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섭식장애가 바라보는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7.19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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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섭식장애를 갖고 있다. 음식을 먹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다.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남들이 하루에 먹는 양을 단시간에 몰아서 먹는 편이고 그런 식사를 종일 반복해서 음식에서 벗어날 틈이 별로 없다.

내 섭식장애가 시작된 원인은 혹독한 다이어트 때문이다.

원래의 나는 종일 얼마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먹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한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옷 사는데 돈을 줄일 수는 없어도 먹는 것에는 줄일 수 있었다. 작년 12월에는 한 달의 식비가 10만 원이 채 안 나왔고 카페값이 20만 원 정도 나왔던 것 같다. 학교 갈 시간쯤에 급하게 일어나서 봉구스밥버거나 편의점 김밥을 하나 사 들고 가는 게 아침밥이었다. 아니면 코코볼 시리얼을 우유에 타서 아침대용으로 먹거나 거의 굶었다. 너무 배고파서 견딜 수가 없을 때는 강의를 출석만 하고 나와서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 먹거나 기숙사에서 분식을 사 먹었다. 어쩌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24시간 만에 처음으로 음식을 먹고는 했다. 친구들과 있을 때만 어쩔 수 없이 밥을 먹었어야 했는데, 한번은 친구에게 “꼭 저녁을 먹어야 해? 그냥 카페 가서 음료 마시면서 팀플하자.”라고 말할 만큼 식욕이 아예 없었다. 뷔페를 가서도 메인 접시 한 접시, 아이스크림 하나로 배불러서 얼른 나가자고 할 정도의 최소한의 살기 위한 본능적인 식탐이 없었다.

남들처럼 맛집을 찾아보는 일에 시간을 전혀 할애하지 않았고 그냥 집과 가장 가까운 초밥집이나 중국집에서 한 끼만 먹거나, 카페에서 파니니나 허니브레드를 하나 시켜 하루의 식사를 때우곤 했다. 귀찮으면 아이스 초콜릿을 시켜서 배고픔을 없앴다. 배고파도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늘 배가 고팠고, 정말 살기 위해 최소한만 먹었다. 건강상 이유로 술도 마시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안주랑도 거리가 멀었다. 나처럼 식욕이 없는 친구와, 밥 먹는 게 귀찮으니 식사대용 알약이 나오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당연히 기초대사량보다 적게 먹었고 살이 찔 리는 만무했다. 그러나 그렇게 먹는 습관의 좋지 않은 점은 한번 먹기 시작하면 배고프니 끝없이 먹게 된다는 것. 과자나 떡이 먹고 싶은 날은 그걸 사 왔는데 쿠크다스같이 개별포장된 것을 끝까지 다 먹어야 식사를 끝냈고 떡도 한 팩을 다 먹어야 끝낼 수 있었다. 물론 하루에 그것만 먹어서 살이 찌지는 않았었다. 늘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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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이었던 코코볼


타고난 하체가 튼실하기는 했지만, 상체는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말랐었다. s 치수의 옷이 허리만 맞지 않아서 흘러내렸다. 취미는 홈트레이닝이었는데 하체운동만 집중해서 했기 때문에 상체는 살도 없고 근육도 없고, 하체는 살도 많고 근육도 표준이상으로 인바디가 나올만큼, 상·하체의 불균형이 아주 심한 상태였다. 그 밖에 빈혈, 기립성저혈압 등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 올해 초 2월에 생일, 아주 포식하게 된다. 고향에 내려가 있을 때는 그래도 세끼를 잘 먹는데 생일 아침에 미역국과 밥을 푸짐하게 먹고 친구와 약속이 있어 점심으로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먹고, 후식으로 허니브레드와 고열량의 초콜릿 음료를 마셨다. 그러고 저녁밥을 또 먹고 생일 케이크까지 오후 9시에 먹었다. 배가 불러 터질 것 같았지만 맛있어서 잘 먹었다. 그러고 며칠 뒤 설날에 아빠의 고향으로 가서 정말 온종일 설음식을 먹었다. 치킨을 먹고 한 시간 뒤에 회를 먹고, 한 시간 뒤에 또 꿀빵을 먹고 자기 직전까지 음식을 먹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짜고 기름진 설음식과 배달음식들을 계속 먹었다. 그러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난생처음으로 살쪄버린 내 뱃살을 보고 놀랐다. 12월만 해도 잘 잠겼던 바지가 허리에 단추가 터져나갈 정도였다. 남자친구와 옷을 사러 갔는데 사방에 있는 거울 속에 배가 튀어나와 이상한 모습의 내가 보여서 나는 그날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운동을 열심히 하고 고구마를 열심히 먹었다. 처음에는 다이어트가 뭔지 몰라서 고구마 2kg을 사서 거의 하루 만에 다 먹었던 것 같다. 고구마를 먹으면 살이 금방 빠질 줄 알았다. 당시의 식단일지를 다시 읽어보면 이게 어떻게 살 빼는 사람의 식단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아주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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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초반의 식단일지


