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리톤 색소폰, 더 내려갈 곳은 없다 [음악]

글 입력 2018.07.1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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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색소폰을 샀다. 꾸준한 눈팅만 반년, 마음으로 생각한지는 1-2년. 이 정도면 충동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구매 후기를 보고 피식 웃었던 적이 있다. 바리톤 색소폰은 색소폰 중에서도 가장 ‘고민하고’ 사는 색소폰이라 했다. 바리톤 색소폰, 진심 정말 좋지 않냐고도! 그러나 장점보다 단점이 수없이 많다고도. 맞다. 더럽게 무겁고 한숨 나오게 비싸다. 그럼에도 가장 큰 장점은 그 저음. 평생 내 목소리로는 낼 수 없는 저음을 내 숨으로 내고, 귀로 듣는 기쁨. 사는 순간만큼은 생전 처음 쓰는 거금을 단 몇 초 만에 썼다는 게 무척 황당했다. 모으는 건 정말 오래 걸리고 힘들었는데. 새삼 생각했다. 생각보다 크게 잘 지르는 것 같다! (악기 덕분에 돈이 생기면 못써서 고민이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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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에 당첨되거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생긴다면 색소폰을 살 생각이었다. 색소폰의 종류. 왼쪽부터 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색소폰이다. 더 높은 음과 더 낮은 음을 담당하는 소프라니노 색소폰이나, 베이스 색소폰도 있다지만 내 선에서 자주 쓸 수도, 구할 수도 없기에 통상적인 이 네 악기를 많이 쓴다. 색소폰 친구들이 저렇게 쪼르르 있다면 무척 기분이 좋겠지만, 아니다. 지금 있는 테너와 바리톤으로도 충분하다. 고음보다는 저음이 좋다. 소리를 낼 때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숨이 차고 힘은 들지만 단단하고 따뜻하다. 잘 하고 있다고,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장비는 참 알맞거나 넘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고급지게 갖추었는데 이제는 내 몫만 남았다. 악기를 감당하지 못하면 늘 나에게도, 악기에게도 아쉬운 소리가 날 건 분명하다. 색소폰을 좋아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음악과 악기가 어색하고 어렵고 힘들다. 공부할 때처럼 열정적으로 미친듯이 해본 적도 없고, 음악은 잘 해 본 적 없어서 두렵기도 하다.  올 해도 반 년은 하던 악기 활동도 쉬었다. 완전히 쉬고 싶었으나 또 책임감에 못 이겨 꾸역꾸역 하던 것도 있다. 여튼 그래도 많은 걸 내려놓고 악기를 잘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쉬고 나니 다시 하고 싶어졌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시기도 주기가 있는걸까. 몇 년 전이 떠올랐다. 그 때 역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싶었다. 도망갔다. 그러고도 다시 돌아왔다. 감당할 자신은 없었지만 영영 도망칠 용기도 없었음이라. 병약하게도 좋아한다는 책임은 지기 싫었던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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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낮아지고 싶은 것은 음역대만은 아니었다. 음이 낮을수록 귀를 짜릿하게 만들었지만 나 역시 더 낮은 곳으로 가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한 편으론 아무도 잘 찾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싶었다. 하지만 오래 있고 싶어서다. 내려갈수록 더 오래 있을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부딪히고 싶지 않다. 웃기게도 사람이 싫어지면, 사람에게 상처받으면 악기가 한 번씩 바뀌었다. 도망이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남아있기 위해서였다. 있는 듯 없는 듯 남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면 그 뿐이다. 그게 오래 남아 있고 싶은 이의 역할일 것이다.

결국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나에 대한 것들이었다.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은 건 결국 두려움이었다. 핑곗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상처받아서, 힘들어서, 쉬어가고 싶어서. 그래도 놓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가는 것 정도는 인정해줘야 하는 걸까. 막상 오랜만에 악기를 들고 나니 그냥 잘 하겠다는 생각 없이 열심히 해보자 싶었다. 지금 이 악보를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대신 애를 써서 더 많은 숨을 불어넣고, 더 많이 배에 힘을 주어서, 집중해서 해보자고. 그렇게 사소하게 다시 시작하니 시작은 좋은 듯 하다. 그럼 더 재미진 것도 같고.

