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과의 투쟁 이야기, 『죽음의 수용소에서』 [도서]

글 입력 2018.07.1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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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불멸주의자에 이어서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다. 작가인 빅터 플랭클은 정신과 의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가 잔인한 고문과 가축, 혹은 가축보다 더 잔인한 대우를 받는 수용소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수용소에서의 일을 조금 감성적이고 감동적으로 이어나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며 이끌어나간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작가는 정신과 의사이기 때문에 수용된 포로들의 행동, 마음을 묘사한다. 또한, 그들을 관리하는 ‘카포’들에 대해서도 책 곳곳에 묘사되어있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그가 생각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다. 개인적인 체험, 즉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겪었던 개인적인 체험에 관한 기록이다. 생존자 중 한 사람이 들려주는 강제 수용소 안에서의 이야기이다.


1장은 수감자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름도 없이 기록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시련 그리고 죽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수용소 안에서는 목숨을 위한 투쟁, 생존을 위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래서 그들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죽음과의 투쟁에서 도덕, 윤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들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기 대신 희생할 다른 사람을 수송자 명단에 적는다.

정신과 의사답게 수감자들의 심리적 반응을 관찰했다. 충격-적응-자유. 그들이 처음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석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이것을 정신의학에서는 ‘집행유예 망상’ 이라고 한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이다. 절망 속에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버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실낱같은 희망마저 처참하게 무너져 삶의 의미를 잃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절망이 자살을 보류하게 만든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죽는 모습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자살을 생각하지만, 첫 번째 단계에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참, 인간은 이해하기 어렵다. 절망 속에 살지만, 오히려 그것이 죽음을 두렵지 않게 않는다니, 인간이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죽음을 몸으로 느꼈을 때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불멸주의자인 것이 분명하다.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


<슬픈 불멸주의자>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사람은 모멸감을 죽음보다 더하다고 여긴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인간은 자존감을 내세운다. 모욕은 이러한 인간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슬픈 불멸주의자>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다.


모욕을 받을 때 인간은 자존감을 잃고 의미 있는 세계에 사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미약한 생물로 전락한다. 소말리 족 속담에는 “모욕은 죽음보다 나쁘다. 전시 상황에서 모욕적인 언사는 총알보다 더 큰 상처를 준다.”라는 말이 있다. 총알은 육체를 죽이지만, 모욕은 ‘덧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공포를 억누르고 있던 중요한 감각을 깬다.


죽음을 이겨낸 수용자들에게 모욕이란 그들의 육체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까지 죽이는 것과 같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시적인 생활을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다.


흔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극한의 상황인 수용소에서도 인간은 적응을 한다. 적응을 했다는 증거로 그들의 감정은 무감각해진다.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지만, 그들의 잇몸은 어느 때보다 튼튼하며, 상처는 결코 곪지 않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잠이 깰 정도로 예민한 사람은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주 깊이 잠을 잤다. 그뿐만 아니라 벌을 받고 있는 사람을 보고도 감정이 무뎌져서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다. 이것은 수용자들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나, 그리고 현대인들에게도 해당된다.

예전에는 감동적으로 다가와 내 감정을 흔들어 놓은 것들(일)은 지금은 더 이상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까, 나와 관련되지 않는 것들은 내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뉴스에서 사건 사고 보도를 봐도 더 이상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내 감각이 무뎌진 걸 스스로 자책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항상 마음을 색으로 채워놓으려고 해도 현실에서는 무채색으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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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때때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나둘씩 빛을 잃어가고, 아침을 알리는 연분홍빛이 짙은 먹구름 뒤에서 서서히 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은 온통 아내 모습뿐이었다. …(중략)… 실제든 아니든 그때 그녀의 모습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났다.


절망 속에 하루하루를 무감각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희망을 찾고 있다. 내면세계를 극대화시켜 자기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으로부터 피난처를 찾는다. 사람들은 사랑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사랑이란 많은 의미를 갖는다.

 

해방의 체험



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되뇌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면서 얼마나 자주 이 단어를 입에 올렸는지 이제는 그것의 의미를 잃고 말았다. 현실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강제수용소에서 해방된 직후에는 아무도 자유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심한 중압감을 겪었던 사람들에서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갇혀 있다가 석방된 조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신의학적인 용어로 ‘이인증’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꿈처럼 비현실적이고, 있을 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비통함과 환멸을 느낀다고 한다. 수용소에서 자기에게 용기를 준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다는 것, 아무도 자기를 기다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안 후 그는 비통함을 느낀다.
 

 
로고테라피 (Logotheraphy) , 삶의 의미를 찾아서


2장에서는 빅터 프랭클이 창시한 로고테라피에 관한 기본 개념들이 설명되어있다. 실존적인 의미의 인간 치료법이다. 기본 개념을 알아가면서 로고테라피에 관심 갖게 되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게 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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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그리 두껍지도 않고, 어려운 단어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라서 쉽게 읽힌다. <슬픈 불멸주의자>와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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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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