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맞물리는 여성들의 역사 '허스토리(Herstory)' [영화]

글 입력 2018.07.1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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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시작으로 <눈길>, <아이 캔 스피크>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삼는 영화가 최근 들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가해국이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가 없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과 투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의식을 담은 영화들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다. 관객과 사회에게 사건에 대한 관심을 계속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7일 개봉한 <허스토리(Herstory)>역시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재는 같지만 영화를 관람한 뒤 , <허스토리>는 좀 더 동시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안부 피해자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연대한 여성들의 이야기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이어진 관부재판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10명의 원고들이 시모노세키(관)와 부산(부)을 오가며 일본 재판부와 마주한 23번의 재판은 6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었다. 일본 정부의 항소로 뒤집혀 결과는 패소로 확정되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소송에서 사상 최초로 전후보상 1심 판결 승소를 받아낸 재판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인물들이며 그 중 원고단을 모아 재판을 시작한 문정숙 씨(극 중 김희애역)는 현재 한국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김문숙 회장을 그려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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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은 부산 여성경제인연합회의 모임으로 시작된다. "여자들은 이게 문제인기라. 내가 만들고 이끌고 다했다. 이래 잘난척 좀 하면 안되나?"라며 옆자리에 앉은 동료에게 호통치는 문정숙의 모습은 이 영화가 오롯이 여성의 시각만을 반영할 것을 말하는 듯 하다. 그의 말마따나 문정숙은 원고단을 모으고 20억원 가량의 사비를 투자해 재판을 진행해나가는 영화 속 현재의 주축 인물이다. 영화는 문정숙이 사건에 뛰어드는 계기를 그의 엄청난 사명감이나 숙명처럼 그리지 않는다. 문정숙은 우연한 기회에 방송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그 피해자가 자신의 주변인이었다는 점과 자신이 그 인물에게 의도치 않게 큰 상처를 준 죄책감을 계기로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극 중 문정숙은 고정적 여성 역할을 타파하는 인물이다. 딸이 학교에 빠지더라도 개의치 않으며 자기가 잘하는 것은 살림이 아니라 일이라고 말한다. 주변의견에 개의치 않으며 한 번 추진한 것은 무르지 않는다. 비싼 비용을 걱정하는 변호사의 질문에도 "내 그 정도 능력은 됩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능력과 재력에 확신을 갖는다. 이토록 진취적이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중년 여성 사업가의 이야기를 그동안의 한국영화에서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문정숙은 사업 수익을 위해 기생관광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재판을 다루며 과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할머니들과 연대하게 된다. 마지막 씬에서 그녀는 역사관 건립을 추진하며 영화 속 현재의 역사를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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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숙이 영화 속 현재의 여성이었다면 과거의 여성들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 할머니의 증언이 뉴스로 전달되면서 부산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던 할머니들이 문정숙에 의해 삼삼오오 모이게 된다. <허스토리>는 개개인의 과거 피해에 집중하지 않는다. 기존 위안부 소재 영화가 어린 소녀들의 피해 장면, 혹은 과거 회상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허스토리>는 각각의 할머니 개인을 조명한다. '피해자'라는 공통점으로 동일하게 다뤄지지 않고 각자의 캐릭터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다양한 캐릭터는 인물의 성격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양상도 세분화 한다. 영화는 위안부에서의 성적 인권탄압, 근로 정신대에서의 노동 착취와 같은 여러 인권 착취 행태를 보여준다. 창기 출신으로 돈을 벌기 위해 그곳에 간 여성을 초반에 비난한 문정숙이 훗날 그에게 "당신도 피해자였군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피해자를 한가지 양상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관객이 다각화된 시선을 통해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재판기간 도중 일본이 국민기금을 통해 보상금을 지원할 때도 보상금을 거부하는 여성, 생활고 때문에 보상금 수령을 선택하는 여성과 같이 여러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분법적인 시각을 방지한다. 영화 속 입체적으로 다뤄지는 할머니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여성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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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미래는 문정숙의 딸 혜수(극중 이설 역)이 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회에 무관심했던 혜수는 학교에 초청강연을 온 할머니(극 중 김해숙 역)로 인해 새로운 사실을 접하고 사건에 눈을 뜨게 되며 극 중 마지막 위안부 집회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혜수는 관객과도 연결된다. 영화를 통해 관객은 몰랐던 사실을 알고, 알던 사실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부끄럽게도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관부재판에 대해 알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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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과거 여성들의 고백과 현재 여성과의 연대를 담아내고 있다. 이 연대는 미래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허스토리>는 가장 동시대적이고 페미니즘적인 영화라고 생각된다. 개봉한 지 한 달이 채 안되었는데도 상영관이 줄고 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영화 속 연대는 이제 관객이 이어나가야 한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래본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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