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단 타, 일어난 일은 어쩔 수가 없어.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글 입력 2018.07.1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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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일단 타, 일어난 일은 어쩔 수가 없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날 죽이려면 빨리 죽여야 할 거야.
네가 오기 전에 내가 죽을 지도 몰라.
난 100세거든."

이번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는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입니다.

본의 아니게
사건들의 소용돌이에 머물게 되지만,
그 안에서 가장 낙천적으로 그 시간을 보내는 
알란 칼손의 일생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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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내 백살이었나.

본 연극의 주인공은 100번째 생일파티를 앞두고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알란입니다. 100세 노인이 주인공인 영화, 드라마, 연극, 공연들은 거의 없지 않나 싶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 노인이 등장한다면, 그 노인은 주인공의 조력자거나, 조부모거나, 의뢰인이거나, 스승이거나, 또 악당의 스승이거나, 가장 주요한 인물의 주위에 있다 해도 그 사건을 통틀어 끌어가는 인물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100세라는 나이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을 정리하는 나이라고 정의내렸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삶은 계속 무언가를 변화시킬 기회들의 연속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알란 칼손의 여행은 여러 사건의 시작이 될 수 있고, 그가 이번 연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알란은 폭탄 전문가로, 역사에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역사 속 인물들을 각국을 돌아다니며 만나게 됩니다. 그 속에서 그는 스탈린을 만나고, 김일성을 만나기도 하고, 아이슈타인의 숨겨진 동생을 만나기도 하고, 미국의 핵폭탄 실험을 돕기도 합니다. 그 길고 긴 알란의 일생을 듣다보면 저 100세 노인이? 정말? 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연극 말미에 찾아온 검사가 알란의 이야기를 듣고(굉장히 요약해서 짧게) '저 100세 노인이?'라고 반문합니다. 전혀 믿을 수가 없다는 태도로 말이죠. 알란은 답합니다.

"내가 내내 백살이었나"

검사는 지금 현재 보고 있는 현재 모습에만 치중해 과거의 시간들은 잊어버렸습니다. 아니, 미처 생각하지 못합니다. 지금 노인인 알란이지만 과거 화려한 과거를 보냈고, 노인이 과연 할 수 있겠어? 라고 생각하는 일들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이었죠. 100세가 된 지금도 과거와 같이 낙천적인 태도로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도 다른 이들을 진정시키고 해결방법을 찾아갑니다. 우리가 노인이라고 정의 내리는 나이인 그의 하루하루는 그의 남은 생 속에서 가장 젋은 순간이었고, 또 열심히 활동하는 시기입니다. 그렇기에 알란은 창문 밖으로 도망치는 여행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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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함께!

100세의 알란 주위에 있는 모두는 혼자입니다. 홀로 자기 자신은 항상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며 슬퍼하는 율리우스, 졸업할 용기가 없이 생각만 많은 베니, 사람들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다고 느끼는 구닐라, 항상 자기를 죽이려던 사람들만이 주위에 있었던 보스까지.   100세 알란의 여행길에는 혼자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도망치게 됩니다. 알란의 인생이야기를 다시 해보면 알란은 어릴 적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정신병원에 갔으며 많은 국가들을 다녔고, 그 이후로도 어떠한 역할, 장치로만 사용되기도 했고, 진정한 친구와 같은 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평생 자신의 곁에 있을 사람이 없는 외로운 인물이었죠. 스스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어도, 연극 말미에 등장한 '몰로토프'와의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알란이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 원인이 된 것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반려묘의 죽음, 그리고 그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알란이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아왔고, 그 주위에 누군가의 온기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또 그에 대한 상실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알란은 이번 여행을 통해서 외로운 사람들과 만나, 같이 함께 떠날 수 있음에 표현하지 않았어도 기뻤을 것입니다. 외로운 인물들 모두, 알란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뻐했죠. 몰로토프를 부를 때, 사용하던 성냥갑 흔들면 알란은 자기도 모르게 해맑게 웃고 있었으니까요.

행복의 가장 필수조건 중 하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장 손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은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알란의 대사 중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누울 수 있는 침대, 술 한 잔, 식사 한 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만 있다면 괜찮아”. 알란은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도망침 속에서도 알란은 괜찮았습니다. 삶의 끝자락 같이 도망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마주했으니까요. 이 도망침 끝, 알란 곁에 수많은 인연들이 같이 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몰로토프와도 같이 말이죠.


연극_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_공연사진_100세 알란(서현철)과 70대 좀도둑 율리우스(권동호)를 쫓아온 갱단 네버 에버의 행동대원 볼트(양소민).jpg
 


배우들의 열연, 1인 다역의 재미

원작이 워낙 장편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다보니, 그 모든 인물들을 무대 위로 올렸다면 무대가 터져버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5명의 배우들이 이름표를 붙였다 뗐다 하며 여러 인물들을 소화합니다. 성별은 물론이고 나이대도 상관없습니다. 사람이 아니기도 하죠. 5명의 배우 모두 알란이자 알란의 주위 인물들이 됩니다. 그렇다보니 모든 배우들의 대사량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각자 맡은 인물의 특성에 따라 목소리, 발성, 행동을 변화해야 했기 때문에 배우분들의 열연이 돋보였습니다.

연극 초반, 중반, 후반까지 배우분들은 작가와 연출이 너무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확실히 정말 배우분들이 할 일이 엄청 많습니다. 시간의 흐름도 보여주고, 국가가 달라지면 국가별 춤도 춰야 하고, 저글링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노래도 해야 합니다. 배우분들의 힘듦이 관객석까지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재미가 소극장 공연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극장 공연만의 재치고, 유머입니다. 노련한 배우분들이 극을 전체적으로 이끌어가며 소소한 재미가 가득했습니다.

사건이 많고, 인물이 많다보니, 무대에서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구성과 연출, 각색까지 장편소설을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들이 보였습니다. 나라와 연도는 어떻게 표시할 지, 이름표는 어떻게 교체할지, 소품들은, 또 창문은 어떻게 표현할지, 달라지는 공간들은 어떻게, 폭탄이 터지는 장면은 어떻게 할지, 수많은 고민들이 엿보였습니다. 모든 작품들이 그러한 고민들 속에서 탄생하겠지만, 이번 연극은 유독 그러한 고민들이 눈에 보이는 연극이었습니다. 

*

150분 동안 달리며,
웃고, 울고, 또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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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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