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위대하다 [전시]

샤갈 러브 앤 라이프 전에서 본 그의 사랑 가득한 삶
글 입력 2018.07.1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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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친구의 집에 갔다. 그 곳에는 그의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녀와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낯선 그녀의 눈동자에서 내 영혼을 보았다. 그녀를 본 순간부터 나는 그녀가 나의 동반자가 될 것임을 예감했다.

샤갈은 벨라를 보자마자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첫 눈에 사랑에 빠질 수 있음을 믿는가? 지극히 현실적이거나 낯선 이에게 경계심이 심한 타입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없을 것이라 답할 것이다. 사실 그것은 사랑보다는 외적인 이상형과의 일치에서 오는 호감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때론 비현실적인 것이기에 샤갈이 벨라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그 감정은 정말 사랑 이었을 지도 모른다. 샤갈은 벨라를 친구 테아의 집에서 마주친 순간 그녀를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의 자서전 [나의 삶]에서 처음으로 벨라를 만난 심정을 이렇게 기록했다.

“비록 그녀가 나를 처음 보는 것이지만, 마치 내 안에 그녀가 존재하면서 나를 지켜 보는 것처럼, 나는 그녀가 어린시절 뿐 만 아니라 나의 현재와 미래까지도 언제나 알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눈, 그녀의 검은 눈은 얼마나 크고 둥근 지! 그것은 바로 나의 눈, 나의 영혼이었다. 나는 벨라야 말로 내 운명의 여인이며 아내가 될 사람임을 알았다.”
  
그리고 운명처럼 벨라도 샤갈에게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벨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샤갈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샤갈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어요. 곱슬곱슬하게 자란 머리카락이 머리 위에 수북했고, 눈썹위로 뭉쳐져서 눈 위까지 드리워져 있었어요…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푸른 눈. 참 이상한 눈이었죠. 다른 사람들과 달리 길쭉한 아몬드 모양이었어요. 샤갈의 두 눈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마치 작은 보트처럼 제각각 항해하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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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둘 모두에게 한순간에 일어나다니, 샤갈이 평생에 걸쳐 사랑의 위대함을 신봉한 것도 납득이 된다. 더군다나 재미있게도 만약 샤갈이 지금 시대에 태어났으면 벨라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됐어도 사회적 통념상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둘이 만난 것은 1909년, 샤갈이 23살이고 벨라가 15살일 때였다. (한국식 나이 계산법으로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보석상을 운영한 부유한 집안의 막내딸이자 모스크바 게리에르 여자 대학교에 다니던 수재였던 벨라에게 가난한 유대인 부부의 아홉 자녀 중 맏이였던 샤갈은 탐탁지 않은 상대였다. 아무리 자신의 딸이 그를 좋아한다 한들, 가난한데다가 그보다 나이가 9살이나 많은 남자에게 어린 딸을 시집 보내고 싶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고로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말라 했지만 벨라는 고향에서 오매불망 샤갈을 기다린다. 그동안 샤갈은 파리에서 모딜리아니와 같은 화가들이나 상드라르와 같은 시인들과 교류하며 그만의 서정적 화풍을 발전시켰고 착실히 이름을 알렸다. 마침내 5년 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벨라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결혼에 성공한다. 반대하는 부모님들께 허락을 받으려면 적어도 5년은 노력해야 한다는 살아있는 증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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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그의 대표작 [생일]은 샤갈이 벨라와 결혼식을 치르기 열흘 전인 자신의 생일날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분명 사랑하는 여인이 결혼식 직전 자신의 생일을 위해 꽃다발을 주며 축하해주었을 때의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그 때의 자기 감정을 기록해 영원히 남기고자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주체하지 못할 만큼 행복할 때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일기로 쓰듯이 말이다. 그림 속 그는 뛰어오르다 못해 날아다닌다. 그는 자신의 기쁨을 중력의 법칙조차 뛰어넘어 공중에 부유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샤갈의 그림은 환상적이고 역동적이다. 사실 그대로를 그리기에는 감정까지 담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마음과 같이 몸도 두둥실 떠올라버린 것이다. 비단 [생일]뿐 만이 아니다. 벨라가 등장한 사걀의 그림 대부분이 그렇다. 그의 그림은 사랑 그 자체처럼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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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은 인류의 오랜 숙원이다. 철학에서 가장 인기있는 주제이지만 영원히 그 답을 정의하지 못할 난제이기도 하다. 샤갈만 해도 벨라와의 사랑이 그리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30여년을 사랑했지만 그녀는 55세에 병에 걸려 생을 마감했다. 샤갈은 9개월 동안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그녀만을 그리워했다. 그걸 안타깝게 여긴 딸은 무려 아빠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줬다. 나도 찾아보면서 이 부분에서 정말 당황했다. 아빠에게 새엄마를 소개해줄 배짱이 있는 딸의 쿨함이나 과거 세기의 사랑을 했지만 새로운 여자와 아들까지 낳은 아빠나 둘 다 상당히 대단하다. 아무튼 샤갈은 이 버지니아라는 여자와 결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이 그에게는 안정을 주었는지 그는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5년 후 발렌티나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 때 샤갈은 과거 강렬했던 색채에서 벗어나 보다 부드럽고 풍부한 색채를 사용했는데 이를 보며 나는 그의 그림이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겪은 그의 삶 자체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고작 1년 남짓 사귄 남자친구와의 이별 과정 속에서도 인생을 다 배운 것만 같다고 생각했는데 30여년간 강렬한 사랑을 했던 아내를 갑자기 잃은 샤갈의 마음은 어땠을 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사랑이 찾아오는 것만큼 이별은 순간에 불과하다. 적어도 체감만큼은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과의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했던 사람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영원히 남지 않는다. 영원한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사실 뿐이라는 유명한 말도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이자 사랑 그 자체는 남아 나의 남은 삶을 구성하게 된다. 과거의 그와 나누었던 충만한 사랑은 나의 일부가 되어 앞으로 내가 할 사랑의 양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받음으로서 더 큰 사랑을 주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 그것은 전과 같은 사랑은 아닐지라도, 그만의 또 다른 가치가 있는 사랑일 것이다.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다른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자, 샤갈이 “인생과 예술의 의미를 주는 유일한 색체는 바로 사랑이라는 색이다”라 말한 이유이다.

*

샤갈의 그림은 샤갈의 삶을 담았고, 그의 삶의 굴곡은 사랑을 통해 형성되었다. 샤갈 러브 앤 라이프 전에서 우리는 그의 사랑을 내밀하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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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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