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꽁의 소견] 멋있는 어른이 되는 법에 관하여

글 입력 2018.07.2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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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김애란 / 비행운


자라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과정도 ‘겨우’ 되는 것이며, 또 성숙의 끝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부터 바라왔던 것은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고, 또 똑똑하고 성숙하다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종국엔 ‘어른스럽다’라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이다. 어른, 이토록 찬란한 칭찬이 어디에 또 있을까. 필자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더라도 말이다.

결국엔 모두가 어른이 되어야한다. ‘철 좀 들어라’라는 강요의 말을 언제나 듣고 자라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단 베이직하게 만 19살만 넘으면 우리는 그를 어른이라고 칭해버리지 않나. 이름뿐이더라도 어른이 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어른도 어른다워야 어른인 것을, 나이만 먹는다고 그 칭호를 붙여주기엔 어덜트라는 단어의 가치가 너무 대단한 것만 같다. 어른은 좀, 뭐랄까. 대단해야한다. 얼마나 바래오고 기다려왔는데, 또 그에 대한 환상을 얼마나 품어왔는데, 토이스토리의 앤디도 어른이 되기 위해 소중한 우디와 친구들을 작은 어린이에게 넘겼고, 그의 추억을 기꺼이 보내버리지 않았나. 앤디와 친구들을 보아서라도, 그리고 수많은 환상들을 위해서라도 어른은 대단해야한다.

하지만 사실,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널리고 널린 것이 현실이다. 필자 주변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의 입에서 ‘그 사람은 진찌 어른이야’라는 말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어른스러운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한 것 같다. 필자가 칭찬이 짠 편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이 나이를 먹고, 어른이 뭔지 대략 감은 오는 것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고, 그래도 되고는 싶고 하는 이 시점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어른’의 모양을 정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중에 나이를 더 먹고 늙어갔을 때, 내가 그때 생각했던 어른의 모양인가를 비교하기 더 쉬워지겠지. 더 사회에서 때를 묻기 전에 적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른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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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필자에게 어른은, 자신의 입장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나는 A를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사실상, 적은 세월을 살다보면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만들기 어려운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더라도, 대부분은 교과서의 것이며 혹은 선생님이나 TV 등의 매체의 것이다. 하지만 늙어가면 어떠한가.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을 만난다. 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즐거움을 만난다. 늙어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일련의 사건들을 그저 보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 일련의 사건들에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세우는 일이다. 가볍게 그리고 단순히 말하면 ‘가치관’을 만드는 것이다.

중앙대학교 교수 진중권씨의 말에 의하면, 지금 이 세상은 너무 많은 이야기가 많단다. 어느 쪽에서는 이것이 맞고, 다른 쪽에서는 저것이 맞다. 둘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모두 맞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세상 속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다양성을 모두 포괄하고, 또 그 다양성에 흔들리지 않을 무언가의 잣대를 세우는 일이다. 많은 것을 듣고, 많은 것을 배운 후에 자신의 입장을 정하는 것. 또 그것이 바람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바로 ‘어른이 되는 일’이 아닐까.



흘러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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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흘러간다. 흘러가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 아마 20살 이전까지는 학교에서의 경험이 대부분이겠지만 - 쌓아가고 또 다른 곳으로 졸졸졸졸 나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속도는 점점 퇴화하는 것 같다. 느려지고, 느려지다가 종국에는 멈춰버리고 마는 것이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자가 예전에 입에 달고 살았던 이야기는, ‘나는 늙어서도 대학생의 이야기만 들을거야’였다. 왜 그랬나,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이기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거의 대부분의 사회문제에 귀가 밝고 생각이 맑은 사람은 청춘의 초반의 사람들이었다. 4·16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항쟁만 하더라도 그 사람들 중 많은 지분은 대학생의 신분이 아니었나. 하지만 역시 객관식 시험 문제에서 ‘~만’이라는 조사가 들어가는 지문은 거의 틀린 번호이듯이, 필자의 저런 선언도 틀린 것이었던 것이다. 연륜과 경험으로 쌓아온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무시한 발언은, 미래의 필자에게 뭇매를 맞을만한 생각이었다.

