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해 여름에,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사랑과 죽음사이
글 입력 2018.07.1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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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는 고등학교 때 처음 교과서로 만났다.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 교과서에 담긴 작품을 읽으면서 선생님께 영화를 보여 달라고 졸랐던 기억도 있다. 수업시간은 50분, 다음 시간에 또 보여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웃음으로 대답을 한 선생님은 곤란한 표정으로 화면을 껐다. 그렇게 ‘꼭 나중에 봐야지’ 생각하고 잊었던 게 지난 주말 번뜩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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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사진사 정원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모르고 본 사람이라면 그가 죽음이 얼마 남지 않는 사람이란 걸 모를 정도로 그의 삶은 평범하기만 하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사진을 인화해달라며 주차관리원 다림이 찾아온다. 더운 여름날 다림은 사진관에서 쉬어가기도 하고 언젠가 단속사진을 인화해 달라며 그를 재촉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친해진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거침없이 다가오는 다림은 정원의 눈에 한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는 쉽게 마음을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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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정원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두려움은 그를 무너뜨린다. 손톱을 깎다가 문득, 버스 창가에 앉아 바람을 쐬면서 문득 보이는 그의 표정엔 슬픔이 배어있다. 정원은 자신이 죽고 난 다음이 걱정되었는지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다.

비디오 작동법을 모르는 아버지를 위해 설명을 해주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먹먹했다. 거듭되는 설명에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정원은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린다.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요’라고 아버지에게 소리치는 것 같아 더욱 슬펐다. 사신 인화기와 비디오 작동법을 종이에 번호를 매기며 써 내려갔던 정원의 마음은 어땠을까. 늦은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고 있는 정원의 방에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서 서성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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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는 정원의 일상적인 삶을 그대로 그려낸다. 시한부 삶을 사는 정원의 시선에서 담아내니 일상적인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가족과 시원한 마룻바닥에서 밥을 먹고, 동생과 수박을 먹으며 씨를 멀리 뱉는 장면,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이는 장면 등 별거 아닌 것들이었어도 짠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결국 겨울이 오고 정원은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그렇게 사진관은 문을 닫고 다림은 하염없이 정원을 기다린다. 편지를 써서 사진관 문틈에 끼워 넣기도 하지만 어둡기만 한 사진관 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 기다림은 원망으로 바뀌고 그렇게 둘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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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개봉한지 20년 정도가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분위기와 정원의 사정이 딱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절제된 듯 표현되는 감정들은 영화가 끝난 후 더 큰 여운을 남겼다. 멜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 전개 또한 그렇다. 20년이 지난 후에 본 영화는 아날로그적 느낌도 가지는데 이 부분도 오래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필름 카메라와 사진관, 주차단속원, 공중전화 같은 90년대의 풍경이 얼마나 정겹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 감성에 취하듯 영화를 본 것 같다. 우리는 빠르게 디지털을 향해 달려가지만 마음 한구석엔 아날로그를 간직하고 있겠다고 생각했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 그것이 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신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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