이 선은 끊어지거나 비틀리며 인우와 태희의 관계 변화를 암시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이들의 관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M씨어터의 거울 같은 무대 바닥은 각양각색의 조명 효과와 어우러져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물론 인우와 태희가 함께 올라간 산을 그저 무대 바닥을 높여 놓은 것으로 표현한 부분은 조금 아쉽지만, 산에 올라간 인우와 태희의 뒷모습과 아름다운 하늘 배경이 조화를 이룬 장면은 관객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며 이 극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
영화도 연극도 아닌 뮤지컬만의 힘, 넘버


#1. 그대인가요




혹시 그대인가요
내게 특별한 그런 사람
아주 오랜 이야기처럼
정해진 한 사람


인우와 태희의 우산 속 첫 만남 장면에서는 ‘그대인가요’ 라는 서정적인 넘버가 흘러나온다. 통통 내리는 비를 연상시키는 전주에 나지막하게 깔리는 인우의 떨리는 독백 같은 가사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장면임에도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2. Waltz



눈부신 계절을 지나
춥고 긴 겨울의 끝
그대는 여전히 나의
곁에 있을까요


왈츠의 멜로디는 태희와 인우가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게 되는 순간, ‘눈부신 계절을 지나’ 그들이 죽음으로 갈라서게 된 순간, 죽음으로 끝난 줄 알았던 사랑이 현빈의 몸으로 다시 시작되는 순간에 흘러나오며 항상 그들의 운명과 함께한다. 아련하고 구슬픈 왈츠의 멜로디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가사는 짧은 인연과 죽음, 환생, 비난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순탄치 않은 운명을 짐작게 한다.


#3. 그런가봐



그런가봐
너를 좋아해서 그런가봐
네가 했던 말이 생각나고
잠이 들기 전에 너를 떠올리는 나


위의 두 넘버가 작품의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넘버라면, ‘그런가봐’는 잠시 쉬어가는 격의 장면에서 나오는 넘버이다. 통통 튀는 상큼한 멜로디와 여학생과 남학생이 나누어져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는 귀여운 율동이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인우가 그런 학생들을 보고 과거를 떠올리는 방식으로 현재에서 과거로의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까지 이루어내고 있다.


#4. 그게 나의 전부란 걸



내게 다음 세상이 주어진대도
난 그때도 너만 찾아다닐 거야
네가 길을 잃어 헤매고 있다면
넌 그냥 거기서 날 기다리면 돼
내가 찾을 테니


‘그게 나의 전부란 걸’ 은 인우와 태희가 서로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부르는 넘버이다. 현악기의 담백한 선율과 두 사람이 이루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은 태희의 죽음 전 이들의 사랑을 절정으로 치닫게 한다. ’다음 세상이 주어진대도‘, ‘내가 찾을 테니’ 와 같은 가사는 이들의 사랑에 더욱 절절하게 공감할 수 있게 만들면서도 2막 내용에 대한 복선의 구실을 함으로써 극의 치밀한 구성을 돋보이게 한다.

또한 이 넘버는 인우가 현빈과 함께 부르는 극의 마지막 넘버로, 끝부분에 가사 대신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인우의 나레이션이 차분하게 깔린다. 1막에서의 ‘그게 나의 전부란 걸’이 절정에 다다른 이들의 사랑을 표현했다면, 2막에서는 죽음조차 넘어선 이들이 완전한 사랑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빛나는 주인공들, 그 이면의 아쉬운 점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불완전한 인간의 완전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며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마음에 큰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서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혜주나 인우의 아내 같은 주변 인물들을 소모품처럼 사용한 점과, 인우가 현빈에 대한 감정에 혼란을 느끼는 과정이 현실성을 잃어버렸다는 점은 아쉽다. 인우의 아내가 인우를 위해 노래하는 장면은 앞뒤 가리지 않고 ‘난 오직 태희만을 사랑하겠어’ 라고 말하는 인우에게 공감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인우만을 바라보는 인우 아내의 솔로 넘버는 쓸데없이 절절하기까지 해서 인우를 이기적이고 비현실적인 인간으로까지 비치게 만든다. 인우가 현빈에게 혼란을 느끼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이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현빈의 여자친구인 혜주에게 질투를 느껴 자기 반 학생을 괴롭히는 선생님 인우는 아무리 봐도 철없고 이기적이다. 이는 인물에게 공감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에 대한 몰입도까지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오점이 될 수 있다. 인우라는 인물 자체에 이입하고 공감하기 힘들다는 점은 이 작품에 대해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고 있는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일괄편집_30848782_1831193120278761_5924732097850779042_o.jpg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는 오래된 극이니만큼, 그만의 단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가슴 뜨거운 첫사랑이, 사랑의 끝에서 느끼는 먹먹함이, 죽음을 넘어선 사랑의 절절함이 이 극에는 있다. 그동안 터무니없는 소리로 치부했던 운명적인 사랑을 믿게 될 것도 같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혹은 믿고 싶은 당신에게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는 가슴 뜨거운 첫사랑의 설렘 같은 공연이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달 컴퍼니



KakaoTalk_20180707_201200384.jpg

 


[황혜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8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