그러다 점점 자취생에게는 과분하게 느껴졌던 과일과 채소를 사서 샐러드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먹을 요리를 내가 직접 만들고 채소를 씻고 정리하는 일이 너무 기분 좋았었다. 원래 과일은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초밥, 카페 등에 돈을 안 쓰니 과일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크게 느꼈다. 엄마에게 닭가슴살을 주문해달라고 부탁해서 매끼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좋아하던 호두도 대량으로 주문해서 매일 조금씩 요거트에 타서 간식으로 먹었다. 키위와 요거트와 호두를 섞어서 먹으면 따로 카페에 가지 않아도 정말 맛있었다. 그러다 볶음밥을 먹고 싶으면 먹었고, 외식하고 싶으면 했다. 그래서 다이어트 초기에는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고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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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초기의 식단,
이때는 흰쌀밥도 강박없이 먹었다.


그러나 다이어트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았고, ‘당’과 ‘지방’, ‘칼로리’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된다. 과일은 탄수화물, 당이 많아서 살을 잘 찌게 한다는 것. 지방은 하루에 정해진 양만 몸에 흡수되고 나머지는 배변으로 배출된다는 것. 그런데 당 때문에 몸에 전부 지방으로 저장된다는 사실. 그때부터 탄수화물을 극도로 제한하는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흰 쌀밥을 피하게 되었고 빵을 경멸하게 되었다. 냉동실에 있던 곶감과 약과들을 먹고 싶어 하면서도 절대 먹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유도 더는 마시지 않았다. 우유 100g에 당이 4g이나 들어있는 걸 보고 충격받았기 때문이다. 과일도 먹지 않았다. 칼로리 강박도 점점 심해져 가서 음식을 먹고 나서 칼로리를 꼭 검색해봤다. 닭가슴살이 얼마, 바나나가 얼마. 바나나 칼로리가 높고 GI 지수가 높은 걸 보고 바나나도 끊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다이어트를 한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학교에서 인바디 검사를 했다. 156cm에 47kg으로 표준체중이었지만 체지방 지수는 표준 이하였고 근육은 표준에 머물러있었다. 검사해주시는 선생님께서 지방량을 늘려야 한다고 하며, 어떻게 관리하느냐고 부럽다고 하셨다. 몸매로 누군가의 부러움을 산 게 처음이라 자랑스러웠다. 평소에는 한 끼로 고구마 100g, 삶은 달걀 2개를 먹었다. 4시간 간격으로 식사해야 했는데, 네 시간을 못 참고 세 시간을 겨우 버텨 다시 고구마 100g과 달걀 2개를 먹었다. 온몸에 힘이 없고 기절할 것만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 상태로 알바도 했다. 알바 하는 곳에서 저녁을 주는데 늘 샐러드식이나 저열량식단을 먹고 알바를 갔었다. 죽을 것 같은 나날들이었고 정신력으로 버텼다. 매일 지나갈 때마다 거울 속에 스치는 내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뱃살은 빠진 지 오래였고, 다리까지 얇아지니 행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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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수화물 식단 (탄수화물이 채소들밖에 없다.)


