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완벽한 인간을 향하여,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7.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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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 첫 이미지.jpg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삼연으로 돌아왔다. 1818년 출간된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무대 위에 새롭게 재현해내며 한국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소개한다.
 
원작을 접한 사람이라면 알다시피, 프랑켄슈타인은 시체의 조각들을 봉합하여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려다 실패에 그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불러온 파국을 그린 공포 소설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이 원작의 커다란 틀은 그대로 가져오되, 창작 뮤지컬이니만큼 인물과 사건을 새롭게 다듬었다. 원작에는 없는 누나 엘렌과 자크, 에바, 까뜨린느 등의 인물들이 추가되었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친구로 등장하는 앙리가 중심적인 서사를 부여받으면서 1막의 주인공 격으로 떠올랐다. 이처럼 적절한 각색을 통해, 관객들은 보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인물들을 접하게 된다.


 
신과 인간

프랑켄 인간실험.jpg
 

1막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내기까지의 전반적인 과정을 그린다. 원작과 달리 그는 전장에서 신체 봉합술의 대가인 앙리 뒤프레를 찾아내고, 그의 목숨을 구함으로써 그를 실험의 공동연구자로 삼는다. 앙리 뒤프레는 죽은 몸을 되살리는 것은 자연의 섭리, 즉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그의 제안을 거부하지만, 신이 있기에 이 세상의 악이 존재한다는 빅터의 말에 감화되어 그의 연구에 동참한다.

새로운 생명의 창조는 신의 뜻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즉 1막의 핵심은 인간과 신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이때의 빅터는 악을 저지르는 존재와 악 그 자체를 분리시켜 바라본다. 신이 있기에 악이 존재한다는 그의 주장은 일견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악의 존재는 신의 부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거나, 혹은 더 큰 선을 위한 신의 계획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악을 악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신에 대항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데, 이같이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의 캐릭터는 프랑켄슈타인뿐만 아니라 바벨탑부터 최근에는 데스노트의 라이토까지 다양하게 나타나왔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스스로 신세계의 신을 자처하다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파멸에 이른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일련의 사건에 휘말려 앙리는 사형을 당하고, 빅터는 그의 잘린 목을 실험체에 봉합해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만든 창조물은 기대와는 달리 탄생 직후 살인이라는 악행을 저지른다. 빅터가 신에게 대항하는 논리에 따르자면 그의 창조물이 저지른 악행은 마땅히 창조물이 아닌 창조주 빅터의 죄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대가 역시 빅터의 몫이어야 한다. 그가 창조물을 만들어 살인이라는 행위를 존재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터는 자신이 만든 괴물을 죽이려 하고, 그를 피해 괴물은 달아난다. 생명 창조가 성공함으로써 1막에서의 인간과 창조주의 갈등은 인간인 빅터의 승리로 일단락되고, 2막에서는 갈등의 중심이 괴물과 빅터, 즉 신인류와 또 다른 창조주로 옮겨가게 된다.

괴물은 빅터에게서 벗어나 인간 세상을 경험하며 말과 글을 깨치지만, 그는 인간 세계에서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소외당한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던 까뜨린느에게까지 배신당하면서 그의 분노는 점차 빅터 개인에게서 인간 집단으로 확장된다. 이는 그가 격투장을 탈출한 이후 만난 어린 꼬마아이를 망설임 없이 살해하는 장면에서 단적으로 나타나는데, 빅터의 동생을 살해하는 원작의 노선과 달리 뮤지컬 버전에서는 꼬마의 정체를 모호하게 처리하고, ‘너도 커서 인간이 되겠지.’라는 대사를 추가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괴물의 혐오감을 내비친다.


