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가장 아픈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이야기 [전시]

당신의 용기를 배우고 싶습니다.
글 입력 2018.07.1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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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알랭 드 보통의 <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이란 책을 읽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에 재치 넘치는 특유의 문체들이 더해져 비교적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철학 입문서다. 철학이라는 생소한 학문 앞에서는 언제나 입을 꾹 다물고 눈동자만 굴리던 나 역시 이 책 덕분에 소크라테스, ......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세상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 많은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내 뇌리에 깊게 박힌 철학자는 몽테뉴라는 16세기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는 저서에 ‘똥을 쌀 때 안락함을 느낀다.’ 라던가, ‘남근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부위’라고 저술하는 등 솔직하고 개방적인 행보를 선보인다. 그것도 무려 16세기에 말이다. 참고로 16세기는, 신체의 ‘음란한’ 부분과 성(性)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쉬쉬하던 빡빡한 시대였다.
 
그는 ‘모두가(심지어 왕도) 똥을 싸고, 섹스를 하는데 왜 그것을 숨겨야하는지 모르겠다!’ 며 자신의 가장 숨겨 마땅한 단면들을 힘차게 열어젖힌다. 똥도, 섹스도 한 인간의 일부인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하여 몽테뉴는 자신의 가장 치욕스러운 부분들을 열심히 대중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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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이 몽테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성적학대를 받은 경험과, 가정에서 소위 여성에게 주어지는 업무를 성공적으로 행하지 못한 데서 오는 좌절감을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가장 숨기고 싶은 부분을 용기있게 드러냄으로써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대중과 소통한 것이다. 한마디로 니키 드 생팔의 예술은 ‘분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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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을 논할 때 빼먹을 수 없는 것은 1961년 발표된 < 사격회화 >라는 작품이다. 그녀는 석고화면에 부착된 물감이 든 깡통이나 봉지를 향해 (실제로!) 총을 쏨으로서 이 작품을 완성한다. 남성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된 방법으로 소위 말하는 ‘엿’을 먹인 것이다. 이 작품으로 니키 드 생팔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현대미술의 거장 반열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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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의 두 번째 대표작은 < 나나Nana > 시리즈이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나나’들은 사회적인 미의 기준에서 많이 벗어나있다. 뚱뚱하고 짧은 팔다리를 가진 것도 모자라 고상하지 못한 포즈를 보란 듯이 취하고 있다. 이 ‘나나’들이 예쁘지 않아보일 지라도, 니키는 이들이 진짜 여성들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이토록 자유분방한 여성 각각의 개성이 그동안은 철저히 남성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美 의 판타지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고 고발한다. 겉보기에는 장난스러운 듯 통통 튀는 조각들이지만,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답답한 현실을 묵직하게 담고 있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인 꿈나무 학생이다. 시나리오 작법 수업을 들을 때 나를 지도해주신 감독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작가의 가장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경험을 담은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다."


맞는 말이다. 누가 잘된 이야기는 재미없는데, 누가 망하거나 소위 ‘쪽당한’ 이야기는 그렇게 재밌다. 하여 작가에게는 숨기고 싶은 경험조차 좋은 이야기를 위해 꺼낼 수 있는 담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작가도 작가이기 이전에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 망가지고 더 낮아지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그 어려움을 어렴풋이 알기 때문에 니키의 용기가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전시회에 가서 느끼고 싶은 것 역시 그러한 패기와 대담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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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는 잠자리의 결정적인 순간에 ‘발기부전’이라는 대참사를 겪은 뒤 끊임없는 발기부전에 시달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자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약점에 너무나 침잠한 나머지 모든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의 성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몽테뉴는 ‘그래, 사실 발기부전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라는 식의 자기 관용적인 태도와 약점을 도리어 꺼내 보이는 솔직함이 문제의 심각성을 한껏 가볍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두운 내면을 꽁꽁 숨기기보다 오히려 밖으로 꺼내 세상과 교감하기를 희망한 니키. 몽테뉴의 말처럼 그녀가 짊어졌던 아픔의 무게가 솔직한 예술적 분출로 인해 조금은 가벼워졌을 것이라 믿고싶다.



전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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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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