사람은 살아가며 자신만의 입장을 쌓아간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습관과 방식을 만들어간다.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나, 생활을 하는데에 있어서나 자신의 방식이 없는 인간은 없다. 졸졸졸졸 흘러 나아간 사람들은 한아름 자신만의 방식과 말들을 만들어간다. 이 것을 틀렸다고, 모두 내려놓으라고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문제는 ‘안고 있는 한아름의 방식’들이 너무 무거워서 종국에는 멈춰버리고 가만히 서있어 버리는 것인 것이다.

사람도 흘러가지만, 세상도 흘러간다. 세월도 흘러가고, 생각도 흘러간다. 예전에는 노예제가 맞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노예제가 틀린 것으로 밝혀진 것처럼. 많은 생각이 변화하고 맞는 것이 달라져 간다. ‘어른스러워 진다는 것’은 자신이 만들어온 방식들에, 새로 흘러들어오는 방식들을 조화시키고 알고 또 다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꼰대’라는 단어와 사람들은, 아마 어른스러운 모양새는 아닐 것이다.



다 자란 사람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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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자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키가, 몸무게가 어느 수준에 이른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필자의 소견으로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 자란 사람이 된다는 것이며, 이것은 곧 더 이상 누군가를 상처주지 않는 일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옛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정말로, 미숙한 사람은 모르기에, 또 이해를 하지 못하기에 쉬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아주 잠깐 읽어 본 ‘언어의 온도’라는 책의 필자가 소개한 이야기에서 할머니는 이랬다. 손자의 아픔을 순식간에 알아본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의 고통을 잘 알아보았냐는 손자의 물음에 할머니는, ‘아파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지’라고 답했다.

아무튼 이렇게, 아파보았던 사람은 아픈 사람을 알아본다. 경험해 보았던 사람은 경험하는 사람을 알아보기 마련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더 누군가를 쉽게 상처 줄 수 있는 상태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를 먹어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면, 혹은 엄마나 아빠나, 그저 늙게 되면, 이제야 사회에 나오기 시작하고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초년생들을 괴롭히기가 쉬워진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부모자식관계에나 해당되는 어른-아이의 역-불균형의 이야기가 아닌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아는 아픔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살면서 아파보았던 경험덕분에 얻은 ‘아픔을 알아보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소수’였던 기억으로, 소수자들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으로 취급받아 힘들었던 경험으로 다른 누구를 섣불리 분류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약자’가 되었던 일로, 또 다른 약자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최대 다수의 최소 고통’, 꽤 가치있는 자세를 일상속에서 실현하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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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어렵다. 이 세상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 그 시간들이 가치가 없었던 건가하는 고민이 들게 하는 모습을 문득문득 마주하니,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다 할 어른 매뉴얼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도 없으니 막막하고 막연한 것이다. 나침판도 적절하지 않으니, 자꾸 방향키가 요리조리 흔들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또 암초를 만나고 부딪히고, 아파하다가 ‘아직까지는 어른이 아니어도 용인되는 시간들’이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막연히 적어본 어른이라는 모양새는, 바른 것을 가지고 흘러가야하며, 또 다 ‘자라’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 막연해진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지만 일단은 그랬다. 나는 정말,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겨우 다다른 나의 모습이 무엇일까. 아마 23살의 지점에서, 어른이라는 이상향과 목표에 대해 한 번의 고찰을 마쳤으니 그리 나쁘지는 않을 테다. 아마 그때를 위해서라도, 어른이 아닌 필자는 어른이 되기 위해 계속 방향키를 고치고 고쳐야 할 것 같다.

우리 모두 ‘빛이 바라지 않고, 발하는 사람’이 되기를, 막연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



사진 : 혁오 TOMBOY 뮤직비디오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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