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01. 성녀와 창녀, 그 사이 속 '악녀'에 대해

글 입력 2018.07.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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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여성은 크게 둘로 나뉜다. 성녀와 창녀. 초기 페미니즘 영화이론은 상업영화가 그동안 여성을 어떻게 재현해왔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미국의 영화비평가 몰리 해스켈의 「숭배에서 강간까지」에서 더욱 자세히 나타난다. 그녀는 자신의 책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여성 캐릭터 재현을 극단적으로 이분화해 성녀와 창녀로 나누었다. 즉 영화 속에 담긴 여성은 순결하고 연약한 여성인 성녀 또는 정숙하지 못하고 독립심이 강한 여성인 창녀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다분히 폭력적이지만 영화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익숙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만 영화는 줄곧 여성을 이렇게 분류해왔고 그들이 보여주는 여성은 다채롭지 않았다.

사각지대에서는 이번 글을 통해 여성, 그중에서도 성녀와 창녀, 그 사이의 여성을 바라보고자 한다.



희대의 악녀. I, Tonya.


* 아래 내용엔 영화 「아이, 토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반 위의 요정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를 지칭하는 이 수식어가 익숙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피겨 스케이팅은 익숙한 운동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영화 「아이, 토냐」속 장면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아이, 토냐」는 고난도 기술인 '트리플 악셀'을 여자 피겨 선수 중 처음으로 성공시킨 토냐 하딩에 대한 영화이다. 엄청난 능력과 명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동료 선수를 폭행했다는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희대의 악녀로 낙인찍히며 나락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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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화는 한 악녀의 못된 악행을 담은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어떻게 보면 불쌍한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동안 상업영화에서 여성은 성녀 아니면 창녀로 프레임 지어져 왔다. 하지만 (창녀의 프레임에 더 가까워 보이긴 했지만) 이 영화 속 주인공 토냐 하딩은 그 이분법적 방식으로 구분되지 않는 '악녀' 캐릭터였기에 눈길이 갔다.



미움 받기 위해 만들어진 여성


실제로 토냐 하딩은 '낸시 캐리건 폭행 사건'으로 유명한 선수이다. 그것이 자의였든, 타의였든 자신의 라이벌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라는 것은 변하지 않지만 그 사건으로 토냐를 질투와 복수에 눈이 먼 악녀라고 판단하기엔 이르다.

그녀는 천재였고 그녀의 기술은 훌륭했다. 하지만 토냐는 대회 초반 번번이 좌절할 만한 점수를 받는다. 튀는 이미지와 가난한 유년 시절이 당시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에게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냐가 자신의 점수와 관련해 심사위원에게 조언을 구하는 장면에서 심사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토냐, 너는 이 나라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야. 우리는 좋은 가정에서 잘 자란 가족적이며 온화한 인물이 필요해." 이에 토냐가 했던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왜요? 그냥 능력으로만 평가하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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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서 나의 모습이, 사회에 퍼져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는 아직도 사회의 틀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바라는 이미지에 맞지 않으면 능력이 있어도 대우받지 못하거나 그러한 이미지를 자꾸 벗어나는 사람을 ‘마녀(악녀)’로 낙인찍어 버리기까지 한다.

사회는 늘 자신들이 미워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 대상은 곧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는 약자들로 구성된다.

「아이, 토냐」는 토냐의 상황을 통해 이를 여실 없이 보여준다. 이 영화는 순수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을 확실히 고증해준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당장 나 역시 이러한 체제에 순종하고자 했고 주변의 약자들이 그래왔다.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을 의심 없이 믿었고 이러한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혼자 튀는 것의 결과는 '토냐 하딩'과 같은 상황으로 날 내몰 테니까. 토냐 하딩 자체가 악녀였던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규정한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토냐 하딩이 정말로 '악녀'로만 규정될 일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그저 ‘사연 있는’ 악녀였을까

폭행 사건 이후 부정적인 이미지로 완전히 낙인찍힌 토냐는 그대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직접적인 가해를 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폭행에 연관된 인물로 책임을 져야 했고, 이후 악녀로 낙인 찍혀 영원히 스케이트를 타지 못하게 됐다. 영화 속 '미국은 사랑할 사람을 필요로 하고 미워할 누군가를 원한다'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미워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사회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끝나고나서 굉장히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이것은 악녀의 이야기인가, 그저 한 사람이 사회에 의해 망가진 이야기였는가. 영화는 편협한 시각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녀 자체를 이 영화로 판단할 수는 없다. 분명 영화를 통해 가려진 진실과 드러난 거짓이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기 때문에 그녀의 배경과 상황으로 폭력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토냐 하딩 또한 사회 속 여성에 대한 강력한 프레임의 희생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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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속에 성녀와 악녀는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나며 그 이면의, 사회의 기준에 의해 억압받던 여성이 드러났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현재 진짜 '토냐'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녀는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마약 또는 알코올 중독자도 아니었으며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원래부터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단지 미워할 사람이 필요했던 사회로 인해 그녀는 악녀가 되었다.

영화가 끝날 때쯤, 더이상 스케이트를 탈 수 없게 된 토냐는 살기 위해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권투로 종목을 바꾸고, 어떻게든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향해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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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에게 진실을 요구하지. 진실? 엿먹어. 너희는 이미 짜놓은 너희 의도에 맞는 대답이 나에게서 나오기를 종용하고 있을 뿐이잖아. 공주님처럼 너희가 떠받드는 내 라이벌이 악녀인 나를 패배시키는 아름답고 정의로운 그림이 너희가 이미 정해놓은 진실인 것처럼. 진실에 대해 말해줄까? 진실 같은 것 따윈 없어. 나에겐 스케이트만이 삶의 전부였고, 난 그냥 살았고, 이게 내 삶이야.”


나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회는 얼마나 비참한가. 그리고 그저 '인간'답게 살아갈 뿐인데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가하는 압박은 얼마나 크고 무서운가.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또는 다수 어쩌면 모두가 사회의 기준에 흠집 하나 내기 어렵다. 이데올로기는 강력하다. 하지만 바꾸려고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사소한 계기로 쉽게 깨질 수 있다. 이제는 사회의 기준을 벗어나는 자를 악녀가 아닌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사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길 바란다.




[조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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