그때부터 조금씩 폭식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인 분량의 탕수육을 중국집에서 시켜서 그 자리에서 그걸 다 먹었다. 그게 폭식증인지 전혀 몰라서 주변 친구들에게 혼자 이만큼이나 먹었다고 자랑했다. 인생 첫 폭식이었다. 배가 부른데도 더 먹고 싶고 지금 다 먹어야 할 것 같고 배가 아프고 찢어질 것 같아서 허리를 쫙 펴고 양념까지 다 긁어먹었다. 집에 돌아와서 칼로리를 검색했다. 종종 칼로리 검색을 하다 보면 제대로 된 칼로리 정보도 싣지 않았으면서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며 자기합리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녁 시간에, 야식으로 고칼로리 음식을 먹어놓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거지? 정확한 정보를 주지도 않고 그런 말로 이 순간을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증오스럽기까지 했다. 계속된 검색으로 칼로리를 알고 나면 엄청난 죄책감에 빠졌다. 그날은 배가 부르고 아프고 터질 것 같아서 운동도 못 했던 것 같다. 다음날은 좀 더 세게 나를 조였다. 그 뒤로도 종종 폭식하게 된다. 평소에 집에서는 극도로 자제하니 친구와 외식만 하면 폭식이 터졌다. 동기 언니랑 초밥을 먹으러 가서도 말도 안 되게 많이 먹고도 양이 적게 느껴져서 불만족했다. 평소라면 그냥 초밥 세트 12피스만 먹고도 만족했을 것 같은데 그날은 2인 특식으로 시켰고, 초밥-샐러드-우동-회덮밥 등 엄청나게 먹었다. 친구와 인도음식점에서도 점심특선 하나로 배부를 것을 2인 세트를 시켜 난, 밥, 커리, 스테이크까지 배가 찢어지게 먹었다. 지금이 아니면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끝없이 밀어 넣었고 배부른지도 몰랐다. 그냥 배가 아팠다. 늘 소화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늘 친구와 약속 잡을 준비만 했다. 먹고 나면 다음엔 어디 가자, 피자를 먹자 약속을 잡았다. 약속 날만 기다려졌다.

한번은 동생이 아파서 급하게 세종시로 가야 했는데 그때 나를 억제하던 무언가가 풀려서 봉구스 밥버거를 하나 사서 기차 안에서 맛있게 먹었다. 나중에 검색해보고 밥버거의 칼로리가 700-800대인 걸 보고 자괴감을 느꼈다. 그날 동생이 간식으로 카스텔라 경단을 여러 개 줬는데 정말 먹고 싶었다. 참고 참다가 2알만 먹었고 나머지를 남겼는데 스스로 얼마나 칭찬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고 칼로리를 검색해보고 두 알이 100칼로리인 것을 보고 그 날 평소보다 운동을 한 시간 더 했다. 남은 경단들은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고 싶을 때마다 냉동실의 문을 열어보고 칼로리를 생각하고 다시 닫았다. 전기세가 유독 늘었다. 다른 간식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고향에 내려갈 때 집에 있던 곶감, 경단, 초콜릿, 코코볼 시리얼 등등의 간식들을 모조리 휩쓸어서 갖고 내려갔다. 마음이 편했다. 내가 갖고 간 간식들을 먹는 엄마를 보면서 부러워했다. 그리고 그 날 이모가 해준 고구마튀김을 정말 끝없이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그러고 처음으로 음식을 먹은 직후 가족들 몰래 구토를 하게 된다. 구토했을 때 배가 꺼지는 감각에 조금 안심했다. 조금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남자친구는 이제 다이어트를 그만두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며, 고향에서 또 달고 짠 음식들을 먹었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니 부어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일주일 하니 금방 빠졌다.

그렇게 다이어트와 폭식을 3월부터 5월까지 반복하게 되었다. 토하는 건 점점 심해졌다. 코코볼을 우유에 타서 끝없이 먹고 토하기도 했다. 토하는데 초콜릿이 엄청나게 나왔다. 초콜릿에 대한 죄책감을 다 벗어내고자 토했다. 어떤 날은 살이 찌면 안 되니 먹고 싶은 과자를 종류별로 잔뜩 사 와서 토할 생각으로 먹었다. 더는 먹는 게 먹는 것 같지도 않고 배도 불러 터질 것 같은 정도가 되면 남은 과자들을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다 버리고 화장실로 가서 토했다. 토하는 순간까지도 맛있어서 다시 삼키고 토하고를 반복했다. 스스로가 미친 것 같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샐러드식을 유지했다. 알바를 가서는 밥은 거의 먹지 않고 반찬만 엄청나게 먹었다. 한 끼에 수육을 몇백그램씩 먹었던 것 같다. 밑반찬도 한번에 숟가락이 터져나갈 만큼 많이 집어서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부족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밥이었는데 밥을 먹지 않고 고기만 먹으니 계속 그랬던 것 같다. 늘 엄청난 절식과 과식을 반복하면서도 잘못되었는지 몰랐다.