레슨선생님은 음악을 하는 다른 이들 앞에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고 나 역시 뮤지션이라고 말해주었다.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 한 이야기이니 술내나는 농담이었겠지만 그래도 그 말이 참 좋았다. 색소폰과 함께한 레슨 선생님, 드럼과 베이스, 각종 타악기를 제 몸처럼 다루는 선생님의 친구 뮤지션들과 둘러앉으니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은 내가 자신을 뮤지션으로는 보지 않고 선생님으로 보는 것 같다 했다. 내심 그런 생각이 술잔에 담겨나온 것이겠지. 그러나 나는 선생님을 뮤지션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면 제 선생님으로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라 했다. 그 말은 술에 흘려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분들은 질문을 했다. 무척이나 뻔하게도 왜 색소폰을 하냐는 말에 소리가 좋아서라고 했다. 뻔해도 할 수 없다. 귀가 녹아드는 소리가 아니고서야 뭐라고 답하겠는가. 색소폰을 좋아한 역사는 꽤 길다. 중학교 때 영화 <스윙걸즈>를 보기 전인 초등학교 때 역시 색소폰 소리를 좋아했었다. 대체로 '아재'들의 감성을 담았다는 색소폰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얼마 전 <명탐정 코난>에서 울려퍼지는 색소폰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어릴 적 만난 코난이 정말 온갖 영향을 주긴 한 모양. 하지만 구구절절 이래서 좋아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언제 좋아하게 되었든 지금이 중요하다. 술자리를 함께 하던 분들은 나와 이야기 하다보니 함께 공연을 하고 싶어진다고,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했는데 역시나 손사래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 대단한 실력이 못된다고. 그 분의 답이 기억에 남는다. 가치는 본인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했다. 가치는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판단해 줄 것이라고. 나는 나를 이해하면 될 뿐 판단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그 수많은 판단은 다른 이들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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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색소폰. 소리가 참 좋다. 애지중지한다. '나보다 비싼 친구'라고 모시고도 있다. 골 때리게 그 낮은 소리가 좋다. 주변 사람들은 왜 중고차를 사지 않고 여행을 가지 않고, 여기에 돈을 쓰냐고 했다. 그건 가치의 차이 아닐까? 럭셔리한 취미생활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조금 더 저렴한 취미였다면 좋겠지만 나에겐 중고차보다 여행보다 색소폰이 좀 더 돈을 쓰고 싶었던 곳이었을 뿐이다.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싸게 나와서 ‘이건 당장 사야 해!’라며 호기롭게 질렀던 나도 내가 신기하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월척이다 싶긴 했다. 예상보다 훨씬 싸게 나온 건 처음이었으니까. 어차피 살 거라면 한 푼이라도 저렴할 때 사야한다며 합리화를 했다.

바리톤 색소폰을 사면서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많았다. 여전히 고가인 건 확실하다. 돈을 꾸준하게 번다고 해도 카드회사의 한도보다 악기 가격이 비싸서 결국 할부는 꿈도 못꾸고 계좌이체를 해야 했다. 나의 신용으로는 아직 그만한 돈을 나눠내겠다는 것은 무리였나보다. 한동안 그렇게 큰 돈을 쓰긴 어려울 것 같으니 한도는 웃어넘기는 걸로. 덕분에 그래도 계좌이체 한 덕분에 좀 더 할인은 받았으니 잘 된 것일 수도. 악기점 사장님의 엄청난 존대로 나는 심지어 ‘교수님’이라고 불리기까지 했으니까. 돈을 많이 쓰면 교수님이라고 불리는 날도 온다. 그리고 역시나 사는 사람이 많지 않기도 하다. 중고 피스를 사러 가는 날은 비가 하도 퍼부어서 지하철 출구부터 아득했다. 가는 날이 장날. 판매자 분은 내가 남자인 줄 알았다며 놀라셨다. (이것도 편견이건만! 신문에서 색소폰을 하는 여자분들이 늘었다고 해서 무척 반가웠다) 레슨 선생님껜 말도 안하고 사버려서 머쓱하게 웃었다. 바리톤은 수리도 어렵고 해서 지금이라도 얼른 팔아라, 그러시면서도 막상 악기를 가만히 보면서 악기가 참 곱다면서 눈을 떼시지 못한다. 바리톤 색소폰은 그런 악기다. 내 덩치만한 무게, 운반, 비싼 가격과 관리 비용, 기타 등등 앞뒤안가리고 좋아하기엔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무척 설레거나 신나진 않았다. 그래도 소리. 그 소리 하나로 다 괜찮은 듯하다. 든든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여기서 더 내려갈 곳은 없다. 혹시나 또다시 도망치기 위해 내려가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말이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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