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망각은 축복이다. [기타]

글 입력 2018.07.13 12:0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내용 프린트
  • 글 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뒤를 돌아보지 말라.’ 라는 하데스의 명령을 망각하고 지상 언저리에서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는 결국 아내 에우뤼디케를 구해내지 못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지 못하고 결국 파멸에 이른 오르페우스의 ‘망각’에 대하여 필자는 조금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에우리디케 오르페우스.jpg
Gustave Moreau
저승으로 다시 끌려가는 에우뤼디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도 ‘망각’은 수많은 크고 작은 고통을 안겨준다. 당장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과제를 잊어 낭패를 보고, 억지로 기억하려 애쓴 지식들이 시험지 앞에서는 철저히 망각되어 좌절감에 빠지곤 한다. 지식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되고 망각은 능력의 퇴화쯤으로 여겨진다. 어쩐지 무엇이든 간에 많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안전장치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고통을 지우는 망각


하지만 신화에서, 특히 죽음에 있어서 ‘망각’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이 운명을 다하여 지하세계로 내려가려면 5개의 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망각의 ‘레테’강이다.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레테의 강물을 한 모금씩 마시면서 인생에서 겪은 모든 기억과 고통을 잊고 지하세계로 들어간다. 우리나라의 내세관에서도 전생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이야기들이 많다. 인간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망각은, 죽음 앞의 인간에게는 축복이자 행운이다.


1411.jpg
J. Benlliure Gil, Caronte

53112874b6becda5fc62fccde7d45beb_9zwCoxJIOyppD6XB64jG.jpg
드라마 '도깨비' 속 망각의 차


많은 것을 기억해야 하는 압박이 강한 현대사회에서 ‘망각’은 분명 우리에게 축복이다. 망각을 통해 인생의 고민을 지운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상상 이상의 위안을 준다. 사소하게는 누군가에게 말실수를 하거나 창피한 행동을 했을 때,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상대방도 그 사실을 잊게 되는 ‘망각’의 힘이다.

큰 충격을 받거나 특정한 사건을 겪었을 때도 우리 뇌는 그것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각종 정신적 방어기제를 만들어 낸다. 또, 망각은 단순히 위안의 차원을 넘어서 ‘효율성’을 증대시키기도 한다. 특정한 일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들을 잊는 것이 필요하다. 질적으로 수준 높은 기억은 그 반대로 철저한 망각 속에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망각은 권력이다


망각은 기억 못지않은 권력을 갖는다.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른 싸움이고 기록된 역사만이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특정 사실들을 사람들에게 기억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실들을 철저히 망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망각하고, 또 타인을 망각시킬 수 있는 그 자체는 어마어마한 권력이다. 망각의 권력을 갖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뺏을 수 있다.

문제는 이렇듯 기억만큼 중요한 ‘망각’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억하려고 애쓰면서 살지만 무엇을 잊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수없이 작은 일에도 의미부여하며 반복적이고 쓸데없는 걱정 속에 갇혀 산다.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자꾸 기억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한다. ‘망각’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독제라는 사실을 명심 해야한다. 잘 기억하는 것보다 잘 ‘망각’하는 것이 우리에겐 더 필요하다.

*

다시 오르페우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오르페우스의 불행은 과연 망각 때문이었을까? 오르페우스는 문학과 음악의 힘으로 대변되는 신이다. 그가 에우뤼디케와 무사히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해도 그는 분명 또 다른 권태로움에 빠졌을 것이다. 그는 ‘망각’을 이용해 자신을 불행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음악의 힘을 과시하고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으로 남을 수 있었다.

오르페우스를 진정 불행으로 몰아넣은 것은 망각이 아닌 기억이다. 애초에 죽음을 맞은 아내를 ‘망각’해 버렸다면 그에게 이러한 역경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망각할 수 있는 행복을 거부한 그는 기억의 불행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참고문헌
임희택, 『망각의 즐거움』, 한빛비즈, 2013.
하랄트 바인리히(백설자 역), 『망각의 강 레테』, 문학동네, 2004.



아트인사이트.jpg
 
 


[조연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8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