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분노를 허하라

'니키 드 생팔 展 마즈다 컬렉션' 프리뷰
글 입력 2018.07.1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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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세상에 존재하는 색만큼이나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왠지 시뻘건 색을 띨 것만 같은 '분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정적으로 취급된다. '참는 게 미덕'이라는 옛말은 분노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흔히 사람들은 분노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감정인 분노는 폭력의 형태로 표출되기 쉽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날 것 그대로의 분노는 그 원인과 상관없는 대상을 향하기 쉬운 감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라는 감정을 통틀어 부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특히 부당한 일을 당해서, 또는 아무리 대화를 시도해도 통하지 않는 상대 때문에 화난 사람에게 '이성적으로' '대화하라고' 분노의 감정을 억압하는 건 분노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의 오만이며 또 다른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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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인공이자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은 분노와 관련이 깊은 작가다. 그는 1930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프랑스와 미국의 추상회화에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 들어서는 누보 레알리즘(Nouneau Realisme) 의 유일한 여성 작가로 인정받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1960년대 무렵, 니키는 무척 화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성적 학대, 가부장제 하에서 강요되는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삶이 그를 화나게 했다. 화난 니키는 총을 들었다. 단, 사람이 아닌 캔버스를 향해서.

니키 드 생팔의 초기 작품 경향인 '사격회화(Shooting Pinting)'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격회화는 석고 작품에 물감이 담긴 깡통 이나 봉지를 부착한 후 총을 쏘는 방법으로 제작된 회화, 조각, 퍼포먼스를 포괄하는 작품이다. 여성으로서의 억압을 고발한 니키의 작품은 이후 '나나(Nana)' 연작으로 이어졌다. 보편적인 미의 기준을 벗어난 몸으로 남성이 보는 여성이 아닌 존재하는 그 자체로서의 여성을 제시한 나나 연작은 전세계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의 사랑과 공감을 받았다.


Niki de Saint Phalle, Nana Fontaine Type, 1971, 1992 ⓒ 2017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ADAGP, Paris - SACK, Seoul.jpg
Niki de Saint Phalle, Nana Fontaine Type, 1971, 1992
ⓒ 2017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ADAGP, Paris - SACK, Seoul


니키는 작품을 만들며 분노를 표출하고 고통에 저항하며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고발했다. 니키에게 작품활동은 일종의 상처 치유 과정이었다. 그가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계기가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받기 시작한 미술치료였다는 점을 알고 나면 그의 초기 행보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 후로 니키는 2002년 사망할 때까지 타로공원 The Tarot Garden 건립을 위한 작품활동에 집중했다. 타로공원은 여성으로 살아가며 자신이 느꼈던 정신적 억압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예술의 힘을 대중과 나누고 싶어했던 니키의 평생 꿈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공원은 신화와 전설을 혼합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문화공간으로써 니키가 바랐던대로 대중에게 치유와 기쁨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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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서울에서 최초로 기획된 니키 드 생팔의 대규모 단독 전시회다. 특이한 점은 이번 전시가 단순한 회고전을 벗어나 일본 니키 박물관의 요코 마즈다 시즈에 전 관장의 소장품으로만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에서 작가인 니키 드 생팔을 제외하고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요코 마즈다 시즈에다. 두 사람은 20여년 간 교류하며 서로에게 영항을 주고받았다. 니키는 일본 교토에 처음 방문해 받은 영감을 '부처(Buddha)'로 형상화 했으며 마즈다는 1980년대부터 니키와 교류하며 일본 도치기 현에서 니키미술관을 창립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니키의 예술세계와 더불어 콜렉터인 마즈다와 작가 니키의 인연과 우정 이야기도 볼 수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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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세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개인적 상처와 치유' 에서는 사격회화와 '나나' 연작을 볼 수 있다. 두번째 '만남과 예술' 에서는 평생에 걸친 니키의 예술적 동반자, '장 팅겔리(Jean Tinguely)'와 니키가 만든 작품의 수집가이자 니키의 친구였던 '요코 마즈다 시즈에'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마지막 '대중을 위로하는 상징' 에서는 상처를 극복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이어준 예술의 힘을 대중과 나누기로 한 니키의 다짐이 돋보이는 순서이다. 설화와 우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업한 작품과 타로공원의 작품 일부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모든 구역에서 사진촬영이 허용된다는 점이 특징으로, 전시장은 관람객이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하고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쌍방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회화, 일러스트, 조각 작품들은 제작된 지 50여년이 지났음에도 요코 마즈다 시즈에의 노력으로 보관 상태가 우수하다. 그 중에서도 손상된 부분 없이 크리스탈의 영롱한 빛을 자랑하는 <부처>와 <해골>, 한가람미술관 장치반입구를 확장 공사하면서까지 공수해 온 <그웬돌린(Gwendolyn)>, <빅 헤드(Big Head>는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작품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띌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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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기쁨의 에너지와
현실을 향한 날카로운 통찰을
동시에 담은 현대미술 대표작가'


니키 드 생팔에게 붙는 수식어다. 그 '자유로운 기쁨의 에너지'와 '현실을 향한 날카로운 통찰' 이전에 고통으로 인한 분노가 있었다. 분노에서 시작된 니키의 예술은 특유의 대담하고 당당한 표현으로 오늘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해방감을 안겨 준다. 그는 분노를 예술로 승화시켜며 이 강렬하고도 위험한 감정에서 무엇을 피워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분노는 어느 시대에나 유효한 감정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분노할 수밖에 없는 부당한 일은 수없이 많고, 분노하는 사람들의 분노를 묵살하려 하는 이들도 그만큼 많다. 그렇기에 세상의 억압과 고통을 마주하고 이에 분노하는 일은 힘이 든다. 그러나 분노할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사람들을 거리에 나오게끔 하고 목소리를 내게 만드는 것도 분노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향한 억압과 부당함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더 좋은 쪽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는다.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아가며 그 분노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때 고통을 치유하고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니키 드 생팔 展 마즈다 컬렉션' 에서 확인해 보고 싶다.





니키 드 생팔 展 마즈다 컬렉션


전시기간: 2018.06.30(토) ~ 09.25(화)

휴관일
매월 마지막주 월요일
7/30(월), 8/27(월), 9/24(월)

시간 
11:00 ~ 20:00
(입장마감 19:00)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티켓가격
성인 (만 19세-64세) : 14,000원
청소년 (만 13세-18세) : 10,000원
어린이 (만 7세-12세) : 8,000원
유아 (36개월 이상) : 6,000원

주최
예술의전당

협력
요코 마즈다 시즈에 컬렉션
(Yoko Masuda Shizu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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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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