그다음부터는 좀 더 본격적으로 음식을 먹고 토하게 된다. 무한리필 집, 뷔페를 찾아다니며 과식과 폭식을 하고 배가 틀어 오르고 찢어질 정도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서 전부 토했다. 빵집에 들러 빵을 잔뜩 사서 다 먹어치우고는 토하기도 했다.

그러고 한 달 전인 6월 17일, 운동하고 나서 초밥 뷔페를 갔다. 운동 직후엔 더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엄청나게 먹고 다 토해야겠다고 전날부터 계획을 세웠다. 건대에 있는 초밥무한리필집으로 갔었는데, 그런 곳은 질보다는 양이어서 들어가자마자 먹을만한 초밥이 없었다. 이미 다 말라붙고 싱싱하지 않은 초밥들이라 배고픈 상태인데도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샐러드바로 가서 훈제연어 샐러드를 한 접시 담아오는 거로 시작을 했다. 먹다 보니 점점 배가 불러왔고 배가 부르니 더 먹어서 다 토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맛없는 초밥들을 정말 많이 먹었다. 다른 테이블은 초밥을 먹기보다는 앞의 사람과 이야기하는 데 집중하던데 나는 혼자 뷔페를 가서 정말 먹기만 했다. 배가 미어터지려고 하는데 후식으로 떡이 먹고 싶어서 떡을 진탕 먹었다. 숨도 못 쉴 정도로 먹어대서 배가 너무 뒤틀어 오르고 찢어질 듯 아파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데 쓰러질 뻔했다. 속이 너무 아팠다. 토하고 싶었는데 밖에서는 토할 수가 없었다. 지하철을 40분 동안 타고, 버스를 갈아탔다. 버스 안에서, ‘여기서 토하면 어떡하지? 집 가자마자 토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내가 너무 아파 보였는지 어떤 아주머니께서 나를 부르시며 “어디 아파요? 여기 앉아요.”라며 자리를 양보해주셨다. 겉으로 다 티가 났나 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먹은 것을 끝없이 토해냈다. 정신적으로 피폐했고, 남자친구와 가족들에게 12시간의 잠적을 하였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나에게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누구랑도 말하고 싶지 않았고 혼자 있기도 싫었다. 잠을 잤다가 깼다가 반복했다. 남자친구와는 헤어질 정도로 싸웠다. 그제야 나는 이제 그만둬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4개월 만에 다이어트를 완전히 그만뒀다.





그로부터 한 달간, 다이어트 기간 먹지 못했던 것들을 모조리 다 먹었다. 누구나 아는 고열량 음식들인 짜장면, 탕수육, 치킨, 피자, 떡볶이, 튀김, 그리고 늘 30분 동안 고민하다 대신 달걀을 사게 했던 수많은 편의점 디저트들, 다이어트 전엔 내 하루 식량이었던 허니브레드, 식빵, 남자친구가 다이어트 전에 생일선물로 줬던 커피나무의 촉촉한 초코쉬폰케익, 찹쌀 도넛, 밤만주, 봉구스 밥버거, 김밥, 볶음밥, 흰 쌀밥, 김치찌개, 롤케이크, 원래는 좋아하지 않았던 과자들 맛 동산, 찰떡 쿠키, 초코파이, 칙촉, 등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이렇게 폭식증과 섭식장애를 치료해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처음에는 칼로리 강박감이 너무 심했다. 한 끼에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영양소를 고루 갖춰서 먹으려다 보니 정말 엄청나게 먹었다. 몽쉘 3개에 라면, 그리고 샐러드까지 먹은 날도 있다. 배가 터지도록 먹어 과식한 날도 있고 체해서 토하거나 탈이 난 날도 많다. 몇 번 먹다 보면 몸이 스스로 만족해서 멈출 때까지 제어하지 않고 먹는 연습을 했다. 잠을 못 자거나, 커피를 마시면 음식이 땅긴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식비에 돈을 너무 많이 썼다는 죄책감, 맛없는 과자나 빵을 사 왔을 때 돈이 아까우면 다 먹어치워 버리고 싶은 느낌들을 제대로 느끼며 내가 어느 상황일 때 폭식을 하게 되고 음식을 먹고 싶어지는지 진지하게 알아가고 있다.

