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니키 드 생팔 展: 마즈다 컬렉션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위적인 그녀의 말랑한 속내
글 입력 2018.07.1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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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서 미술사에 이름을 남기려면 두 가지 방법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개념의 주창자가 되는 것이고, 둘째는 불멸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은 ‘슈팅페인팅(1961)’이라는 표현방식을 제안했고, 스트라빈스키 광장의 <분수(1983)>를 남겼기 때문에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몇 안되는 예술가로 기억될 것이다. 그녀의 슈팅페인팅은 한 예술가가 내면의 고통을 극복하는 가장 극적인 방식을 보여준 사례이다. 또한 그것의 제작과정에 관람객의 참여를 독려할 때, 단순한 개인적 카타르시스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몰입과 집단치유의 지평에까지 도달하는 것도 보여주었다. 한편, 스트라빈스키 광장의 <분수>는 유구한 제국주의의 수도인 파리에서 아방가르드 조각의 승리를 상징하는 첫번째 분수이며, 개성적인 두 예술가의 사랑과 교감이 빚어내는 독특한 화학작용을 보여주는 기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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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니키 드 생팔 展: 마즈다 컬렉션(18.06.30~09.25.)>을 찾는 관람객들이 상기한 니키 드 생팔의 두 가지 업적 중 첫번째의 것, 그러니까 ‘전위적인 치유의 예술’을 기대한다면 실망을 안고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회화의 개념 측면에서 니키가 남긴 가장 큰 업적인 사격회화는 단 세 점 만 출품되었고, 제작과정 영상물 한 점이 추가되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준다. 눈 앞에서 마주하는 슈팅페인팅의 산물은 생각보다 훨씬 두터우며, 페인팅(회화)이라기 보다는 부조에 가깝다. 전쟁, 폭력, 종교, 출산이 뒤섞인 오브제들은 두터운 안료에 뒤덮혀 하나의 형체로 융합되어가고 그 과정에서 칙칙한 페인트 탄환의 무차별 공격을 받아 녹아내리는 것 같다. 이 작품들은 완성된 형태 보다는 회화적 과정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일종의 메타회화로서 기능하며, 명징한 의도와 상징을 시각적 충격으로 덮어버리면서 지성보다는 감각에 직접적으로 소구한다.

나머지 대부분의 출품작은 스트라빈스키 광장의 <분수>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총천연색 조형물과 평면 일러스트 들이다. 의외로 <나나>를 비롯한 탈정형의 조각작품들보다는 개인적인 편지와 일기 들이 더 눈길을 끈다. 장 팅겔리(Jean Tiguely)와 요코 마즈다 시즈에(Yoko)에게 보낸 편지들에서는 유아적인 순수한 조형요소와 자유분방한 타이포그래피가 어우러져 작가의 진솔한 감정들을 드러내주며,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넘어 독립된 회화로서의 가치를 획득한다. 각각의 디자인 요소들은 작가 고유의 내면적 상징체계와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마치 스마트폰의 아이콘처럼 대단히 직관적이다. 이것이 그녀의 꾸밈없는 문장들과 결부되면서, 일상 속의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는 한 아내, 친구, 어머니로서의 다층적인 인격체에 보다 긴밀하게 다가가도록 돕는다.

이 개인적인 흔적들은 ‘슈팅페인팅’이라는 전위적 이름에 가려진 한 예술가의 본질을 구원하는데 일조할 것이다. 한 남자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자녀와의 교감에 기쁨을 느끼는 그녀의 모습은 ‘여성’이라는 프레임에 저항하면서도 동시에 여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순수하게 갈망했던 복잡한 내면을 보여준다. ‘여성이라서’ 고통받았지만, 여성이라는 사실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그것을 인정하되 ‘여성이라서’ 행복한 이유들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가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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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만난 니키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내가 여자로 태어났는데, 뭐, 어쩌라고 XX들아. 우린 너네들보다 훨씬 우월한 종족이다. 우리의 풍요로운 육체가 그것을 증명한다. 내가 받은 고통, 그 이상으로 나는 더 행복하게 살다 갈거다. 그때쯤 너희들은 모두 흙이 되어 사라지겠지만, 나의 작품들은 스트라빈스키 광장과 타로 조각공원에 남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남자들이 미술사를 만든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인 것 같다. 첫째는 그들이 만든 위대한 작품을 통해, 둘째는 그들이 위대한 여성미술가들에게 준 상처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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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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