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OTEA] THE LOVERS 6: 가장 달콤한 착각, 그 완전함

글 입력 2018.07.15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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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OTEA]
THE LOVERS 6:
가장 달콤한 착각, 그 완전함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은 인간을 어리석게 만든다. 이 문장에 있어서 필자의 24년 인생을 걸고 확신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상대에게 약한 부분을 노출한다는 것은 높게 쌓아올린 젠가의 블럭을 하나씩 빼는 것과 같다. 하나 하나가 빠질 때 건물은 흔들린다. 블럭을 빼는 사람은 때로 조심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블럭을 뺀다. 제일 처음 빼는 블럭이 가장 연약한 부분이라면, 쌓아올린 젠가의 탑은 무너진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젠가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블럭을 빼는 것'이지만, 이 게임의 목표는 늘 '균형'이다. 사랑도 그렇다. 우리는 그 위태로운 짓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 적당한 시점에서 게임은 멈춰야 하는데, 사람들은 또 겁없이 블럭을 뺀다. 그런 점에서 사랑이란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가. 와르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애써 쌓아올린 또다른 세계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때로는 큰 부분이, 때로는 작은 부분이 이 세상에서 큰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우리는 존재의 소멸을 죽음이라고 부른다. 사랑의 상실은 우리의 어느 부분을 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절망속에서도 또 탑을 쌓아올린다. 언젠가 적당한 균형에서 게임을 끝낼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사랑은 하늘을 날길 바라는 절름발이와 같다. 그 수고스러움을 감내하는 모든 연인들의 용기에 행복을 기도하고 싶다. 필자의 모든 글자에 저주가 서려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사과드린다. 하지만 애당초 우리의 삶이 어쩔 수 없이 이어나가는 저주였음을 먼저 고백하고 싶다.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처럼 우리의 삶은 원래 영원히 완성할 수 없는 퍼즐이지 않은가. 사랑은, 그냥 그런 인간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사랑으로 우리는 완전해지는 듯한 착각을 품을 수 있다. 그 환상은 너무 달콤해서 우리를 중독시키고 어리석게 만든다. 영원히 돌을 굴리는 저주를 받은 시지프스는 그 순간순간 정상을 꿈꾸면서 산을 오르기에 아름다워보이지 않은가. 시지프스는 저주가 풀린 삶과 꼭대기에 선 돌을 상상하며 산을 오른다. 그것의 본질이 저주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어쩌겠는가, 우리의 삶이 온통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던 것을.

필자도 <연인>카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어떤 고난이 있었는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연인의 출연은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끈다. 마법사와 여사제, 왕과 여왕도 사랑 앞에서 왕관을 내려놓는다. 소년은 더 그렇다. 소년은 처음 맛보는 강렬한 성적 욕구, 완전해질 듯한 사랑의 환상은 좀 더 '인간'답게 변하게 만드는 기회를 마주한다. 소년은 지금까지 다양한 스승들과 부모 아래서 자라온 어린 아이였지만, 사랑을 만남으로서 성인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상처를 피할 순 없다.