내 몸이 말하는 대로 먹어주면서, 이걸 먹으면 폭식이 터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하면서, 밥을 먹었는데도 과자 생각이 간절하면 속으로 몇천 번의 고민을 거치고 먹기까지 너무나 외롭고 두려웠다. 며칠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내 몸은 여전히 많은 음식을 요구하고 있다. 살이 더 찔까 봐 여전히 두렵기도 하고, 얼마나 많은 음식을 먹게 될지 아침에 눈을 뜨면 두렵다. 나를 믿어주는 것도 너무 외롭고 힘들기도 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상인이고 평범한 일반인이라고 생각했던 인턴 동기가 며칠 전에 나에게 자기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절식과 폭식을 너무 반복해서 소화가 엄청나게 느리다고 민망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난 그걸 듣고 너무 놀랐다. 그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인가? 그래서 “아..진짜.”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다이어트는 나만의 문제만은 아니었고, 폭식증도 내가 음식에 대한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음식에 대한 지나친 제약으로 인해 몸이 살기 위해 본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평범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늘 음식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고 다이어트를 하고, 먹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단지 나처럼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그걸 인생의 중대한 문제로 생각해서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받는 거였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란 말은, 굉장히 자기합리화 적으로 보이고 어리석은 문장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음식을 먹는 것에서 죄책감을 많이 덜어내고 배고플 때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요즘은 그 말이 왠지 과학적으로도 사실인 것 같다. 배고프다는 것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배고플 때 먹는 것은 그래서 살이 별로 안 찌고 활동하는 데 에너지로 사용된다. 과하면 물론 살이 되겠지만, 적당히 먹을 때의 이야기다. 그러나 폭식증 환자는 음식을 맛있게 먹지 않는다. 오로지 음식으로 보이는 대상을, 먹을 수 있는 것을 입안으로 집어넣을 뿐이다. 케익 한 판, 피자 한 판은 기본이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킬로씩의 요요가 온다. 전혀 배고프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먹을 뿐이다. 먹는 행위를 할 뿐이다. 그래서 울면서도 먹는다. 토하면서도 먹고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먹는다. 겪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그 공허한 행위는 여분의 칼로리를 만들어낸다. 몸에서 사용되지 않은 당과 지방과 단백질은 다 살이 되어 쌓인다. 하루에 조금씩 먹고 싶은 것만 먹는다면 살이 찔 리도 없겠지만, 폭식과 절식을 반복하며 위장이 늘어나서 조금으로는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러면 또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 몇 배로 먹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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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저녁 식사로 먹은 스콘이다. 이 작은 과자가 하나에 430칼로리라는 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걸 저녁으로 먹고도 배가 차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만족스럽게 먹어서 신체적인 배고픔보다 정신적인 포만감이 컸다. 음식을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 맛있게 먹어서 스콘은 여분의 열량 덩어리가 되지 않았고 오로지 내 몸을 위해 쓰일 소중한 열량이 된 것이다. 정신적으로 만족할 음식을 만족스럽게 먹는다면, 더는 폭식이 터지지 않는다. 스콘은 맛있게 먹어서 0칼로리가 되었다.

다이어트를 끝내고 내가 얼마나 살이 쪘을지 모두 궁금해할 것 같다. 놀랍게도 외관상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물론 옷을 벗으면 예전보다 불어있는 나를 볼 수 있는데 내가 먹은 만큼, 생각만큼 살이 찌지 않았다. 내 몸이 그만한 에너지들이 필요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은 더 안정되고 정상적으로 돌아왔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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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를 성공해서 가장 말랐을 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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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사진


나는 아직도 다이어트와 폭식과 일반식과 절식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음식의 생각 속에서 살고 있다. 배가 고플 때는 12시간이고 배고픔을 잘 참지만, 한번 과일이라도 먹기 시작하면 배가 터질 때까지 간식들과 빵으로 내 헛헛한 속을 채워야만 만족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몸이 좀 부으면 다이어트로 닭가슴살 샐러드를 먹는다. 예전처럼 과자나 디저트를 제한해버리지는 않는다. 그러면 어차피 또 폭식으로 터져버릴 걸 알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다이어트를 이어나가고 있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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