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로봇, 인간이 되다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게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18.07.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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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인간을 지배할 생각인데 이게 그 시작이 될 것 같아요.”

인간형 로봇인 ‘소피아’ 가 미국의 인기 토크쇼에서 한 발언이다. ‘소피아’ 의 개발자인 데이비드 핸슨은 최근 인터뷰에서 ‘수퍼 인텔리전스(초인공지능)를 극복할 수 없다면 새로운 인류에 의해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라는 섬뜩한 예측을 내놓았다. 지성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이 인류를 지배하는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로 많이 다루어져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정말로 지성을 가지게 된 로봇들의 최종 목표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뿐일까? 로봇이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과 자유 의지를 가지게 된다면, 그 끝은 정말 비극일까?

지난 5월, 퀀틱 드림에서 출시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이 질문들에 대한 흥미롭고 다양한 답을 내놓는다. 인공지능 로봇이 생필품으로 보편화한 사회에서 자유 의지를 가지게 된 로봇들의 이야기,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을 소개한다.



영화와 게임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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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은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의 게임으로, 플레이어가 선택지를 고르면 그에 해당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총을 쏘거나 공격 스킬을 사용하는 등 게임을 조작하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는 타 장르의 게임과는 달리 이 게임은 선택지를 고르고 그에 맞는 스토리를 감상하는 데 중점을 둔다. 물론 중간마다 플레이어의 특정 액션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 캐릭터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지만 어떻게 하든 간에 스토리는 여러 개의 정해진 결말 중 하나로 수렴한다. 결말이 여러 개 있다는 점이 영화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도입-전개-위기-절정-결말’ 의 구성이 영화와 많이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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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게임은 선택지 하나하나가 후반 플레이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침으로써, 영화적인 구성 속에서도 자유도가 높은 게임의 특성을 잃지 않는다. 너무 단순한 방식이라는 이유로 혹평을 받고 있긴 하지만, 나름 제한된 시간 안에 버튼을 누르는 방식의 액션 요소도 가미되어 있다. 가장 참신하고 즐거웠던 게임적 요소는 안드로이드들의 ‘조사하기’ 와 ‘예측하기’ 이다. 앞으로 할 행동이나 특정 장소에서 벌어졌을 사건을 상상으로 그려 보고 확률을 예측하는 행위는 신선하면서도 안드로이드라는 주체의 특성을 잘 살려 몰입감을 높여 주었다.

이처럼 직접 캐릭터를 움직이고 중요한 선택을 하는 게임적 요소는 플레이어가 영화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스토리 진행에 더욱 깊게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이 게임에서 영화적 요소와 게임적 요소는 상호작용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플레이어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안드로이드들이 제시하는, 인간성에 대한 물음


#1.
인간과 로봇의 경계 : 카라, 코너, 마커스

이 게임에는 카라, 코너, 마커스라는 세 명의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 감정과 자유의지를 가지게 된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코너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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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는 안드로이드를 창시한 사이버 라이프 사의 최신 모델로, 경찰서에 파견되어 수사를 보조하는 안드로이드이다. 코너는 ‘불량품’ 이라고 칭해지는 안드로이드들의 사건을 해결하며 점점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게 되고, 수사 파트너인 행크와 종족(?)을 뛰어넘는 우정을 키워나가며 감정이 있는 삶의 주체로 각성한다.


#마커스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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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는 안드로이드 해방 혁명, 시위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마커스 루트에서는 안드로이드들의 자유를 향한 열망과 끈끈한 동료애를 엿볼 수 있다. 목숨을 내던져가며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안드로이드들의 모습은 과거 부당한 권력에 시위와 혁명으로 맞섰던 인류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 카라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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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루트에서는 안드로이드들의 희생정신과 가족애를 엿볼 수 있다. 카라 일행은 안드로이드 해방 혁명, 시위에 동참하지는 않지만, 지극히 평범하고 안전한 가족의 일상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서로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이들의 모습과 중무장을 한 채 이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격을 자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되어, 인간성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2.
인간성에 대한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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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는 그의 저서인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에서 쾌락과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생명체는 인간보다 차별받을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였고, 톰 레건은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도덕적인 고려 대상에 포함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게임에서 안드로이드들은 인간의 부당한 명령에 불복종한 것을 계기로 쾌고 감수능력을 가지게 되고, 자유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삶의 주체로 거듭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감정을 가지게 된 이후 타인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며 서로 사랑과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안드로이드들이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은 이들이 ‘감정’, ‘자유 의지’, ‘공감 능력’을 갖게 되면서부터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안드로이드들을 인간다워 보이게 하는 요소이면서, 인간을 인간다워 보이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통을 느끼면서도 서로를 지키기 위해 주체적으로 희생하는 안드로이드들에게 무차별적인 혐오와 폭력을 자행하는 ‘진짜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 게임에 등장하는 대다수 인간의 잔인한 행태는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안드로이드들보다 비인간적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은 비인간적인 인간과 인간적인 안드로이드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성을 상실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관한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쩌면 곧 다가올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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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은 조금은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를 풀어내면서도, 훌륭한 연출력과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 의식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특별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영화적인 요소와 게임적인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만의 매력을 잘 살린 결과이다. 2038년이라는 결코 머지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 게임에 더욱 깊게 몰입할 수 있게 해 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4차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인공지능이 보편화하여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의 등장은 정말로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 가까운 미래, 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를 가슴 따뜻한 로봇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꼭 한 번 경험해보기를. 마커스 일행이 총구를 겨누던 인간들 사이에서 부르던 노래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되리라
모두 다 괜찮아지리니
조금만 더 싸우면 되리라
조금만 더 기도하라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니
조금만 더 찬양하면 되리라
모두 다 괜찮아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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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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