사랑을 시작한 두 청년을, 사랑의 천사, 라파엘이 축복하고 있다. 그가 입은 옷의 색깔은 과거 귀한 귀한 염료였던 보라색이다. 귀한 옷을 입고 양손을 치켜뜬 라파엘은 근엄하고 존귀해보인다. 그는 눈을 감고 있는데, 이는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사랑의 공평성과 우매함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에로스의 화살이 제멋대로 인 것처럼 사랑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꽂힌다. 라파엘의 축복 아래에 선 두 사람은 수평적으로 서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여자의 눈은 위를, 남자의 눈은 여자를 향해 있다. 이들의 사랑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당기지만, 서로 다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시선이 영원히 다른 곳을 향해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이들은 순수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 뒤에 있는 오브젝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남자 뒤에는 생명의 나무가, 여자 뒤에는 열매와 뱀이 있다. 12개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생명의 나무는 에너지와 열정을 의미하지만, 검은색으로 보일정도로 위태로워 보인다. 선악과로 하와를 유혹한 뱀은 유혹에 대가를 치뤄져야함을 의미한다. 선악과로 아담과 하와는 지혜를 얻지만,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인 에덴에서 영원한 추방을 당한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에서 추방당할 선택을 하게될 것이다. 사랑에 있어서 우리가 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연인 뒤의 높게 솟아오른 산은 신에게 닿길 바란 바벨탑을 닮았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필자 개인적으로는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신이 되어달라고 비는 것과 같다'라는 분석심리학자의 통찰이 떠오른다. 단언컨대 불완전한 인간이 한순간이라도 완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은, 사랑뿐이다. 빈 공간이 완전히 채워졌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절정을 느낀다. 연인들의 섹스야말로 완전함을 느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행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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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카드와 어떤 작품을 이을까 고민하다, 쉘 실버스타인의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서>의 후속작이 눈에 밟혔다.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서 1>이 꼭 맞는 조각을 찾아 뒹굴 뒹굴 구르다 불완전한 삶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조각을 놓고 가는 빠진 조각을 찾는 동그라미의 이야기였다면,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서 2>는 그가 남긴 조각에 대한 이야기다. 남겨진 조각은 채워지길 바래서 조각이 빠진 동그라미를 마냥 기다린다. 남겨진 조각은 누군가의 조각이 되길 간절히 바래왔지만, 그 어떤 동그라미도 그를 완전히 품어주지 않았다. 그는 어느날 조각이 빠지지 않은 완전한 동그라미를 보고 자신이 찾고 있었던 동그라미라고 말하며 자신을 채워넣길 바란다고 말한다. 하지만 완전한 동그라미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없다 말하며 굴러간다. 그는 떠나기 전 왜 스스로를 조각이라 생각하냐 물었다. 남겨진 조각은 그 말을 듣고 온몸을 굴려 동그랗게 만들었다. 작은 동그라미가 된 조각은 완전한 동그라미를 따라 함께 굴렀다.

첫번째 동화가 타인으로 채워질 수 없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면, 두번째 동화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동화를 읽고 한동안 저 마지막 두 장면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직도 저 두 동그라미의 구르기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간질간질하고 뜨거워진다. 필자도 사랑을 빈 공간을 채우는 퍼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조각이 맞지 않는다면 다른 조각을 채워넣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꿈꾸는 모든 사람이 완전해지기 위해서 하는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첫번째 동화가 말했듯이, 사랑을 통해 빈 공간을 모두 채우는 것은 완전한 것도,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사랑이란 그냥 다른 존재가 함께 굴러가는 것이다. 서로를 채우지 않아도 함께 햇볕을 받고, 풀숲을 지나고, 함께 숨결을 느낀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젠가를 한다. 우리는 늘 모순적인 목표를 꿈꾸며 게임에 참가한다. 그리고 젠가를 통해 상대방이 블럭을 뺀다고 착각한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흔들리는 탑과 상대방을 분류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더 공포스럽고 거대해 보이는 것도 그가 언제든 내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내 사랑의 블럭을 빼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늘 그 자신이다. 관계는 언제든 빛을 잃지만, 사랑의 기억은 죽지 않는다. 상대방은 내 세계에 불어오는 가장 강한 바람이지만, 젠가는 늘 개인의 심장 안에서 쌓아지고 무너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 관계는 언제는 무너질 수 있지만, 그와 쌓았던 젠가는 가장 완전한 형태로 가슴 속에 남아있기도 하다. 사랑은 참 모순적이다. 온통 구멍 투성이인데, 특별한 환상을 가지게 만들고, 그 환상은 어느 부분에서 약간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평생 완전해지지 못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런 점에서 사랑을 완전한 언어로서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연인들은 늘 함께 굴러왔다. 연인이 남겨온 발자국들은 채움의 기억이라기보다 함께 해온 증거였을 뿐이다. 이 끔찍한 세상에서 여전히 구른다는 것은 몸을 깎아내는 것이고, 그건 상대방이 옆에서 함께 구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랑을 통해 우리는 시간을 공유한다.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슬픈 것들을 함께 겪는다. 다른 존재보다 가깝고, 가까워서 조금 괴로운 상태로 말이다. 사랑은 아무것도 주지 않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이런 제한적인 부분에서 사랑은 완전하다.

함께 굴러가는 길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사랑을 통해 우리가 마주한 시간은 직선처럼 쭉 뻗어있다. 이 불분명한 온기 속에서 내가 가진 가장 큰 욕심은 어느시점 돌아본 그 시간이 그래도 여전히 따뜻한 흔적으로 남아있길 바라면서, 우리는 또 블럭을 뺀다. 늘 그랬듯이 건물이 또 흔들린다. 사랑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 속에서 수많은 단어를 굴린다. 이번에는, 이번에도, 이번만큼은. 사랑의 감옥 안에서 우리는 늘 스스로 죄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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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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