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이 ( )을 사랑하다,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공연예술]

남녀 로맨스의 상징 로미오와 줄리엣을 여성 퀴어극으로 재해석하다
글 입력 2018.07.1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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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의 지난 공연(18.03.21~18.04.01 공연) 관람 후 남기는 후기입니다. 현재 공연 중인 내용과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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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산울림 소극장에서 초연했던 극단 LAS의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이 돌아왔다. 같은 극장에서 7월 4일부터 7월 15일까지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를 다룬 작품들과 비교적 많은 남성 퀴어극에 비해 공연계에 여성 퀴어극은 많지 않다. 당장 떠오르는 작품을 말해보라면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 정도.

공연계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영화에서도 흔치 않은 소재인 여성 퀴어극이 관객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은 연일 매진 행렬이다. 덕분에 예매에 실패한 아쉬움을 달래며, 뒤늦은 초연 리뷰를 적어보려 한다.



줄리엣,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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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고전 중의 고전으로 수없이 각색되어 왔다. 그러나 대부분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극단 LAS는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에서 여성들 간의 사랑을 다룸으로써 당연시됐던 남녀 로맨스 서사의 틀을 깨부순다.

익히 알려졌듯이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는 원수지간인 몬태규가의 로미오와 캐플릿가의 줄리엣이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 각색작에서 두 집안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집안으로, 몬태규가의 줄리엣과 캐플릿가의 줄리엣, 서로 이름이 같은 두 아가씨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로미오 몬태규는 줄리엣 몬태규의 남동생으로 등장해 그들을 돕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두 사람을 가로막는 장벽은 집안이나 머큐쇼와 티볼트의 죽음 대신에 그들이 같은 성별이라는 사실 하나에 집중된다. 원작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쳐내고 두 사람의 로맨스와 장애물 극복을 향한 강한 의지와 노력에 집중함으로써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비극적 결말이 강조된다.

대략적인 스토리는 원작과 동일하지만, 티볼트를 살해한 죄로 베로나에서 추방당했던 로미오는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 사회에서 추방당하게 되는 줄리엣이 되었다. 또한 이들의 혼인을 서약해주는 신부님은 떠돌던 이방인 스님으로 바꾸었다. 개인적으로 현대에는 가문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졌기에 원수 집안의 두 사람이 집안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는 원작이 크게 와닿지 않았었는데, 이 작품의 장애물인 동성애는 아직도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배척받고 있기에 그들의 비극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두 명의 줄리엣은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속삭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극렬한 기쁨에 휩싸여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으며, 함께 도망쳐 자신들만의 아늑한 집에서 살아가자고 약속하기도 한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강조될수록 '고작'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저 아름다운 연인을 갈라놓아도 되는가, 마음이 아려왔다.



인상적인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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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두 연인의 죽음 이후에 나오는 마지막 장면, 에필로그였다. 두 사람이 원작에서처럼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뒤, 끝난 줄 알았던 공연의 마지막에 모든 배우들이 다시 등장한다. 두 줄리엣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가면무도회를 떠오르게 하는 파티장, 익명의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두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소문. 몬태규가와 채플릿가의 두 아가씨가 서로 사랑을 하다가 집안의 반대로 인해 죽었다, 는 사실은 동성애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갈수록 지워진다.

"몬태규가에 로미오라는 청년이 있던데,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했던 거 아니야?"

"그래, 그편이 말이 되지"

열렬히 사랑했던 두 연인은 사실을 바로잡으려 목소리를 내지만, 그들의 사랑이 사람들에 의해 지워졌듯 그들의 목소리 역시 사람들의 귀에 닿기도 전에 지워지고 만다. 에필로그를 보면서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가능성 하나를 제시받은 기분이었다. 아, 그럴 수도 있었겠다.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며 변형되기 마련이니, 어쩌면 저렇게 존재가 지워진 사랑도 있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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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학공이 떠오르는 투박하고 단순한 무대가 그랬고, 줄리엣에게 퍼붓는 티볼트와 아버지의 동성애에 대한 온갖 비난은 은유가 넘치는 원작 각색 부분과는 달리 상당히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그 메시지가 아직 필요한 세상이기에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이들이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함께 미래를 꿈꾸는 그들의 눈이 얼마나 반짝이는지를, 서로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꼈으면 좋겠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데에 성별이 장벽이 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   )이 (   )을 사랑하는 일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 빈칸에 어떤 성별이 들어가든지.


사진자료 출처 : 창작극단 LAS




[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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