프랑켄 북극.jpg


괴물이 격투장에서 까뜨린느와 함께 꿈꾸던 북극은 인간이 없기에 살 수 있는, 생명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인간이 없기에 살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이 또한 북극이다. 괴물은 방대하게 펼쳐진 북극의 한 가운데에 빅터만을 남겨두고 자살하면서, 창조주의 반열에 올랐던 빅터를 사회적 동물에 불과한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린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신인 인간을 능가하는 신인류가 되어 신-빅터-자신으로 연결되는 악의 순환을 끊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점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개인으로서 파멸했을지 모르나, 인간이 저지르는 악을 멈출 신인류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창조주로서는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선과 악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인물 개개인에게 설득력 있는 서사를 부여하면서 절대악이나 절대선 그 어느 편에 서지 않는 입체적인 인물상을 만들어냈다. 가령 빅터의 경우에는 어릴 적 흑사병으로 어머니를 잃은 아픈 과거를, 괴물의 경우 인간에게 학대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서로 대척점에 선 두 인물을 관객이 모두 이해할 수 있게끔 한다. 양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인물은 2막 초반부에 나오는 노예 까뜨린느인데, 그는 붙잡혀 고문당하는 괴물을 치료하고 함께 꿈을 꾸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 괴물을 서슴지 않고 짓밟아 버리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부분은 주연 배우 네 명이 모두 1인 2역을 맡는다는 점이다. 빅터와 엘렌 역의 배우는 각각 잔인한 격투장의 주인인 자크와 에바를, 귀족 아가씨 줄리아는 노예 까뜨린느 역을, 앙리는 괴물 역을 동시에 소화해내야 한다. 한 배우가 같은 무대에서 상반된 이미지의 두 배역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관객들은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이 본질적으로는 같은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선과 악은 상반된 개념이 아닌 맞닿아 있는 개념이며, 어느 쪽으로 발현되는가는 사람의 본성이 아닌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굳이 앙리의 머리로 괴물을 완성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원작의 괴물은 시체를 이어붙인 흉측한 거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반해, 뮤지컬 버전의 괴물은 여기 저기 접합한 흔적이 있을지언정 앙리의 얼굴을 하고 있고, 빅터에게 끊임없이 앙리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신의 모습을 본 땄다는 인간의 얼굴을 한 괴물. 이같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신이 될 수도, 괴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임을 상징적인 이미지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프랑켄 괴물vs빅터.jpg


서로 대척점에 서 있지만, 실상 빅터와 괴물은 삶의 모양이 매우 흡사하다. 두 캐릭터 모두 사회에 흡수되지 못한 소수자이며 창조주의 권위에 도전하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인물 양상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이 두 인물이 각자의 환경을 겪어내면서 어떻게 서로 다른 행동양식을 보이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사고방식, 조금 다른 외모를 가진 이 인물들이 각자의 세계에서 고립되는 모습을 그리면서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소수자를 배척시키는지 역시 꼬집는다. 격투장에서의 괴물은 약자에 대한 기본적인 동정심과 연민을 가지고 있었으나, 주인 부부로부터 학대당하며 끊임없이 ‘괴물다운’ 모습을 요구받는다. 어린 빅터 역시, ‘어린이다운’ 모습을 강요받고 정상적인 규범에 벗어나자 수십 년을 ‘마녀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귀족 가문 자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소외된다. 제네바의 주민들은 객석의 현대인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쉽게 빅터와 그 가족을 매도하고 고립시킨다.

그러나 현대 사회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그리고 그 밖의 다수의 소수자들에게 어떠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본다면 이는 마냥 단순하게 볼 수는 없는 장면이다. 또, 계속해서 괴물로서의 본능을 주입받던, 이름조차 없던 괴물은 결국 격투장을 불살라 그곳의 모든 인간들을 죽여 버리고, 어린 소년마저 살해하기 이른다. 그러나 누가 감히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관객들은 인간에게 배신당해 분노하는 괴물에 이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불꽃이 현실 세계로 옮겨져 왔을 때 다수자로서의 우리가 같은 얼굴을 할 줄 아는가, 그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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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하늘색구름
    • 본 작품이 신과 인간, 선과 악이라는 대립되는 존재, 가치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구현해내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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