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꽃 튀는 한 판 연극, 한 판의 삶

연극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리뷰
글 입력 2018.07.0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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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_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_스페인 프랑코 장군(서현철)의 목숨을 구한 청년 알란(양소민).jpg
 

과장된 유쾌함, 어딘가 어색한 웃음 포인트, 방대한 양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직접 설명. 솔직히 말해 첫 인상은 다소 실망이었다. 원작을 각색한 2차창작물은 많은 경우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더군다나 이 연극의 원작 소설은 (읽어보진 못했지만, 줄거리로 미루어봤을 때) 정서나 메시지보다는 스토리와 사건들이 중심인 작품이었다. 그런 작품을 연극으로 옮기다 보니 너무 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담아서 정작 의미있는 내용은 없고 흐지부지 끝날까봐 걱정되게 하는 도입부였다. 적당한 속도감과 유머만 즐기다 끝날 오락연극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오락성, 생각보다 대단했다. 우선 연극을 보기 전부터 알고 갔던 캐릭터 저글링은 극이 진행될수록 초반부의 어색함을 벗어나서 관객을 사로잡는 중심 장치가 되었다. 5명의 배우들은 모두 주인공 알런이 되기도, 주변 인물이 되기도 했다.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될 때도 있다. 심지어 커다란 코끼리 인형을 짊어지고 코끼리가 되는가 하면, 발에 줄을 묶어 개를 연기하기도 하고, 동시에 두 인물을 연기하면서 다섯 명으로 열 명이 모인 자리를 표현하는 등 숨 돌릴 틈 없이 캐릭터 전환이 일어난다. 캐릭터 저글링뿐만 아니라 인물들끼리 주고받는 찰진 대사들도 웃음을 자아내고, 극 안과 극 밖을 오가며 배우가 직접 상대 배우의 역할이나 행동을 지시하는 대목도 상당히 참신했다. 볼수록 빠져드는 오락성이었다.


연극_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_공연사진_100세 알란(서현철)과 70대 좀도둑 율리우스(권동호)를 쫓아온 갱단 네버 에버의 행동대원 볼트(양소민).jpg
 

오락성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연극이었지만, 이 극이 단순한 오락연극이 아닌 이유는 바로 내용 때문이다. 물론 내용은 예측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진 건 폭탄 제조 기술밖에 없는 알런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의도치 않게 현대사의 큰 굴곡들에 끼어들게 된다. 그렇게 100년을 살아 백발노인이 된 알런은 100세 생일에 양로원을 탈출해 다시 한 번 불꽃 튀는 모험기를 겪게 된다. 이런 내용에서 얻게 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삶은 끌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 불타오르는 삶을 살자, 뭐 이런 식이다.

이 진부한 메시지가 울림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 전달 방식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불꽃 튀는 삶을 살자, 이렇게만 말하면 전혀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이 극은 그 말을 직접 하는 대신 ‘불꽃 튀는 삶’의 안으로 들어가 그 삶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어찌 보면 내용 과잉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건사고가 너무 많지만, 그러한 과잉이 있었기에 극이 끝난 뒤 알런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며 보다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알런이 살아온 100년의 시간, 그리고 그 100년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새로이 펼쳐지는 모험. 그 자체로 생명력 가득한 이야기이다.


연극_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_공연사진_돈가방을 연 100세 알란(오용), 율리우스(장이주)와 기뻐하는 알란들(이진희, 김도빈, 이형훈).jpg


생각해보면, 꼭 100년이 아니어도 우리 모두의 삶은 저마다의 생명력을 품은 이야기이다. 꼭 알런처럼 세계를 돌아다니며 폭탄을 터뜨릴 필요도 없고,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을 필요도 없고, 갱단의 돈가방을 훔치며 목숨 거는 모험기를 겪을 필요도 없다. 알런의 100년만큼 우리 각자의 삶도 길고, 그의 모험기만큼 우리 각자의 삶도 역동적이다. 알런의 모험은 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펼쳐졌고, 마찬가지로 삶은 언제나 우리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던져 넣는다. 그렇기에 알런의 삶처럼 우리의 삶도 한 편의 정신 없는 연극이요, 역동적인 대 서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연극_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_공연사진_창문을 넘으려는 100세 알란(오용)과 각자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알란들(장이주, 이진희, 김도빈, 이형훈).jpg
 

유쾌하고 정신없는 이야기로 머리를 비우고 싶은 사람, 잘 짜여진 오락성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극이다. 그러나 극을 본 뒤에는 개그나 오락성보다도, 튀어오르는 삶의 불꽃을 얻어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 연극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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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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