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에게 결혼이란? [사람]

꿈과 현실 그 사이 어디쯤
글 입력 2018.07.1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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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특이하게도 어릴 적부터 너는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는 말을 질리도록 들으며 자랐다. 딸만 다섯인 외가에 가면 엄마와 이모들이 결혼하고 겪은 온갖 풍파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젊었을 때 자신들이 얼마나 예뻤는지부터 시작해서 상경하고 겪은 일들, 그때 사귀었던 애인들, 그리고 결혼, 이혼, 재혼 이야기까지 웬만한 드라마보다 훨씬 재밌었다. 이모들과 밤새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고 나면 늘 결론은 혼자 살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내 주변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이 거의 전무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온 나는 좀처럼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늘 결혼에 관해 현실적이고 비판적이었다.

이런 나에게 공교롭게도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라는 전시회에 갈 기회가 생겼다. 서울미술관에서 9월 16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회는 웨딩드레스의 의미를 고찰하여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다채롭게 풀어낸 전시회이다. 나는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터라 이 전시회가 아무 감흥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전시에는 많은 이야기가 녹여져 있었고, 결혼이 여성들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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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관하여


전시회의 1부는 다양한 매체에서 차용된 가상의 12명의 신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익숙한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사를 그들이 입었을 웨딩드레스와 함께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는 결혼에 대한 설렘과 로망도 있었지만 결혼 후에 겪은 억압과 힘든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렇듯 신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체적인 시선으로 결혼을 바라볼 수 있었다.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많은 경우 연인들의 사랑이 결혼이라는 결실로 끝이 난다. 사실 진짜로 극적인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일 텐데, 프러포즈 한 번으로 그간 겪어온 갈등을 일단락한다. 그러나 전시회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주인공의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 적극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은 보는 이에 따라 조금씩 다를 거라 생각한다. 그들의 삶을 자유롭게 상상하며 전시회를 즐기다 보니 내가 결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서서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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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제일 남는 건 드라마 ‘연애의 발견’의 여름의 대사였다. ‘이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느냐보다 이 사랑을 지키고 싶은 의지가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이 말처럼 결혼은 좋아하고 설레는 감정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이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다는 두 사람의 엄청난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한 게 결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늘 나에게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딱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이제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사랑 그리고 책임감


그렇다면 결혼엔 왜 감정만이 아닌 의지가 중요한 걸까? 왜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는 걸까? 그건 결혼에 명백한 책임감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혼인 관계에서 생기는 법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운명공동체로서 긴 인생을 함께 꾸려나가야 할 책임이 부여된다. 헤겔은 결혼을 ‘사랑과 신뢰를 토대로 생활 전체를 공동으로 영위하는 관계’ 그리고 동거나 내연과 달리 ‘법적인 규정에 따른 관계’라고 보았다. 즉, 사랑을 토대로 맺어진 법적이고도 인륜적인 관계인 것이다. 정확히 감은 잘 오지 않지만, 헤겔의 해석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결혼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저 부부로 살아가는 건 사랑과 책임감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 않겠냐고 짐작할 뿐이다. 그 문을 넘어가 보지 않은 사람은 부부가 어떤 건지 절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낯선 세계로 통하는 문 앞에선 누구나 설렘과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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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꿈, 웨딩드레스


그 문으로 들어가기 전 꼭 입는 옷이 있다. 바로 웨딩드레스다. 그래서 모든 여성들에게 웨딩드레스는 특별하고 욕망을 상징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입지 않는 옷이기도 하다. 이러한 웨딩드레스의 특성이 망각해버린 ‘꿈’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전시는 말한다. 고심 끝에 선택한 그것은 한순간 아름답게 빛나지만, 서서히 잊히고 빛을 바란다. 왠지 이 대목에서 쓸쓸한 노래 가사가 하나 떠올랐다.


내가 해야 할 일,
벌어야 할 돈 말고도 뭐가 있었는데

내가 가야 할 길,
나에게도 꿈같은 게 뭐가 있었는데

(에픽하이 '빈차' 中)


누구나 화려하고 멋있는 꿈을 한번 씩은 꿔봤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과 타협하고 돈 버는데 급급하게 살아가다보면 그 꿈은 어느새 기억조차 안 난다. 전시되어 있는 아름다운 웨딩드레스가 왠지 모르게 슬프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누가 이 드레스를 입었을까.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이 자신이 입었었던 웨딩드레스를 다시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참 많은 생각이 스쳤다. 故 앙드레 김 선생님의 말씀처럼 결혼은 영원하고 성스러운 맺음임에 틀림없지만 웨딩드레스처럼 아름다웠던 꿈들은 그 뒤에 가려져 잊히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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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결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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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많은 드레스 중 유일하게 쓰러져 있는 웨딩드레스가 있었다. 그 드레스의 주인은 결혼이라는 감옥 안에서 폭력을 감내하며 살아온 유진(36)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유진 역시 불안정한 가정 안에서 고통받으며 살아왔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일들이 버거워 결혼으로부터 부단히 멀어지고 싶어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곰곰이 떠올려보면 나는 항상 '결혼 안 한다'가 디폴트값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유진이 느끼는 감정이 뭔지 알 것 같다면 대답이 될까? 나는 평생을 유진처럼 엄마의 삶이 나에게 똑같이 반복될 것 같은 두려움과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똘똘 뭉쳐 살았다. 그 덕분에 결혼에 대한 낭만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나에게 결혼은 아직 억압으로밖엔 안 느껴진다. 가정환경의 영향도 있지만, 현재 한국 사회가 아내에게, 며느리에게, 엄마에게 당위로 강요하고 있는 것들이 굉장히 억압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정을 꾸리는 게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말은 적어도 나에겐 근거 없이 느껴졌다. 내 주변에 결혼한 여성들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릴 때부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갈증이 늘 있었다. 단지 그러한 욕구가 내 이성을 이기지 못할 뿐이다. 정말 지키고 싶은 사랑이 생기고 사회의 인식이 많이 변화한다면 내 생각이 바뀔 수 있겠지만, 아직까진 나에게 결혼은 버거운 존재다.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 전시회는 결혼의 성스럽고 아름다운 면만 보여주지도, 슬프고 비관적인 면만 비추지도 않는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으로 결혼을, 나아가 인생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결국 나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인지, 내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싶은지 고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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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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